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도화선' 박종철 열사 어머니 정차순씨 별세

입력 2024-04-18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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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종철 열사의 어머니 정차순씨가 17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박종철기념사업회와 유족에 따르면 정씨는 이날 오전 5시 20분께 서울 강동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정씨는 남편인 박정기씨가 2018년 먼저 세상을 등진 후 부산 자택에서 홀로 지내다 건강이 악화해 2019년 이후 서울의 요양병원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박 열사의 형인 종부(66)씨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어머니가 특별한 유언 없이 빙긋이 웃으시며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며 "아들 옆으로 간다고 생각하셔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열사는 서울대 언어학과에 다니던 1987년 1월 13일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주요 수배자를 파악하려던 경찰에 강제 연행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받다가 다음날 사망했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허위 조사 결과를 발표해 사인을 단순 쇼크사로 위장하려 했다.

그러나 이후 공안당국의 조직적인 사건·은폐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국민적 공분이 커지면서 6·10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이현주 박종철센터 센터장이 이날 빈소에서 취재진에게 공개한 '고(故) 정차순 여사의 어록 및 글'에 따르면 정씨는 박 열사 사망 후 "우리 철이 어디 갔나. 스물세 해 고이고이 키웠건만, 언제 온다는 말 한마디 없이 우리 철이 어디 갔나…"라고 말하며 아들을 그리워했다.

1987년 2월 7일 시민사회 주도로 진행된 국민추도대회에 참석하려다 경찰에 의해 가로막힌 정씨는 부산 사리암에서 박 열사 누나 은숙씨와 추도 타종을 했다. 아들과 동생을 잃은 슬픔과 통분에 울부짖으며 종을 치는 모녀의 모습은 사진으로 남아 시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1987년 부산 집회에서는 "(종철이는) 인간백정 경찰들에게 온갖 고문을 받고도 놈들 앞에 머리 숙이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습니다. 민중운동의 승리를 위해서, 떳떳하게 죽음을 택했던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내 아들"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를 이끈 남편 박씨와 함께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2000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데도 이들의 노력이 컸다. 당시 그를 비롯한 유가협 회원들은 두 법의 통과를 위해 국회 앞에서 422일간 천막농성을 벌였다.

2018년 3월 20일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요양원에 있던 남편 박씨를 찾아가 31년 만에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박씨는 사과를 받은 지 4개월여 뒤인 2018년 7월 28일 아들 곁으로 떠났다.

국가 폭력의 상징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새로 조성될 예정이다.

박종철기념사업회 측은 이날 "(정씨는) 막내아들 사망 이후 가족들과 함께 아들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애쓰셨고, 이후 남영동 대공분실이 인권의 메카로 거듭나기를 염원해 오셨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동성심병원 장례식장에는 각계의 조문이 이어졌다.

박 열사의 형 종부씨와 누나 은숙(62)씨 등 유족이 빈소를 지켰다.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은 빈소에 근조화환을 보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우상호(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강민정·이학영·이해식 의원, 녹색정의당 김찬휘 공동대표, 조국혁신당 차규근 당선인,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등이 조문했다.

우상호 의원은 "다음 주에 민주유공자법을 처리한다고 하는데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다가 숨지신 분들의 명예를 국가가 기리는 법안만큼은 윤석열 대통령도, 국민의힘도 반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돌아가신 (박 열사의) 어머니께서 하고 싶으셨던 말씀인 것 같아서 대신 대변하려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 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홍익표 원내대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 정치인과 윤희근 경찰청장, 문무일 전 검찰총장, 1987년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1987'에 출연한 배우 김태리 등이 보낸 근조화환이 놓였다.

발인은 19일 오전 8시. 고인의 유해는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된 후 모란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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