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은서가 비상하고 있다.
손은서는 최근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 시즌 1과 SBS 금토드라마 ‘법쩐’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또렷이 알렸다. 최근 그의 호감도 상승은 비약적인 수준이다.
“하나는 이슈가 되고, 하나는 안됐으면 아쉬웠을 텐데, 주변에서 피드백도 많이 오고, ‘올 한해는 좋은 작품을 만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비슷한 시기에 절묘하게 맞았어요. 저한테는 운이 좋았어요.”
# 악의를 숨기지 않는 매력적인 ‘김소정’
손은서는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 시즌 1에서 긴장 증폭기로 활약하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카지노’는 돈도 빽도 없이 필리핀에서 카지노의 전설이 된 남자 차무식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인생의 벼랑 끝 목숨 건 최후의 베팅을 시작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
“저는 작품을 볼 때 캐릭터 분석보다 재밌고 재미없고를 생각하는 편이에요. ‘카지노’ 대본을 볼 때도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 찍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주변에서 ‘너무 재밌다’고 얘기를 해주시니까 뿌듯하더라고요.”
손은서는 극중 승무원 출신의 호텔 매니저 김소정 역을 맡아 첫 등장부터 당찬 매력과 아리따운 비주얼로 시선을 모았다. 김소정은 차무식(최민식 분)의 오른팔 양정팔(이동휘 분)을 첫눈에 사로잡을 뿐 아니라 필립(이해우 분)과도 가깝게 지내며 묘한 관계를 형성, 상황에 따라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필요를 채워나가며 호기심을 유발했다.
“보통 악역들은 악의를 숨기기 마련인데 소정은 그걸 드러내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소정이 다른 캐릭터들의 행동에 계기를 줄 수 있는 캐릭터라 더 좋았어요. 강윤성 감독님 역시 여러 인물들의 관계성을 어지럽힐 수 있는 의심스러운 캐릭터를 주문했어요.”
그러던 중 고회장(이혜영 분)의 눈에 든 김소정은 카지노를 방문했다가 고회장의 도박판에 의견을 더했고 그 판에서 큰돈을 따내게 되며 고회장의 예쁨을 받게 됐다. 하지만 환희에 찬 기쁨도 잠시, 김소정은 대담하게 고회장에게 송금되어야 할 돈을 중간에서 가로챈 뒤 도주했고, 이로 인해 차무식과 양정팔, 필립에게 쫓기게 된다.
“한국에서 아픈 엄마와 둘이 살았고, 내가 갖고 있는 본능이나 욕망을 쫒는 캐릭터죠. 눈앞에 100억이 있을 때 계획적이지 않고, 순간 저지르는 행동이다 보니까. 내가 이용할 사람을 이용하고, 쉽게 배신할 수 있고 그런 캐릭터였죠.”
가로챈 돈을 한국으로 송금하기 위해 환전소를 찾은 김소정은 그곳에서 자신을 말리러 달려온 필립을 만났다. 이미 차무식에게 다 들킨 상황이라며, 가서 솔직하게 말하고 용서를 빌자는 필립을 향해 김소정은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고, 그 순간 갑작스레 다가온 의문의 괴한이 쏜 총을 맞고 죽음을 맞이하며 극강의 서스펜스를 안겼다.
“돈을 잘 들고 한국으로 날랐으면 ‘카지노’의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죽으면서 끝나는 게 제 캐릭터나 시즌 2를 위해서 더 임팩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필리핀에서의 첫 촬영을 엔딩 신으로 시작해 현지 적응이 미흡했던 부분은 다소 아쉬웠어요.”
극중 손은서의 과감한 노출씬은 화제가 됐다.
“노출을 하는 것에 고민도 하고 걱정도 됐지만, 제가 봤을 때 김소정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씬이라고 생각했어요. 욕망을 품고 사람들을 대하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배신할 수 있고. 그런 걸 함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그 씬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손은서는 ‘카지노’를 통해 최민식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배우로서 대선배에게 보고 배운 점이 많았을 터.
“필리핀 해외 로케이션을 가면서 조금 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에 한국에서 촬영했으면 되게 다가가기 쉽지 못 했을 것 같아요. 저랑 많이 부딪히는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같이 타지 생활을 하니 편해지고 연기하고 촬영할 때도 선배님이 잘 리드해 주시고 잘 풀어주신 게 컸어요. 이혜영 선배님도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영화 같은 느낌이었어요. 표정 하나로 거의 다 이야기를 하는 듯했어요. 감독님께서 첫 컷을 찍고 나서 엄지를 치켜세웠죠. 꼼짝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캐릭터로서 눈치 보게 만드는 그런 분위가가 있어 조금 놀랐어요. ‘카지노’는 배우들과 동고동락하면서 힘들게, 또 재밌게 촬영한 작품이었어요. 때문에 배우들도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죠. 많이 사랑해주시니까 그거에 대한 보답을 받는 느낌이에요. 저는 짧게 나왔지만 ‘카지노’ 시즌 2가 앞으로 더 잘됐으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애정을 갖게 되는 작품이에요.”
# 출세에 욕심이 있는 ‘명세희’
손은서는 SBS 금토드라마 ‘법쩐’을 통해 케미 여신에 등극하며 남녀 불문 모든 시청자를 반하게 만들었다.
‘법쩐’은 법과 쩐의 카르텔에 맞서 싸우는 돈 장사꾼 은용과 법률 기술자 준경의 통쾌한 복수극. 손은서는 극중 사채왕 명회장(김홍파 분)의 딸이자 황기석(박훈 분)의 아내 명세희 역을 맡아 캐릭터를 맞춤옷과 같이 소화하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발휘했다.
“‘법쩐’은 제가 처음부터 나오지 않고, 첫 촬영 이후 두 번째 촬영까지 3개월 간 텀도 있어서 현장과 친밀도가 처음부턴 생기지 않아서 많이 아쉽더라고요. 게다가 드라마는 배우들이 만나서 의논할 시간이 적다 보니까 그런 부분이 아쉽게 느껴졌어요. ‘법쩐’은 짧은 분량 안에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와 관계성이 함축됐어요. 호흡하는 배우는 적었지만 저의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명세희라는 캐릭터는 손은서를 만나 더욱 매력적으로 그려지며 역대급 매력캐로 완성,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조곤조곤 여성스러우면서도 믿음이 가는 목소리, 청순하고 청초한 비주얼로 1차로 시선을 집중시키는가 하면, 다정다감한 매력 속 감춰둔 야망으로 2차로 시선을 모으며 반전의 매력을 끝없이 펼쳐냈다. 명세희는 사리분별이 빠르고 지혜로웠다. 남편 황기석을 정치계로 보내기 위해 내조를 아끼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자신의 아버지는 과감하게 등지기도 하고, 대립구도에 있던 은용의 제안은 선뜻 받아들이기도 하며 과감한 행보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명세희는 앞으로 올라갈 곳을 보고 가는 느낌이었어요. 돈이라는 욕심을 있지만 출세에 욕심이 있는 캐릭터죠. 명세희는 현모양처처럼 굴지만 남편을 구슬려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요. 명세희는 돈이 많지만, 돈만으로는 될 수 없는 걸 바랐기 때문에. 조금 더 계획적이고 감정조절을 잘 하는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그 가운데 남편 황기석의 기는 세워주며 기분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부드럽게 그의 마음을 붙들어주고, 때론 거침없고 속 시원한 대사로 사이다를 선사하기도 한 명세희. 그가 이렇게 특별한 데는 이를 표현하는 손은서의 연기의 힘이 더해졌기 때문. 인물의 대사 톤, 시선을 사로잡는 제스처 등을 통해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낸 손은서의 열연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더욱 화제를 모았다.
“김소정 캐릭터를 할 때는 대사가 빠른 편이었어요. 그래서 템포나 그런 걸 신경 쓰지는 않았어요. 반면 명세희는 제가 평소보다 1.5배는 천천히 하려고 했고, 대사가 많은 게 아나라 조금 더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게끔 일부러 그랬던 것 같아요. 생각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김홍파 배우와는 ‘카지노’ 시즌 1에 이어 ‘법쩐’에서도 호흡을 맞췄다.
“선배님과 필리핀 촬영에서는 붙는 신이 없었고, 한국 촬영에서 만나게 됐는데 ‘법쩐’에서 부녀지간으로 출연한다고 하니 놀라시면서 그때부터 딸이라고 불러 주셨어요. 촬영장에 가도 ‘우리 딸’이라고 해주셨어요.”
이렇듯 배우의 자신의 색이 아닌 온전히 캐릭터의 색으로 작품에 스며들어 시청자들이 오롯이 그 인물로서 바라보게 만든 손은서. 그로 인해 생각지 못한 장면에서 손은서를 발견한 순간 보는 이들이 기대감을 갖고 인물과 이야기의 흐름에 관심을 두게 만든 그의 활약은 남녀 불문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냥 흘러갈 수 있는 분량 많은 배우보다는 임팩트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드라마의 처음부터 나온다고 임팩트가 많은 건 아니에요. 캐릭터의 만족감이 쌓이려면 분량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짧지만 각인 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때 캐릭터를 기억해주고 호감을 갖는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의 분량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손은서는 2005년 한 게임 광고를 통해 얼굴을 알린 뒤 올해 배우로서 데뷔 15주년을 맞이했다. 배우가 자신의 매력을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 어떻게 스타일링을 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많이 한다는 느낌을 받는 게 최우선이에요. 현재 1년에 몇 개씩 여러 작품을 하는 배우가 아니라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해요. 작품에 대한 욕심이 커요. 다양한 캐릭터를 겪었으면 내게 최적화된 캐릭터를 알게 됐을 텐데, 저도 제게 어떤 캐릭터가 잘 맞는지 모르는 게 가장 아쉬워요.”
인터뷰 내내 손은서는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힘들어도 재미있는 게 연기라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것은 그에게 연기자로써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저는 그냥 좋은 대본, 좋은 배우와 좋은 감독님이 같이 하는 것을 원해요. 예전에는 다른 배역을 맡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비슷한 역할이어도 또 다른 캐릭터인 걸 아니까. ‘내가 좀 다르게 하면 되지. 똑같은 역은 없어’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한국경제TV 디지털이슈팀 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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