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원 변호사의 이의있습니다] 재판 지연, 적어도 변호사가 일조하지는 말아야

입력 2024-03-06 16:19  


이 글은 앞선 기고글 ‘[민사원 변호사의 이의있습니다] 재판 지연, 답변서 제출기한에 맞춰 무변론판결선고기일 지정한다면’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지난 글에서는 민사재판의 지연을 해결하기 위하여, 피고 측의 답변서 제출을 앞당길 수 있도록 법원이 민사소송법상 답변서 제출기한에 맞춰서 무변론판결선고기일을 지정해달라고 제안해보았다. 이번 글은 법원이 아니라 저와 같이 법률전문가로서 소송대리를 하고 계시는 변호사 여러분에게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하는 내용이 될 것이다.

구두변론이 이루어지긴 하나, 우리나라 민사재판에서의 쌍방 주장과 반박은 서면을 통해 법원에 제출되는 것이 기본이다. 변론기일에서 구두로 상당한 주장을 펼치더라도, 법원에서 그 내용을 서면으로 정리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는 요약준비서면이라는 이름으로 민사소송법에 규정된 방법이기도 하고, 법원의 인적·물적 자원이 여유롭지 못한 가운데 재판 적체로 신음하고 있다는 사정을 고려하면 이해하지 못 할 요구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주장과 증거에 대한 설명을 담은 서면, 준비서면은 우리나라 현행 민사재판의 핵심이다. 문제는 준비서면 제출로 인하여 오히려 재판이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통상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 측의 소장이 제출되고, 그에 대한 반박을 담은 피고 측의 답변서가 제출되면, 법원은 변론을 연다. 쌍방 소송대리인은 법원에 출석하여 각자 그 때까지 제출한 서면의 내용을 진술하게 된다. 그 때 더 이상 주장하거나 제출할 증거가 없다면 변론을 종결하고 법관이 선고기일까지 심사숙고한 후 판결을 선고하면 재판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실무에서 일부 소송대리인들의 경우 변론에 임박해서야 준비서면을 제출하고는 한다. 그러면 그 상대방 측으로서는 변론 출석 전까지 제출된 준비서면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서, 결국 검토와 반박을 위하여 변론을 한 번 더 열어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다.

물론, 새로운 사실관계가 드러났다거나, 어떠한 증거가 뒤늦게 입수되었다거나 하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부 소송대리인들은 그런 사정이 없는데도 고의로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목적에서 준비서면을 늦게 제출하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번 양보하여, 의뢰인의 이익을 위하여 재판을 지연시키는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대단히 안타깝게도 습관적으로, 만연히 준비서면 제출을 게을리 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최근 원고의 소송대리인을 맡았던 민사재판에서도, 피고 소송대리인은 답변서 제출기한을 지키지 않고 무변론판결선고기일이 지정되어서야 답변서를 제출하였음은 물론이고, 세 차례 열린 변론기일마다 그 2~3일 전이 되어서야 준비서면을 제출하는 태도를 반복하여 보였다.

필자는 재판이 지연되지 않도록 피고 소송대리인의 준비서면을 받아보자마자 해당 변론기일 전에 반박서면을 제출하고 변론에 출석했지만, 그러면 외려 피고 측에서 제가 제출한 반박서면의 검토가 필요하니 변론을 더 열어달라는 말을 꺼낸다. 결국 집중해서 한 두 번의 변론기일을 거쳐 끝낼 수 있었던 재판은 한 차례의 변론기일을 더 열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그만큼 판결도 늦춰진다.

이러한 일부 소송대리인들의 행태는 지난 2023. 12. 4. 사법정책연구원과 대한변호사협회가 공동 개최한 『재판 장기화와 그 해법』 세미나에서 재판 지연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하였다. 모르긴 몰라도 필자가 상대해본 소송대리인만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도 민사소송법에 제273조로 『준비서면은 그것에 적힌 사항에 대하여 상대방이 준비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두고 제출하여야 하며… 후략』라고 하였고, 민사소송규칙에도 제69조의 3으로 『새로운 공격방어방법을 포함한 준비서면은 변론기일 또는 변론준비기일의 7일 전까지 상대방에게 송달될 수 있도록 적당한 시기에 제출하여야 한다.』라고 정하는 등, 제반 법규에도 재판 지연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 엄연히 존재한다. 법률전문가로써 소송대리를 하는 변호사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러한 규정들을 준수하여 준비서면을 제출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도 재판이 잘 진행되어 제때 판결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면, 판결이 뒤늦게 이루어짐에 따라 그 실효성이 반감된다면, 과연 누가 재판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고 할까. 재판 지연으로 인하여 사법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이 가중된다면 결국 변호사 제도의 존립 근거 역시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변호사 스스로가 재판 지연에 일조하지는 않도록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민사원 변호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최우수로 졸업한 뒤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현)대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북부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남부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중앙지역군사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특별시 공익변호사/신길제1동 마을변호사, (현)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 (현)사단법인 동물보호단체헬프애니멀 프로보노 로 참여하고 있다.

<글=법률사무소 퍼스펙티브 변호사 민사원>

한국경제TV    박준식  기자

 parkjs@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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