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사태와 코로나19를 거치며 붕괴 위기를 맞았던 '쇼핑 1번지' 명동 상권에 다시 활기가 돌고 있다. 엔데믹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차츰 늘고, 유명 브랜드 매장들이 재개장에 나서면서다. 하지만 과거 명성을 되찾기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그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전문가들은 명동의 부활을 위해서는 관광 산업에 의존한 현재의 산업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완전한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명동이 저렴한 물건을 파는 관광 산업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것은 지리적인 이유가 크다. 특히 배후 주거인구의 감소는 명동이 중심 상업지로 역할을 잃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980년 대 당시 중앙정부는 서울의 확장을 계획하고 두 개의 새로운 도시 거점인 여의도와 강남에 대규모 신(新)주거지 개발을 추진했다. 이런 개발 사업 촉진을 위해 명동의 중심시설이던 대한증권거래소, 국립극장, 성모병원, 국회 등이 여의도와 강남 등지로 이전해 나갔다.
또 1980년대 이후 추진된 1기~2기 신도시는 교외 지역 상업화를 도왔다. 더군다나 최근 광역도시 교통체계 역세권과 대단지 아파트의 슬세권을 중심으로 편리하고 매력적인 상권들이 여럿 형성됐고, 서울은 이제 여러 개의 핵심 상권이 조성된 다핵의 도시로 성장했다. 오히려 서울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명동은 외곽이나 신도시에서 방문하기 불편한 장소가 되버린 것이다.
▲ "더 이상 관광산업에만 의존해선 안 돼"
서울 중심지로 역할이 옅어지던 무렵 명동이 옛 명성을 이을 수 있었던 핵심 키워드는 관광이었다. 정부는 2000년대 초반 명동을 관광 특화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소매업과 숙박업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6년 맞은 사드 사태는 명동 몰락의 첫 번째 기폭제가 됐다. 한중관계 악화로 명동의 주요 소비자이던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기 시작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코로나19로 외국인 관광객 발길마저 끊겼다. 한광야 동국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엔데믹으로 잠시 명동 상권 회복세가 진행될 수 있겠지만 이 것은 마이크로 시계의 착시현상이라 생각된다"며 "명동은 큰 방향에서 쇠퇴의 길을 걸어왔으며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예술·문화 일번지라는 명동의 옛 정체성이 해체된 것이 가장 큰 위기"라고 말했다.
몰락 수순을 밟고 있는 명동이 부활하려면 더 이상 쇼핑과 관광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서울은 이미 여러 개의 핵심 상권이 맞물려 기능하는 광역도시로 성장했다. 다수의 상업 거점과 역세권, 업무거점, 대단지 아파트가 함께 맞물려 기능한다는 의미다. 명동 문제를 단순히 명동에서 해결하기 보다 명동이 글로벌 구도와 광역도시권에 걸맞는 기능과 역할을 가진 상업구역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한 셈이다. 한 교수는 "이번 펜데믹은 관광 중심의 도시활성화 정책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를 명확히 확인시켜줬다"며 "근본적으로 명동의 미래 지향적 산업체계를 진화시키고 건강한 산업생태계의 구축을 유도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 "100년 규제 풀어야 명동 살아"
쇼핑과 관광 1번지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명동을 둘러싼 인프라는 편리보다 불편에 가깝다. 명동 주변의 지리를 보면 서울역, 을지로, 충무로, 소공동, 종로 등이 모두 독립 상권으로 기능하고 있다. 명동 인근 지역을 방문하는 것 만으로도 쇼핑 수요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명동을 지나는 지하철 1, 2, 3, 4호선들은 서로 환승되지 못한다는 문제를 가진다. 아울러 명동의 경계를 정의하는 남대문로, 퇴계로, 삼일로, 을지로 등은 폭이 30m가 넘는 간선도로들이라 횡단보도가 갖춰지지 못해 보행활동에 불편함을 초래한다. 이는 명동이 주변 블록들과 단절된 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명동에 상주하는 인구가 부재한 것도 명동의 쇠락을 부추기고 있다. 명동은 일제강점기 도시의 일정 구역 내 하나의 인간 활동만을 허용한 조닝규제(용도지역제)로 상업활동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과거 조닝규제는 정부가 구상하는 이상적인 도시계획을 실현하는 토지이용 규제정책의 역할을 해왔다. 도시의 관문인 철도역, 백화점, 호텔 등을 중심으로 도서관과 서점, 귀금속점, 양장점, 카페, 찻집 등이 퍼져나가며 거대한 상권을 형성했다. 이들을 한 곳에 모아 토지 이용의 극대화를 노리려는 목적을 가진 셈이다.
하지만 주거 기능을 배제해 온 근대적 규제는 이제 도시 중심부에서 그 존재가치를 잃어가는 실정이다. 명동은 현재까지 조닝규제상 상업구역으로, 지구단위계획의 주거활동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한 교수는 "명동은 개발규제 대상이 아닌 사람사는 커뮤니티로 변화해야 한다"며 "앞으로 서울과 명동의 도시계획은 중심상업구역이 거주지로서 기능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의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다시 명동은 '문화·예술 중심지'
이제 명동은 소매시장으로 발전을 넘어 새로운 도시산업 중심부로 미래를 준비해야 할 변화의 갈림길에 섰다. 영국 런던의 피카딜리서커스-웨스트엔드나 일본 도쿄의 긴자-니혼바시 거리처럼 명동이 가지고 있는 문화·예술 유산을 발판 삼아 자생력을 갖춘 글로벌 대표 도시로 성장해야할 단계다. 이를 위해 명동과 명동주변을 둘러싼 블록, 보행연결 체계가 개선돼야 한다. 한 교수는 "명동은 현재 역사적 의미를 가진 문화유적과 공공시설이 정동과 소공동, 을지로 일대에 산재해 있다"며 "남대문로~삼일로~을지로~정동을 잇는 서·동방향 보행연결과 을지로~퇴계로~종로~남산을 잇는 남·북 방향 보행연결 체계 개선을 통해 역사 문화자원과 산업자원이 하나의 원도심 문화권으로 묶어 기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명동 전체가 지하철의 지상환승체계로서 기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명동의 보행활동을 활성화하도록 지속가능한 도로 안전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또 명동이 새로운 문화·예술·기술·지식 커뮤니티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소 상주 인원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한 교수는 "명동의 지속가능한 산업생태계로 진화는 시정부의 정책적인 지원과 투자를 시작으로 문화 예술 기술 지식 분야의 2~5개 대학교들이 시티캠퍼스를 구축하며 실행될 수 있다"며 "이들을 지원하는 부속 기숙사와 인터내셔널 하우스가 단일 건물 또는 건물의 일부층 중심으로 운영돼 명동의 부족한 최소 주거 인구 확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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