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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닥치는 준(準)스태그플레이션…극복방법은?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3-10-10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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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이 길어지는 가운데 불안한 중동 정세로 인플레이션 재발 우려가 제기되면서 준(準)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현실도 닥치고 있다. 현재 놓여있는 정책여건을 볼 때 풀어나가기는 쉽지 않다. 통화정책은 물가 부담으로 금리를 내릴 수 없다. 재정정책은 ‘거대 야당’이라는 입법적 한계로 재정지출을 늘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정국이 침체된 경기를 살리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정책 처방으로 나뉜다. 하나는 정부 주도로 세수 증대 등을 통해 확보된 재정지출을 늘리는 케인즈언의 총수요 진작착과, 다른 하나는 세금 감면 등을 통해 민간의 경제하고자 하는 의욕을 고취시키는 공급중시 경제이론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1970년대 후반까지 총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까지는 케인즈언식 정책 처방은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주효해 주류경제학의 위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2차 오일쇼크 이후 세계 경제가 경기는 침체되고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엄습하자 케인즈언식 정책 처방은 무기력했다.

고민 끝에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내놓은 정책 처방이 공급증시 경제학이다. 레이거노믹스로도 알려진 이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은 아셔 B. 래퍼다. 래퍼 교수는 특정국의 세율이 적정수준을 넘어 비표준 지대에 놓여 때는 세율을 낮춰 민간의 경제 의욕을 고취시켜야 경기와 세수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래퍼 곡선(Laffer curve)’을 제시했다.

공급중시 경제학의 본질은 정부가 미리 짜여진 수요에 맞춰 경기를 부양하는 케인즈언 이론과 달리 경제 주체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하고 잃어버린 활력을 어떻게 높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봤다. 이를 위해 캠플주사식 대중 영합 경기대책에 의존하기보다 감세와 규제 완화, 기술혁신 등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권했다.

그 후 40년이 지난 2020년대 들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 사태를 맞아 공급망 차질 등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다시 찾아왔다. 대내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붕괴, 대외적으로 중국의 추격 등으로 어려운 국면에서 출범했던 조 바이든 정부가 내놓았던 정책 처방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골자로 한 신공급중시 경제이론이다.

이론적 근거는 바이든 정부의 실질적인 경제콘트롤 타워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1999년 4월 예일대 동문회에서 처음으로 언급했던 알려지기 시작한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다. 이 정책 처방은 버락 오마바 정부 시절에도 경제정책의 근간이 되면서 최대 난제였던 금융위기를 극복하는데 적용됐다.

출발은 1950년부터 1988년 은퇴할 때까지 예일대에서 화폐경제학을 가르쳤던 제임스 토빈이다. 정책적으로는 로버트 솔로우, 아서 오쿤, 케네스 애로우 등과 함께 1960년대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정부 때 실행됐던 경제정책을 설계하는데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월리엄 노드하우스, 로버트 쉴러, 그리고 재닛 옐런이 뒤를 잇고 있다.

전체적인 기조는 경기부양 등과 같은 단기과제는 케인스언 이론을 선호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 등과 같은 장기과제는 신고전학파 이론을 받아들여 해결한 독특한 정책 처방 패키지이다. 즉, 단기과제는 총수요와 총공급 곡선으로 이해하고, 장기과제는 토빈과 솔로우 모델을 선택했다.

경제정책은 당면한 현안에 따라 유연하게 운용했다. 재정정책은 경기부양과 위기극복을 위해 재정 건전화가 뒷전으로 물러나는 것을 용인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통제권에 들어오면 국가채무를 줄어 재정 건전화를 도모하는 쪽으로 우선순위가 이동됐다. 통화정책도 ‘준칙(monetary rule)’대로 운용되지는 않았다.

최종 목표인 장기성장과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물적자본, 인적자본, 연구개발(R&D)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강조했다. 정부는 친기업 정책을 추진해 이윤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맞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세제도 투자세액공제제도를 도입하고 소비세율을 높여 저축과 투자가 함께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봤다.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을 토대로 경제정책을 추진했던 1960년대와 1990년대 미국 경제는 전례 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토빈 교수가 케네디 정부에 정책 자문했던 1961년 이후 106개월 동안 확장 국면이 이어졌다. 1990년대에는 예일대 교수들이 다시 빌 클린턴 정부와 손을 잡으면서 확장 국면이 2001년 3월까지 120개월 동안 지속됐다.

미국 이외 국가에서도 활용됐다. 1990년 이후 ‘엔고(高)의 저주’에 걸려 20년 이상 침체국면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명예 교수의 발권력을 통한 엔저 유도 권고를 받아들여 ’잃어버린 30년‘ 우려를 차단하려 했던 아베노믹스가 대표적인 예다. 고이치는 토빈의 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림 1> 美 취업자수와 실업률 추이

경기부양, 고용창출, 재정 건전화를 목표로 출발했던 조 바이든 정부도 집권 전반기가 끝났다. 3대 목표 중 완전고용이 달성된 지는 오래됐다. 작년 3분기 이후 미국 경제는 2%대의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2%대의 성장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작년 6월 9.1%까지 치솟았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년 만에 3%대 초반으로 안정돼 신경제 신화가 재현되고 있다. 중국과의 격차도 다시 30년 이상 벌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정부의 집권 후반기 목표는 명확하다. 미진한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재정 건전화를 도모하는 일이다. 케인스언의 총수요 관리이론대로 두 과제를 달성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은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안이다. 하지만 국가채무가 더 늘어나고 어렵게 잡히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재발할 우려가 있어 쉽지 않다.

최근과 상황이 비슷했던 1990년대 후반 클린턴 정부는 전임 조지 부시 정부의 ‘강력한 미국’ 정책으로 늘어난 국가채무를 줄이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페이 고(pay go)’를 추진했다. 소모성 경비인 일반 경직성 세목을 줄여 경기부양효과가 큰 투자성 세목에 몰아주는 제3의 정책처방인 이 정책은 집권 후반기 바이든 정부에서도 추진할 계획이다.

산업정책 면에서는 법인세 최소세율 15% 등을 통해 해외에 나가 있는 미국 기업을 환류시키는 ‘리쇼오링’과 함께 당장 들어올 수 없는 미국 기업은 ‘니어쇼오링’과 ‘프렌즈쇼오링’ 정책을 병행해 동맹국으로 적극 이전시켜 나갈 방침이다.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첨단기술산업을 육성하고 재배치해 한편으로는 성장률을 끌어올려 재정수입을 늘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물가안정을 도모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 2> 미국 경제 성장경로

직전 정부의 증세와 규제 정책 등으로 ‘피터팬 증후군’과 ‘벤자민 증후군’이 함께 나타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답은 명확하다. 미국보다 더 낮은 성장과 더 높은 물가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는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을 활용해 기업이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줘야 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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