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국가핵심기술 해제' 논란…기업간 법적 공방에 영향 우려

이해곤 기자

입력 2026-03-30 11:26  



국가핵심기술을 두고 업계간 법적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지정 해제를 논의하면서 소송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30일 산업통상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보툴리눔 독소제재 생산기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해제 여부를 놓고 의견 수렴 등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다.

보툴리눔은 보툴리눔균(Clostridium botulinum)이 생성하는 신경 독소다. 근육과 신경의 신호 전달을 차단해 근육 마비를 일으키는 특성이 있어 의학적으로는 독소증과 주사 치료제로 활용되며, 다양한 질환 치료와 미용 목적으로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톡스로 알려져 있다.

최근 K-뷰티가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국내 제약회사들의 매출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제약업계 내에서도 관심이 높은 분야이기 때문에 균주·제조공정 관련 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분쟁 제약회사는 대웅제약과 메디톡스다. 앞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균주와 제조공정을 도용한 사실을 인정하며 손해배상 등을 명령한 바 있다.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기술을 탈취했다는 판단이다.

이 보툴리눔 독소제제 생산기술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는데, 문제는 이 핵심기술 지정 해제가 업계간 분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산업부는 보툴리눔 톡신·균주의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 여부를 재심의하는 생명공학 분야 전문위원회를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제를 요구하는 업계는 국가핵심기술로 묶여 있어 수출 때마다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보툴리눔 톡신업계에서는 균주와 제조공정을 도용한 사실이 인정된 대웅제약을 포함해 균주 출처가 불분명한 업체들이 소송의 핵심 쟁점인 독점적 영업비밀 여부와 기술 보호 가치에 대한 법적 판단에서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정이 해제될 경우 기술의 전략적 중요성이 낮아졌다는 해석이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핵심기술에서 해제되면 대웅제약은 진행 중인 형사 절차에서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를 벗게 될 가능성이 크고, 민사상 손해배상액을 대폭 낮추는 등 법적 책임을 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법적 분쟁이 이어지는 과정에 정부가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를 논의하는 것이 정당하지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국가권익위원회는 특정 기업 봐주기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실제로 확인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28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철환 전 국민권익위원장(오른쪽)이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이 유철환 전 권익위원장이 종결됐던 대웅제약의 민원을 재접수해 조사를 강행했다고 유착 관계를 지적했다.

국무조정실 조사 결과 권익위 수뇌부의 부당 개입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고, 최근 당시 관련 담당 국장은 새 위원장이 이달 4일 취임하면서 직위해제 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업계와 법조계에서는 최소한 현재 진행 중인 민·형사 재판과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국가핵심기술 지정해제 심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기술의 가치와 도용 여부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 전에 행정부가 서둘러 빗장을 풀어주는 것은 기술 보호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 바이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을 개발한 기업보다 탈취한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행정 절차는 정부의 기술 보호 의지를 의심케 한다"며 "외압 의혹이 명백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려지는 결정은 특정 기업을 위한 특혜로만 보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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