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십자가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증권가의 싸늘한 평가를 받고 있다. 주력 신약인 '알리글로'가 미국 시장에 안착 중이라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자회사 매각에 따른 외형 축소와 주요 수출 품목의 공급 지연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 "기대치 낮춰라" 목표주가 하향 도미노
17일 유가증권시장에서 녹십자의 주가는 15만 1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들어서만 6.90% 내렸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44.0%)을 크게 밑돈다. 2021년 기록했던 고점(42만 5000원) 대비해서는 64% 가량 하락한 상황이다.
문제는 녹십자를 바라보는 증권가의 시선이 더 차가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20일 삼성증권은 녹십자의 목표주가를 기존 22만원에서 20만원으로 9.1% 하향 조정했다. iM증권도 23만원에서 22만원으로 목표가를 낮춰 잡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유는 녹십자웰빙 매각으로 인한 사업포트폴리오 축소다.
녹십자는 최근 보유하고 있던 녹십자웰빙 지분 전량(22.1%)을 지주사인 GC홀딩스에 505억원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결정으로 녹십자웰빙은 2분기부터 녹십자의 연결 실적에서 제외될 예정이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녹십자웰빙 매각에 따른 연결 기준 실적 변경을 반영해 목표주가를 조정했다"며 "미국 시장에 진출한 혈액제제 알리글로의 성장 궤도 진입은 확인했으나 자회사 매각으로 인해 회사 전체의 실적 수치는 낮아졌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삼성증권은 올해 녹십자의 매출액을 2조 265억원, 영업이익을 720억원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기존 추정치 대비 매출은 1.3%, 영업이익은 21.9% 하향 조정된 수치다.
이번 매각으로 녹십자에는 약 500억원의 현금이 유입되고 차입금(빌린 돈)이 1150억원 가량 감소하는 재무 구조 개선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부채를 줄이고 현금을 확보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근본적인 체질 개선으로 보지 않는다. 서 연구원은 "이번 조치는 구조적 수익성 개선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축소 효과로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 1분기 영업이익 후퇴…중동 물류가 발목
증권가에서는 녹십자의 1분기 실적 눈높이도 낮춰잡는 분위기다. 연결 기준 영업이익에 대해 삼성증권은 120억원, iM증권은 118억원, 다올투자증권은 123억원을 예상했다. 특히 키움증권은 가장 낮은 107억원을 전망하며 시장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인 120억원~127억원을 하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실적 부진의 결정타는 중동 지역의 물류 차질이 꼽힌다. 중동 공항의 물류 문제로 인해 녹십자의 핵심 수출 품목인 수두 백신 '배리셀라'와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의 공급이 2분기 이후로 밀려났다. 헌터증후군이란 특정 효소 결핍으로 골격 이상·지능 저하가 나타나는 희귀 질환으로, 녹십자는 이 치료제를 세계 두 번째로 개발해 수출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배리셀라의 1분기 매출은 2025년 1분기 100억원에서 2026년 1분기 10억원으로 90% 가량 급감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동 공항 이슈로 배리셀라와 헌터라제 수출 물량 일부가 2분기 이후로 이연된 점이 실적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익률이 높은 제품들의 수출이 막히면서 영업이익 성장이 제한적인 상황이다.
허 연구원은 녹십자의 목표주가를 18만원으로 제시했다.

● 쪼개기 상장과 주주들 눈물
녹십자 그룹을 향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은 이른바 '쪼개기 상장' 논란이다.
녹십자는 그간 지씨셀(세포치료제), 녹십자엠에스(진단), 녹십자웰빙(영양주사), 지씨지놈(유전체 분석) 등 주요 사업 부문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해 상장시키는 전략을 취해왔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모회사와 자회사의 기업 가치가 중복으로 계산되는 '더블 카운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실제로 증권업계가 녹십자의 기업 가치를 산출할 때 적용하는 방식에서도 이러한 우려가 투영돼 있다. 주요 증권사들은 녹십자가 보유한 지씨셀(지분 33%), 녹십자엠에스(42%) 등 상장 계열사의 가치를 평가할 때 3개월 평균 시가총액에 30%의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자회사 상장에 따른 모회사의 가치 희석 가능성을 보수적으로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현재 녹십자의 EV/EBITDA는 15.9~18.5배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는 대형 제약사 평균인 14배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다. 시장의 기대치가 여전히 주가에 반영돼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녹십자가 향후 주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편의 정당성을 실적 개선으로 입증하고, 분산된 몸집만큼이나 강력한 본업의 수익성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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