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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양대 경제대국에 부는 신위기론 속에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2-10-17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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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와 올해처럼 매 10년이 시작되는 초기에는 위기가 반복돼 왔다. 반세기 전인 1970년대 초에는 2차 대전 이후 지속됐던 브레튼우즈 체제의 균열이 정점에 도달하면서 급기야는 닉슨의 금 태환 정지 선언으로 이어졌다. 달러 가치를 금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국제금융시장은 일대 혼란을 겪었다.

1970년대 초반의 혼란이 스미드소니언, 킹스턴 체제를 거치면서 안정을 찾을 무렵 1980년대 초에는 스테그플레이션 위기가 닥쳤다. 1970년대 말까지 주류 경제학이었던 케인즈 이론으로 설명되지 못함에 따라 대처도 불가능했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총수요를 늘리면 물가가 앙등하고 물가를 잡기 위해 총수요를 줄이면 경기가 더 침체되기 때문이다.

스테그플레이션의 원인이 2차 오일 쇼크와 같은 공급측 요인에 기인한다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정책 대응도 전환됐다. 1980년대 초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인 ‘래퍼 곡선(Laffer’s curve)’을 바탕으로 한 레이거노믹스, 즉 공급 중시 경제학이다. 세율 감소 등을 통해 경제효율을 증대시켜 공급 능력이 확대되면 경기도 부양되고 물가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1> 미국의 인플레 기대심리(자료 : 美 미시건대, 한국은행)

1990년대 들어서자마자 베를린 장벽 붕괴를 계기로 친서방 정책을 표방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거 참여함에 따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한 국가만을 위주로 했던 제도적 틀이 포화점을 넘어섰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이 유럽통화위기, 중남미 외채위기, 아시아 통화위기, 러시아 모라토리움 등으로 10년 내내 위기로 점철됐다.

1980년대 초 세금 감면으로 시작된 공급 주도 성장이 1990년대 들어 네트워크만 깔면 갈수록 공급 능력이 확대되는 이른바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터넷 혁명으로 연결되면서 고성장, 저물가의 신경제 신화를 유일하게 버티었던 미국 경제도 2000년대 들어 발생했던 9.11 테러 사건을 계기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자산 거품의 심각성을 인식한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이 2004년부터 기준금리를 대폭 올렸다. 하지만 중국의 미국 국채 매입으로 시장금리는 더 떨어지는 ‘그린스펀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심해진 부동산 거품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터지면서 2010년대 들어서는 신용등급마저 강등당하는 최악의 수모를 겪었다.

금융위기에 따른 후유증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맞았던 2020년대 들어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 사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과 같은 대형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세계 경제는 종전의 이론과 규범으로 설명할 수 없는 뉴 노멀 시대를 맞아 각종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미국, 중국과 같은 세계 경제 주도국에서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어 세계 경제 앞날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뉴 앱노멀 시대로 곧바로 전이되는 상황이다. 미국의 양대 상징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복원’이라는 기대 속에 출범했던 조 바이든 정부는 집권 전반기도 채 끝나기 전에 새로운 위기론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첫째, 경기를 보는 시각이 이미 ‘마냐냐 위기(manana crisis)’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스페인어로 마냐냐란 ‘내일’이란 뜻이다. 미국 국민 가운데 70% 이상이 경기가 침체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데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해 경제 각료들은 ‘내일은 태양이 뜬다“는 식으로 이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냐냐 위기론의 대표적인 예는 김영삼 정부 시절 외환위기를 초래한 강경식 경제팀의 ‘펀더멘털론’이다. 바이든 정부의 마냐냐 위기론은 경제위기가 아니라 경제인식의 위기다. 경제인식이 제대로 안되면 정책은 실기하고 대증요법에 의존하게 돼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둘째, 바이든 정부가 경기가 괜찮다고 판단하는 유일한 근거인 고용시장도 ‘착한 정책의 역설(angel policy paradox)’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코브라 역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착한 정책의 역설은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지원해 왔던 중하위 계층 정책이 오히려 이들 계층을 더 불리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올들어 미국 경제는 두 분기 연속 성장해 미국경제연구소(NBER)의 판단기준으로는 침체국면에 진입했다. 하지만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이 7개월 넘게 지속되는 ‘비정형화된 현상(job full recession)’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 지원금으로 중하위 계층 근로자들이 노동시장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실업자에서 제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삶은 개구리 징후군(boiled frog syndrome)’에 빠지고 있다는 것도 바이든 정부로서는 뼈아픈 지적이다. 미국 코넬대에서 가장 싫어하는 뜨거운 물에 넣은 개구리는 살고, 천천히 온도를 올린 물에 넣은 개구리는 죽었다는 실험에서 유래된 용어다. 환경변화 적응의 중요성을 강조한 용어다.

각종 지표로 볼 때 미국 경제는 침체 기미가 뚜렷하다. 미국 중앙은행(Fed)가 경기예측기법으로 가장 신뢰하는 장단기 금리 역전현상은 한 달 넘게 지속되고 그 격차도 확대되는 추세다. 경기선행지수는 5개월 연속 떨어지고 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등이 구조적 장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 지도 오래됐다.

넷째, 다가오는 위기를 애써 외면하는 ‘무각통증(disregard)’이다. 바이든 정부는 경제가 어렵지 않다는 입장이다. 의회는 공화당과 민주당 간 대립으로 각종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조 맨친 의원의 반란’처럼 비협조적이다. 이러다간 미국의 상징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동시에 붕괴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다섯째, 대외정책과 관련해 ‘신 넛 크래커(neo nut cracker)’ 위기에 빠지고 있다는 지적도 주목된다. 넛 크래커 위기는 1990년대 후반 저임의 중국과 첨단기술의 일본에 낀 한국 경제를 말한다. 신 넛 크래커란 바이든 정부가 경제패권 다툼에서 중국에게 쫓기고 전통적인 동맹국은 떨어져 나가 팍스 아메리카 체제 복원이 어려워지는 것을 말한다.

여섯째, 바이든 대통령이 주력하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도 정작 ‘더 큰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에 빠져 있다는 비판이다. 올해 ‘대(great)’가 붙어야 할 정도로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이상 기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주도적으로 부담을 해야 하지만 중국이 부담해 주기를 원해 한 치 앞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일곱째, 궁극적으로 바이든 정부는 ‘핀볼 위기(pinball crisis)’에 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제임스 버크의 명저에서 유래된 핀볼 위기는 서로 연결돼있는 볼링 핀에 비유해 위기 징후는 도미노처럼 연결돼 아무리 사소해 보이더라도 이를 무시하다 보면 이후에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중국도 각종 위기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고개를 들고 있는 ‘나선형 악순환 이론(spiral vicious circle theory)’에 따른 금융위기 우려가 주목된다. 경제학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이 이론이 지난해 헝다 그룹 파산 사태를 계기로 다시 거론되는 것은 중국 경제의 성장경로부터 이해해야 한다.

중국처럼 사회주의 국가의 성장경로를 보면 초기 단계에는 대약진 운동처럼 단순히 투입되는 생산요소(북한과 중국의 경우 노동력)만을 늘리는 `외연적 성장경로(extensive growth path)`를 거친다. 이 경로가 한계에 부딪치면 이후에는 생산요소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내연적 성장경로(intensive growth path)`로 이행된다.

대부분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 경로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부동산 거품, 물가앙등과 같은 심각한 성장통을 겪는다. 중국도 이런 후유증을 걷어낼 목적으로 1차로 2004년 하반기부터 약 1년 6개월 동안, 2차로 2010년부터 지금까지 긴축정책을 추진해 왔다. 특히 중국 정부는 물가를 잡는 데 주력해 온 것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다른 점이다.

하지만 긴축정책 수단으로 삼은 금리인상이 대내외 여건이 따르지 않아 실패했다. 1∼2차 긴축 초기에는 의욕적으로 단행한 금리인상이 때마침 불어 닥친 증시호황으로 국내여신을 잡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2차 긴축기에는 미국 등 선진국이 금리를 대폭 내리자 중국과의 금리차를 노린 핫머니가 대거 유입돼 부동산 거품이 더 심해졌다.

중국의 성장경로 상 외연적 성장단계에서 추구했던 고성장에 따른 후유증을 잡기 위해 긴축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금리 인상→핫머니 유입→통화 팽창→부동산 거품·물가앙등→추가 금리인상’이라는 나선형 악순환 고리가 형성돼 긴축기간이 길어졌고 금리인상 폭도 커졌다.

문제는 긴축정책의 추진기간이 길어지고 금리인상폭이 확대됨에 따라 지난해부터 경기마저 경착륙 국면에 빠지고 있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긴축정책을 추진해 자산거품과 인플레를 걷어내고 성장률(비행기)을 잠재수준(활주로)으로 안착시켜 경제주체(승객)들을 불안하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중국 경기가 잠재성장률 밑으로 떨어지는 경착륙 국면에 빠짐에 따라 나선형 악순환 국면에 ‘경기침체’라는 고리가 추가됐다. 이런 상황이 우려되면 핫머니가 급속히 이탈돼 자산거품이 꺼지고 경기는 ‘역(逆)자산 효과’로 상당기간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1930년대 긴축을 추진하다 경기마저 붕괴시킨 ‘중국판 에클스의 실수‘에 해당한다.
<그림 2> 중국 경제성장률 추이(자료 : CEIC, 한국은행)

뒤늦게 심각성을 인식한 중국 정부는 이런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금리인상을 위주로 지금까지 긴축정책의 방향을 대폭 수정했다. 미국보다 인플레 부담이 적은 중국 정부는 각종 정책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당면한 신용경색을 풀기 위해 내부적으로 긴급 유동성 공급정책과 함께 미국 국채를 팔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중국은 미국 국채를 더 빠른 속도로 팔고 있다. 한때 1조 3천억 달러가 넘던 미국 국채 보유분이 지난 6월 말에는 9천 678억 달러까지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는 더 빠른 속도로 줄여 나가면서 단기적으로는 8천 억달러, 중장기적으로는 5천 억달러선까지 줄여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이 빠른 속도로 미국 국채를 매각하는 것은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견제전략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나바로 독트린’에 의해 무역 분야에만 치중됐다. 하지만 조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정책에 토대가 있는 ‘셀러번 독트린’은 기득권 분야에서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자는 전략이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이후 내내 첨단기술 굴기 전략의 일환으로 반도체, 2차 전지 등 미래 국부를 좌우할 인프라 분야의 자급도를 끌어 올려왔다. 동시에 중국이 당면한 최대 현안인 ‘신용경색’을 겨냥하는 정책을 추진해 시진핑 주석의 시황제 등극에 최대 장애가 될 수 있는 제3의 천안문 사태까지 우려될 정도로 성과를 거둬왔다.

중국이 유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미국 국채를 파는 일이다. 연방부채상한을 넘어선 국가채무와 위험수위에 도달한 가계부채를 안고 있는 바이든 정부의 정곡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채매각으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 이상으로 시장금리가 올라가면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 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역(逆)트리핀 딜레마에 따른 미국 경제 부담도 만만치 않다. 가뜩이나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인상과 양적축소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국채매각으로 유동성이 더 줄어들면 달러 가치가 강세가 되기 때문이다. 역트리핀 딜레마에 따른 의도치 않은 강달러 부작용은 미국의 수출 둔화와 빅테크 기업의 수익 악화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 정부는 바이든 정부의 7대 신위기 징후군, 중국의 니산형 악순환 위기론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나라 안팎으로 엄습하는 각종 위기 징후를 보면 결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 프로 보노 퍼블릭코 정신을 발휘에 지금의 상황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특히 ‘Fed의 금리인상‘이라는 공통요인에다 무역적자 확대, 불법자금 해외유출, 연기금의 해외투자 등과 같은 우리 내부요인이 겹치면서 당초 예상보다 크게 오른 원/달러 환율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중 간 국채전쟁은 다른 어떤 변수보다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중국의 미국 국채매각은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려 한국 경제를 겨냥하는 목적도 강하다는 점이다. 새 정부 들어 대미국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인미경중(安美經中)’에서 ‘안미경세(安美經世)’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시진핑 주석은 바이든 정부의 중국 견제전략에 가장 적극적인 한국 기업을 주목하고 있다.

중국의 미국 국채매각으로 원/달러 환율이 더 올라갈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종전만 못하다. 우리 수출입 구조가 마샬-러너 조건, 즉 외화표시 수출수요의 가격탄력성과 자국통화표시 수입수요의 가격탄력성을 합한 것이 ‘1’을 넘지 않아 수출증대와 경기부양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 경제가 당면한 양대 아킬레스건을 건드릴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미국 국채매각으로 원/달러 환율이 올라기면 대규모 미국 진출계획을 발표한 한국 기업들의 환차손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부적으로는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이를 잡기 위한 추가 금리인상 과정에서 이자 부담 등으로 한국 국민들의 경제고통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것을 우리 내부보다는 외부요인 탓으로 돌리는 정책당국의 자세는 지극히 위험하다. 올해 잭슨홀 미팅에서 제룸 파월 의장의 강한 매파 발언 이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펀더멘털론으로 맞서다 손을 들었던 ‘캉드쉬 라인’, 즉 달러당 1400원선을 넘어섰다.
<그림 3> 한국 금융취약성지수 수이(자료 :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2020년 3월)


외환위기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책당국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외환위기 발생 가능성을 판단하는 각종 지표가 국가와 관련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도 외환위기에 따른 낙인효과가 얼마나 큰가를 지난 25년 동안 뼈저르게 경험한 점을 감안하면 국가에 적극 협조해 나가야 할 때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한국경제TV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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