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한 쌀값을 안정시키고, 밀 자급률을 높이겠단 명목으로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가 `가루쌀 산업 육성`을 내놨죠. 원재료값 부담에다 마음대로 가격을 올릴 수도 없는 식품업계로선 제품 개발을 위한 추가 투자까지 필요해 말 그대로 마른 수건을 짜야 하는 상황입니다.
유통산업부 박승완 기자 나왔습니다. 박 기자, 쌀값 논쟁이 시끄럽군요.
<기자>
오늘(19일) 오전 국회 농해수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야당 주도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여서 가격 폭락을 막겠다는 건데요. 최근 쌀값(4만 5,825원, 10/18 기준)은 진정세에 접어들긴 했지만 지난해(5만 5,992원, -18.2%)나 평년(4만 9,237원, -6.9%)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습니다.(도매가격, 상품, 20kg 기준)
여당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며 반발했지만 표결을 막긴 역부족이었습니다. 정부가 남는 쌀을 계속해서 사주다 보면 넘치는 생산량을 줄이긴커녕 막대한 세금만 쏟아부을 거란 예상이죠. 농식품부가 법 개정 대신 `가루쌀을 키우자`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앵커>
일단 쌀 소비가 쪼그라드는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당장 재배 면적을 줄이자니 내년 작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한 거군요. 산업 구조 자체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대책인가 본데, `가루쌀`이 뭡니까?
<기자>
분질미(粉質米)로도 불리는 가루쌀은 밀과 비슷하게 개발된 품종입니다. 보통 쌀로 면이나 떡을 만들려면 미리 물에 불렸다가 빻는 `습식 제분`을 해야 하는데, 분질미는 이 과정이 필요 없다고 하죠. 덕분에 쌀가공품을 만들 때 비용과 시간을 아끼게 되는데 입자가 작은 분질미의 장점으로 꼽힙니다.
농식품부가 가루쌀로 밀 대체에 나선 배경인데요. 첫째 이유는 대표적인 쌀 가공품인 떡이나 주류 등으로는 줄어드는 쌀 소비를 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이 쌀 다음으로 많이 먹는 밀의 해외 의존도가 99%에 달해 식량 자주권에도 보탬이 되기도 하고요.
<앵커>
가뜩이나 우리나라의 낮은 곡물 자급률이 식량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원인으로 꼽히죠. 정부가 발 벗고 나선 이유인가 본데 농식품부 장관이 `가루쌀 전도사`로 불릴 정도라고요?
<기자>
분질미는 정황근 장관이 농촌진흥청장 자리에 있을 때 개발된 품종입니다. 장관 후보자 시절부터 가루쌀 산업 활성화를 위한 TF를 만드는가 하면, 지난 6월에는 직접 발표회를 진행하기도 했고요. 내일(20일) 국회 국정감사 자리에 가루쌀로 만든 제품을 가져와 홍보에 나설 계획이라고 합니다.
농식품부는 5년 뒤인 2027년까지 분질미 20만 톤 생산이 목표입니다. 이를 통해 연간 밀가루 자급률을 현재 0.8%에서 7.9%까지 올릴 계획인데요. 상품화를 위해서 식품업계 지원에도 나섰습니다.
<앵커>
정 장관이 가루쌀을 두고 `신이 내린 축복`이라 말할 정도였다고 하죠. 배경이나 취지 모두 이해는 되는데, 실현 가능성이 어느 정도나 될까요?
<기자>
앞서 농식품부는 지난 5월 식품업계에 시험용 분질미를 줬다고 합니다. 기존의 쌀가루, 밀가루 제분 업체인 CJ제일제당이나 농심미분, 오리온농협과 같은 6개 기업 등인데요. 눈여겨볼 성과는 아직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실제로 이번 농식품부 국감에서 이 문제가 도마에 올랐는데요. 지난 4일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부풀어 오르는 정도와 식감이 다르고 만두피로 만들기도 어렵다"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정 장관은 시험 물량이 부족했다면서 올해 수확할 "100톤을 제분업체, 가공업체와 함께 레시피를 만들도록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앵커>
사실 쌀로 빵을 만드는 게 말처럼 간단한 문제였다면 왜 아직 없었을까 싶긴 합니다. 식품 업계 반응은 어떤가요?
<기자>
당장 쌀을 면이나 빵으로 만들겠다는 시도 자체에 회의적입니다. 밀가루 가공식품의 핵심 성분인 글루텐이 쌀에 없어 한계가 있기 때문인데요. 농식품부 역시 `빵·면 등 일부 식품은 밀가루 대체를 위해 글루텐 대체·첨가가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식품업계 전반에서 정책 방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밀 대신 쌀을 쓰는 제품들의 경제성이나 상품성, 현실성 등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시도가 기업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죠. 쌀로 만들수 있는 품목을 다양화하는 쉬운 길을 놔두고,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식량 주권 확보`에 끼워 맞춘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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