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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달러 등 외화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Ⅳ)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3-03-20 07:14   수정 2023-04-06 15:03



토끼의 해인 계묘년을 맞아 경기, 금리, 주가, 환율, 부동산 예측과 투자방법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이번 주부터는 달러 등 외화 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두 번째 시리즈로 “엔화를 유독 싫어한다, 왜 그렇까?를 다룬다.

엔화를 유독 싫어한다, 왜 그렇까?

다음달 8일, 지난 10년 이상 동안 아베노믹스를 이끌어왔던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이 퇴임함에 따라 앞으로 일본의 경제정책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2012년 아베노믹스를 낳게 한 근본적인 원인인 1990년 전후 ‘대장성 패러다임’과 ‘미에노 패러다임’ 간의 갈등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전자는 ‘엔화 약세와 수출 진흥’으로 상징되나, 후자는 ‘물가 안정과 중앙은행 독립성’으로 대변된다.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는 ‘복합 불황’에 빠졌다. 수많은 경기침체 요인이 얽히고설켰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안전통화 저주(curse under safe haven)’다. 안전통화 저주는 미국 버클리대의 베리 아이켄그린 교수가 처음 주장했던 것으로 경기 침체 속에 엔화가 오히려 강세가 돼 가뜩이나 어려운 일본 경제를 더 어렵게 하는 상황을 말한다.

1990년 이후 일본 경제가 당면한 최대 현안은 디플레이션 국면을 언제 탈피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일본의 실질GDP 성장률은 1980년대 평균 4.7%에서 1990년대 이후 1.2%로 급락한 것은 주로 내수 부진에 기인한 점을 감안하면 디플레이션 우려도 이 요인이 가장 컸던 것으로 지적됐다.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1970년대 이후 0.5∼0.8%포인트(p)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 내수 기여도는 1970년대 3.8%p, 80년대 4.0%p에서 1991∼2011년에는 0.5%p로 급락했다. 이 때문에 GDP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에 89.6%에서 2011년에는 80% 밑으로 떨어져 ‘잃어버린 20년’이란 용어가 나올 만큼 장기간 경기침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낳았다.

거듭된 정책실수도 침체기간을 연장하는 요인으로 가세됐다. 1990년 이후 무려 25차례가 넘는 경기부양책은 재정여건만 악화시켰다. 기준금리도 ‘마이너스 수준’으로 대폭 인하했으나 경기 회복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각종 미명 하에 구조조정 정책을 20년 넘게 외쳐 왔으나 정책과 국민들의 불신 간 악순환만 키웠다. 이 때문에 모든 정책이 무력화돼 죽은 시체와 같은 좀비 경제 국면으로 떨어졌다.

일본 경제는 내수부문의 활력을 되찾아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탈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내수부진이 고용과 임금 불안정성 증대, 인구고령화 진전 등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요인에 주로 기인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여건도 크게 악화돼 1990년대처럼 정부가 민간수요를 적극적으로 대체해 촉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내수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면 일본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게 위해서는 경제여건 이상으로 강세를 보이는 엔화 가치가 약세로 돌아서야 가능하다. 하지만 당시 집권당이었던 자민당은 일본 경제가 1990년 이후 장기간 침체된 것은 일본은행 총재였던 미에노가 고집스럽게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비타협적 통화정책이 가장 큰 요인으로 봤다.

아베 신조가 2012년 12월 자민당 총리로 재집권하자마자 엔저를 통해 성장을 지향하는 구로다 하루히코 현 일본은행 총재를 영입해 아베노믹스를 추진했다. ‘경기 실상과 통화 가치가 따로 노는 악순환 국면을 차단하는 것이 일본 경기를 회복시키는 최후 방안’이라는 미국 예일대 하마다 고이치 명예 교수의 권고를 받아들였던 것이 ‘아베노믹스’다.

아베노믹스를 추진한 지도 햇수로 10년을 맞았다. 당초 의도대로 효과를 거두기보다 국제금융시장 참가자인 각국 간에 협조보다 갈등만 조장시켜 왔다. 아베의 엔저 정책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선진국임에도 인위적인 엔저 유도를 통한 경기부양은 인접국 혹은 경쟁국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주는 ‘근린궁핍화 정책’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각국의 반발도 거세져 왔다. 초기에는 브릭스(BRICs)에 이어 독일 등 같은 선진국 간에도 갈등이 심했다. 독일의 경우 일본이 엔저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무역보복조치를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묵시적으로 엔저를 용인해 왔던 미국도 2018년 하반기 환율 보고서 발표 때부터 더 이상의 엔저 조작은 어렵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일본 내부에서도 여론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은 대책을 엔저로 채산성이 지속적으로 악화돼 왔던 내수업체다. 일본 국민도 수입물가 급등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제고통이 높아져 왔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전체 에너지원에서 수입 에너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가장 반겨야 할 수출업체의 불만이 누그러지지 않는 점도 주목된다. 장기간 지속된 엔고에 대응하기 위해 수출업체가 해외로 진출해 이제는 ‘기업 내 무역’이 보편화됐다. 수출결제통화도 한때 80%를 웃돌았던 달러 비중을 40% 내외로 낮춰놔 엔저가 되더라도 채산성 개선보다 통상환경만 악화돼 왔다.

아베노믹스가 멈추면 곧바로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시각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이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내수부터 확보돼야 한다. 하지만 엔저 정책은 내수산업을 더 어렵게 한다. 이 상황에서 수출마저 안 될 경우 일본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차기 일본 정부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특정 목적을 겨냥해 정책요인만으로 유도된 엔저 정책은 게임 참가자의 협조와 지지가 없으면 추세적으로 정착될 수 없다. 엔저 정책은 중앙은행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쉽게 무너지는 결정적인 허점을 안고 있다. 아베가 엔저 정책을 추진하면서 일본은행을 거의 강압적인 수준에서 협조를 구해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아베노믹스는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었으나 자국 내에서는 견제할 세력이 없었다. 국제적으로도 이기주의 기승으로 역(逆)플라자 합의(1995년 4월, 달러 강세, 엔화 약세 유도)와 같은 대타협도 없었다. 극약처방인 아베노믹스가 햇수로 10년 동안 지속돼 왔던 배경이다. 결과는 일본 경제를 후진국으로 전락했다는 자기반성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 일본 경제 향방과 관계없이 한국의 부자들은 엔화에 투자하는 것을 위안화에 투자하는 것보다 더 주저한다. 20세기 이후 일제 식민지 시대, 외환위기, 문재인 정부 들어 수출 통제 등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깊게 베인 역사적 감정이 설령 엔화 투자해 돈을 얼마나 벌 든 이보다 앞서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상춘/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한국경제TV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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