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선원사는 보관 중이던 탱화에서 일제 강점기에 그린 태극기가 발견됐다고 21일 발표했다.
태극기는 전북 남원시 소재 선원사 명부전에 있는 `지장시왕도`에 등장하는 한 캐릭터의 관모에 사다리꼴 형태로 그려져 있다.
태극기 크기는 가로(긴변 기준, 이하 동일) 8.3㎝ 세로 4cm이며 가운데 있는 원의 지름은 2.8㎝였다. 주지인 운문 스님 작년 10∼11월 무렵 기도 중 발견했다.
지장시왕도의 전체 크기는 가로 약 184㎝, 세로 약 171㎝다. 태극기가 작게 그려진 것은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탱화 하단에는 `다이쇼(大正) 6년`(1917년)이라는 연도 표기와 함께 제작 과정에 관한 설명이 적혀 있다.
동국대 불교미술 전공 책임 교수를 지낸 김창균 조계종 성보보존위원회 위원은 그림 제작이 1917년 11월 5일 시작됐고 같은 달 17일 완성돼 봉안됐다고 조사보고서에서 밝혔다.
그는 당시 주지인 기선스님이 진응스님의 증명을 받아 수화승 만총의 지휘 아래 상오·행은·봉인·명진·성열·법상 스님 등이 동참한 가운데 지장시왕도를 제작했다고 덧붙였다.
진응스님은 일제의 방침에 맞서 화엄사를 본산으로 승격시킨 인물이며 독립운동가 한용운과도 교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극기를 오래 연구한 송명호 전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 전문위원은 "불화를 통틀어서 태극기 그림이 발견된 것은 최초"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1978년부터 태극기를 연구했고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국립박물관 소장 지장시왕도에 태극 문양이 그려진 것을 봤지만 선원사의 지장시왕도처럼 태극기가 그려진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진응 스님의 항일 행적에 비춰보면 태극기 그림은 "항일운동 일환으로 제작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태극기 소지 자체가 강한 탄압을 받던 시기였기 때문에 지장시왕도에 태극기를 그려 넣은 것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위험을 무릅쓴 행동이라는 것이다.
일제는 1912년 칙령 19호로 기념일 등에 일장기를 게양하도록 해 태극기를 금지했다.
김 위원은 관모에 태극기가 그려진 캐릭터가 변성대왕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송 전 위원은 변성대왕이 칼로 남을 괴롭힌 죄인이 칼로 된 길을 걸어 다니게 해 고통을 주는 도산지옥을 관장한다면서 `일제는 반드시 변성대왕의 도산지옥에서 칼의 심판과 고통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진응스님의 인식이 그림에 투영됐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선원사 주지인 운문스님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지장시왕도를 국가근대문화재로 등록해달라는 신청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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