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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가 반한 1억 침대…비싸면 더 팔린다는 매트리스의 세계 [바이 아메리카]

김종학 기자

입력 2023-08-13 08:00  



우리를 잠 못 이루게 하는 무더운 여름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깨어있을 때 최상의 신체활동, 두뇌 활동을 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충분한 잠입니다.

가장 은밀하고, 개인적인 공간인 침대는 그래서 한 번 사려면 누구보다 신중하게, 비싸더라도 인테리어에 보탬이 되는 제품을 사려 애쓰게 됩니다. 이렇다보니까 측정 불가한 이 욕망을 따라서 가격도 싯가처럼 따라 붙는 시장 중 하나입니다.



혹시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인 파리, 블랙핑크의 제니의 침대 브랜드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오늘 주인공인 기업은 아니지만, 1852년 스웨덴 아돌프 얀슨(Pehr Adolf Janson)이 설립한 헤스텐스(Hastens) 라는 브랜드인데, 가격이 어마어마 합니다.

171년전 방식 그대로 장인이 한땀한땀 수작업에 천연 재료만 써서 31만 6천달러, 공개된 최고가가 4억 원에 달하는 모델을 파는 침대 회사예요. 헤스텐스가 말이란 뜻인데, 근대 유럽에서 말 안장을 만들어 납품하던 기술을 가져와 침대 제조업에 뛰어든 가족 기업이에요.



뿐만 아닙니다. 100년 이상 영국 왕실 인증을 지켜낸 힙노스(Hypnos), 바이스프링(Vispring), 눕는 위치마다 침대 재질과 푹신한 정도를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 스티븐 스필버그가 25개나 구입했다는 덕시아나(Duxiana) 까지 이른바 4대 명품 침대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침대 매트리스 시장을 조사하다 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명품으로 등극한 값비싼 제품들이 아니더라도 뭔가 다른 핑계들, 헤리티지, '과학 기술' 등 여러 형태의 요소를 광고에 더하면 더할 수록 가격을 뻥튀기 할 수 있는 마케팅 놀이터 같은 시장이기도 합니다.



침대는 인류의 근원적인 욕망과 맞닿아있는 산물이죠. 침대(Bed)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연히도 원시 게르만어(badja-)와 비슷한 것으로 나오는데, 그 뜻히 '땅바닥을 파내서 만든 쉼터'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유럽 일대를 넘보던 술탄도 고작해야 러그에 쿠션을 깔고 자던 게 전부였지만, 산업과 제조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자는 곳마저 높아집니다.

그중에서도 침대가 남과 다른 지위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는,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14세인데, 이 분이 죽기 이틀 전까지 '군주의 침대'에서 국정을 수행했고, 당시 17세기에 다른 귀족들도 높은 프레임에 기둥을 천장까지 높여 밖에서 안을 잘 볼 수 없도록한 침대를 기본으로 사용했다고 해요.



하지만 이렇게 정말 왕실에만 납품하는 침대들만 있다면 정말 사모펀드들이 뛰어들 정도로 크게 성장하진 못했을 겁니다. 침대 매트리스 산업의 변화의 결정적 계기는 바로 도시가 발달하면서 부터예요.

럭셔리로 여겨지던 침대는 대도시가 더 고도화되고, 인구 집적도가 높아지면서 필연적인 위생문제에 부닥치게 돼요. 고흐가 고갱을 기다리며 그린 '아를의 침실' 속 아담한 침대처럼 방 한 구석에라도 나만의 절대적인 휴식처가 필요해지게 되고, 이런 욕망에 맞춰 내부 부품이나 소재를 개량해가며 점차 대량으로 공급하는 산업화 과정을 진행됩니다.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뉴욕 주식시장에서 반짝이는 기업들을 들여다보는 바이 아메리카, 오늘은 인류의 밤을 책임진 산업이자 왕실, 과학의 힘을 빌린 마케팅 고수들의 놀이터인 침대 매트리스 시장, 그리고 상장사 중에 세계 최대 침대 회사인 템퍼실리 인터내셔널(티커명 : TPX)이야기입니다.

90년대 추억을 가지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분명 가구인데 '침대는 과학'이라고 하는 광고. 나중에 드라마 '모래시계 검사'로도 활약하게 되는 박상원씨의 대사는 본래 최대 고객인 신혼부부 공략이 너무 치열하다보니까, 허리 통증을 겪는 교체 수요에 눈으로 돌려 만든 광고였다고 해요. 이 대사를 남녀노소 기억할 정도가 되면서 이후에 점유율이 2배 이상 늘어서 지금도 국내 1위죠.



참고로 국내 침대 시장은 과점이나 마찬가지인데, 에이스 침대 창업주의 차남이 미국 시몬스 침대 라이선스 제휴 지분을 넘겨받아 에이스-시몬스 두 곳이서 흔들림없이 국내시장 약 40% 점유율을 보유 중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30년째 이 순위가 바뀌지 않는 건, 본고장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템퍼씰리-썰타시몬스 구도의 점유율에 큰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2010년대 이후 한국의 지누스, 미국에 캐스퍼 같은 온라인 매트리스 회사가 안착해서 싸고 배송 편리한 제품을 공급해 점유율을 파고 들지만 시장의 리더는 여전히 100년 이상의 역사에 현금 동원력이 큰 기존 매트리스 기업들입니다.



기본적으로 매트리스는 가서 누워보고 구매하잖아요. 그런데 오프라인 유통점마다 할인율을 다르게 하니까 정가가 얼마인지 소비자들은 알 수 없게 됩니다. 할인율 뒤에 가격을 크게 올려서 웬만한 매트리스 가격이 이제 한국에서도 수백 만 원, 심지어 1천만 원 이상이어도 팔립니다. 미국도 프레임에 이런저런 할인이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이 과정에 해마다 비용이 슬쩍 인상돼 왔다는 걸 인지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습니다.



세계 최대 기업인 템퍼 실리 인터내셔널이 올해 초 제출한 사업 보고서(10-K)를 보면 그로스마진율이 약 40% 이상을 유지 중입니다. 전세계 기업 가운데 장사 잘한다는 애플이 약 60% 수준, 테슬라는 20% 언저리거든요.그런데 재고 때문에 더 낮은 숫자여야 할 가구 회사가 여기에 맞먹는 기록을 내는 겁니다. 이 말은 장사를 잘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할인폭을 미리 정해두고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는 뜻 이기도 합니다.

침대 매트리스 회사들도 연구개발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코일 스프링, 티타늄 등 금속을 혼합해 코일이 잘 꺼지지 않게 받쳐주는 특허를 쓰거나 사람 피부에 직접닿는 섬유 소재, 균일한 품질을 관리하는 것 외에 크게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매트리스시장은 이런 함정 탓에 공개된 점유율 데이터도 흔치 않고, 전체 시장 규모도 매년 5~6% 지루한 성장을 하는 산업이기도 하죠.



우주선의 충격 흡수를 위해 만든 나사 특허 이름인 템퍼(Tempur)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스웨덴 사업가가 라이선스를 가져가 유럽에서 생산하고, 나중에 미국 등 전 세계 사업권을 현재 은퇴한 바비 트러셀(Bobby Trussell)이 가져오면서 지금의 형태를 갖게 된 곳이에요.

이렇게 만들어진 템퍼 페딕은 2013년에 미국 매트리스 원조 기업인 씰리를 인수하면서 썰타-시몬스와 함께 1, 2위로 시장을 과점하게 됩니다. 원조 매트리스 기업인 씰리는 1881년 미국 최대 목화 농장이 있던 시카고에서 탄생했는데, 압축한 면화로 만든 매트리스 품질을 비약적으로 높이게 된 곳이죠. 시몬스가 1870년에 탄생했으니까 미국내 매트리스 시장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지역마다 인수합병으로 지배력을 키워왔다고 보면 됩니다.



어쨌든 큰 투자 없이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격 인상 전략으로 마진을 유지하던 매트리스 회사들이지만, 지난해 엄청난 위기를 겪게 돼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공급망이 무너지고 이 과정에 대표적으로 석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선을 넘기 시작했죠. 덩치가 큰 매트리스 유통 비용이 자연스럽게 늘어납니다. 여기에 철광석과 원자재 값이 같은 기간 2배씩 뛰면서 침대 매트리스 회사들 수익성에 크게 타격을 입게 됩니다.



이 때문에 올해 초에 미국 2위 설타-시몬스 침대가 파산 위기까지 몰려 챕터11 파산보호 신청을 한 뒤 기사회생하고, 미국 매트리스펌이라고 하는 업체는 경영난에 약 13억 달러에 템퍼 실리에 팔려나가기도 합니다.



투자자의 입장에선 이런 난리통에 살아남은 1위 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죠. 컨슈머리포트가 미국 내 매트리스 소비자 만족도를 조사한 자료인데, 템퍼페딕이 1위입니다. 할인을 기본으로 하는 스프링 매트리스와 달리 고가, 고정가격을 고수하면서 원자재 부담을 그대로 전이하면서 살아남게 한 동력이 됐다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매트리스 기업이 비상장으로 돌아섰지만, 템퍼씰리 인터내서널은 배당을 꾸준히 진행하고, 남은 돈도 영국 드림스, 매트리스펌 등 인수합병에 쓰고, OEM 라이선스, 메리어트그룹 계열을 포함한 호텔 납품 비중 80%로 비교적 안정적 사업 모델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지 팬데믹으로 인한 호텔 납품의 감소, 공급망 악화로 타격을 입었지만 다른 경쟁사들보다 빠르게 실적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도 해요.



템퍼-씰리 인터내셔널은 올해들어서만 34%, 최근 5년간 220% 이상 주가가 오른 데다 배당까지 받는 알짜 중소형 주식입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은 평균적으로 아웃퍼폼, 시장 수익률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구요. 8월들어 홀드 의견이 늘었지만, 현재 주가는 애널리스트 평균 목표주가인 주당 50달러선을 밑돌고 있습니다.

물론 마냥 좋은 회사는 역시 없습니다. 할인으로 수익을 부풀리던 시절이 지나고 있기 때문인데요. 대부분의 소매 시장이 그렇듯 미국 내 침대 구매도 디지털이 이제 대세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퍼플닷컴, 캐스퍼 등 저가 온라인 경쟁사에 대한 대응은 아직 더디다는 점은 고려할 요소입니다.



그리고 한국에 한정이지만. 2018년 대진침대의 라돈 검출 이후 씰리가 2번타자로 지목되고서 이후 국내 공장을 완전 공개하는 등 신뢰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던 점도 짚어볼 부분입니다. 지역마다 위탁생산하니 미국에선 별 타격이 없다고는 해도 오래 신뢰할 만한 회사인지 따져봐야 하는 지점에 있기도 한 셈이죠.

한정된 회사가 점점 독식해나가고, 오래된 나사 기술력, 혹은 멋진 음악과 모델을 내세워 가격을 올려받는 건 마땅한 대안이 없는 소비자들에겐 어쩐지 얄미운 일입니다. 꼭 우주급 기술력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합리적인 가격에 몸을 누일 수 있는 매트리스 시장이 더 뜨거워지기를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기획:김택균, 구성:김종학, 편집: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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