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위드 코로나' 원년인 올해 경제 성장률 목표치를 1991년 이래 가장 보수적인 '5% 안팎'으로 제시했다. 국방예산은 증가 폭을 3년 연속 높였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총리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14기 1차 회의 개막식에서 행한 정부 업무보고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를 5% 안팎으로 발표했다.
이는 1991년(4.5%) 이후 중국 정부가 설정한 가장 낮은 성장률 목표치다.
1990년부터 성장률 목표를 제시한 중국은 1993년까지 국민총생산(GNP) 기준으로 목표치를 발표하다 1994년부터 GDP 기준으로 바꿨다. 이번 '5% 안팎' 수치는 GDP 기준 성장률 목표치로는 역대 최저치다.
중국은 작년 '5.5% 안팎'을 목표로 제시했다가 3.0% 성장에 그친 바 있다.
올해는 '제로 코로나' 정책 폐기에 따른 경제활동 정상화와 기저효과 등을 감안, 5.0% 이상 6.0% 미만 구간에서 성장률 목표를 제시할 것이라는 예상이 유력하게 제기돼왔다.
하지만 지난해 성장률 목표 달성 실패를 경험한 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에 따른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해 비교적 보수적으로 올해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이날 리 총리 업무보고에서 중국 정부는 올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목표를 3% 안팎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적극적인 재정정책의 효율을 높이겠다며 올해 재정적자 목표치를 국내총생산(GDP)의 3.0%로 설정했다. 작년의 목표치인 2.8%에 비해 소폭 상향했다.
또 온건한 통화정책을 정확하고 힘있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와 더불어 감세·세금 환급의 경우 계속할 것은 계속하고, 최적화할 것은 최적화할 것이라고 리총리는 부연했다.
그와 더불어 국제수지는 기본적으로 균형을 유지하고, 위안화 환율은 기본적으로 안정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 총리는 올해 경제정책 방향을 언급하면서 '안정을 우선시하고, 안정 속에 성장을 추구한다'는 뜻인 '온자당두(穩字當頭)·온중구진(穩中求進)'을 견지할 것이라며 내수 진작을 중심으로 한 경제 회복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해 말 당 중앙경제공작회의가 강조한 소비 회복·확대를 우선순위 정책으로 추진하겠다며 여러 통로로 도시와 농촌 주민 소득 증가를 도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공유제(국영) 경제와 비공유제(민영) 경제의 병행 발전 및 장려를 의미하는 '두 가지 흔들림 없음'을 제대로 시행하겠다며 법률에 입각해 민간기업 재산권과 기업가 권익을 보호하고, 민간경제와 민간기업 발전을 격려하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플랫폼 경제의 발전 지원 기조도 재차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유기업의 개혁을 심화하고, 핵심 경쟁력을 제고하는 한편 중국 특색의 국유기업 지배구조를 현대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방정부 전용 채권을 3조8천억 위안(약 717조원) 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때 분배 강화 구상 차원에서 드라이브를 걸었던 '공동부유'는 이날 리 총리 보고에서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올해 약 1천200만 개의 도시 일자리를 신규 창출해 도시 실업률을 5.5% 안팎으로 만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지난해 목표였던 1천100만 개에서 상향 조정한 것이다. 사회정책 면에서 청년, 특히 대졸자의 취업을 특별히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정부 업무보고와 재정부의 예산안 보고에는 미중 전략경쟁 심화 속에 국방, 과학기술 면에서 중국의 대응 기조가 선명히 반영됐다.
우선 올해 예산안에서 국방비 지출을 작년 대비 7.2% 늘어난 1조5천537억 위안(약 293조원)으로 설정했다. 이는 2022년의 전년 대비 국방예산 증액률인 7.1%를 미세하게 상회하는 것이다.
또한 2021년부터 3년 연속 증액률이 전년 대비 높아졌다. 중국 국방 예산의 전년 대비 증액률은 2019년 7.5%에서 2020년 6.6%로 하락한 뒤 2021년 6.8%, 2022년 7.1%로 잇따라 상승했다.
작년 경제성장률이 문화대혁명 종료(1976년) 이후 2번째로 낮은 3.0%에 그치고, 올해 성장률 목표도 1991년 이후 가장 보수적인 5.0% 안팎으로 설정한 점을 감안하면 국방예산 7.2% 증액은 방위력 강화에 대한 지도부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반도체 분야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디커플링(탈동조화)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핵심기술 자립과 공급망 안정도 강조했다.
리 총리는 "과학기술 정책은 자립·자강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핵심 기술의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양질의 자원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리 총리는 이와 함께 "산업정책은 발전과 안전을 병행할 것"이라며 "산업망과 공급망의 안전을 보장"하고 "산업망의 약한 고리를 보강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정부 업무보고는 근년 들어 중국의 거대 부동산 기업 헝다의 파산 위기가 가져온 파장을 의식한 듯 금융과 부동산 분야의 리스크 관리도 강조했다.
리 총리는 금융체제 개혁을 심화하고, 금융감독을 개선하고, 각 관련 당사자들의 책임을 분명히 규정함으로써 금융 관련 리스크를 예방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주요 부동산 기업의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방지하고, 자산·부채 상황을 개선하고 무질서한 확장을 방지함으로써 부동산 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지방 정부의 채무 리스크를 방지할 필요성도 언급했다.
리 총리는 또 대만 문제와 관련, "대만독립 반대·통일 촉진의 기조를 견고하게 유지하고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의 평화로운 발전과 평화통일 프로세스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대만과의 경제·문화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겠다고 부연했다.
2013년 3월 중국 국무원 총리 자리에 오른 리 총리는 이날 업무보고를 마지막으로 '2기 10년'에 걸친 총리 임기를 사실상 마쳤다. 후임 총리로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최측근인 리창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확정적이다.
리 총리가 이날 약 54분에 걸쳐 자신의 임기 중 마지막 전인대 개회식 업무보고를 마치자 회의장에서는 약 37초 동안 박수가 이어졌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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