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이 계속되면서 위기에 빠진 세계적 투자은행(IB)이자 스위스 2대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가 스위스 중앙은행으로부터 최대 70조원의 자금을 지원받기로 하는 등 시장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16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크레디트스위스는 이날 스위스 중앙은행인 스위스 국립은행(SNB)으로부터 최대 500억 스위스프랑(약 70조3천억원)을 대출받아 유동성을 강화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최대 30억 스위스프랑(약 4조2천억원) 규모의 선순위 채무증권 발행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러한 추가적 유동성은 크레디트스위스의 핵심 사업과 고객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 이후 세계 은행권과 금융시장에서 불안이 지속하는 가운데 전날 스위스 증시에서 크레디트스위스 주가는 장중 전장 대비 30.8%까지 빠졌다가 당국의 유동성 지원 방침 발표 이후 24.24% 하락으로 장을 마감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전날 연례 보고서를 통해 작년 회계 내부통제에서 '중대한 약점'을 발견했으며, 고객 자금 유출이 지속하고 있다고 밝혀 불안을 키웠다.
이어 최대 주주인 사우디 국립은행이 추가적인 자금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위기감이 확산했다.
이에 스위스 국립은행과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은 성명을 내고 "크레디트스위스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에 부과된 자본·유동성 요건을 충족한다"면서 "필요한 경우 우리는 은행에 유동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는 코로나19 확산 초반 각국 중앙은행이 은행권 전반에 유동성을 공급한 적이 있다면서도, 크레디트스위스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주요 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이러한 자금 지원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스위스를 비롯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시장 안정을 위해 어떠한 조치를 내놓을지, 크레디트스위스와 엮인 각 금융기관의 위험 노출액(익스포저) 규모는 얼마나 될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다우존스 마켓 데이터에 따르면 전날 유럽 은행주 시가총액이 750억 달러(약 98조원) 가까이 사라지는 등 위기 확산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유럽 내 다른 은행들도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크레디트스위스와 거래해온 은행들이 '유사시'에 대비해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신용파생상품을 매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국가나 기업이 부도났을 때 손실을 보상해주는 보험 성격의 금융 파생상품이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프랑스 BNP파리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크레디트스위스와 파생상품 관련 거래를 하지 않기로 한 상태다.
앞서 크레디트스위스 위기설이 지난해 10월에도 한차례 불거진 바 있는데, 이후 미국 은행들은 최근 몇 달 새 크레디트스위스 관련 거래 규모를 서서히 줄여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헤지펀드 업계도 몸을 사리는 가운데 억만장자 이스라엘 잉글랜드가 이끄는 헤지펀드 밀레니엄 매니지먼트는 직원들에게 크레디트스위스와 파생상품 거래를 중단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WSJ·블룸버그에 따르면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현 상황을 주시하면서 크레디트스위스와 관련된 미국 금융기관들의 위험 노출액 규모를 살펴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은행들을 대상으로 크레디트스위스와 관련된 위험 노출액 규모 파악에 나섰고,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 건전성감독청(PRA)은 크레디트스위스·해외 규제당국과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또 크레디트스위스와 경쟁하는 유럽의 주요 IB인 UBS와 도이체방크 등에는 크레디트스위스에서 빠져나온 자금들이 유입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한편 SVB 붕괴로 미국이 이번 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릴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전망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크레디트스위스 위기의 여파로 16일 예정된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 결정에서도 0.5%포인트 인상 확률이 희박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번에 ECB가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20%에 못 미친다고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박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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