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정신은 건강하십니까] 골프는 정신 건강에 해롭다? 가을 골프, 잘 하려고 할수록 안 되는 이유

입력 2026-09-07 13:41  

[당신의 정신은 건강하십니까] 골프는 정신 건강에 해롭다? 가을 골프, 잘 하려고 할수록 안 되는 이유

생각을 없애기보다, 생각에 끌려가지 않는 연습 필요


“가을 골프는 빚을 내서라도 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필드에 나가기 좋은 계절이라는 뜻일 것이다. 선선한 바람에 맑은 하늘, 잔디까지 좋으니 골퍼에게는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계절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날씨에도 마음만은 가을 하늘처럼 맑지 않은 골퍼들이 있다. 연습장에서는 분명 잘 맞았는데 필드만 나가면 뒤땅이 나고, OB가 나고, 짧은 퍼팅 앞에서는 손이 굳는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지는데 몸은 오히려 말을 듣지 않는다.

진료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다. 연습장에서는 괜찮은데 라운딩만 나가면 실수가 반복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공을 치기도 전에 ‘오늘도 이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부터 든다는 것이다. 이처럼 평소 잘하던 특정 운동 동작을 갑자기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을 입스(yips)라고 한다. 골프의 퍼팅이나 어프로치에서 특히 잘 알려져 있지만 야구, 테니스처럼 정교하고 반복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여러 스포츠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야구에서는 메이저리그의 척 노블록이 유명하다. 뛰어난 수비력을 인정받던 투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평범한 송구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포수 맥키 새서 역시 투수에게 공을 돌려주는 간단한 송구를 바로 하지 못하고 팔을 몇 차례 움찔거린 뒤에야 던지곤 했다. 입스의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다. 수천 번 반복해 몸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갑자기 못하게 된다.

▼ 입스는 단순히 ‘멘탈이 약해서’ 생기는 걸까?

입스는 흔히 긴장이나 수행불안의 문제로 설명된다. 중요한 순간 긴장하면 심장이 빨리 뛰고 근육에는 힘이 들어가며 평소 자연스럽게 하던 움직임도 어색해질 수 있다. 하지만 입스를 단순히 ‘긴장해서 몸이 굳은 것’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연구에서는 심리적 불안이 크게 작용하는 경우부터 특정 동작에서 자신도 모르게 근육이 굳거나 비정

상적으로 움직이는 ‘국소 근긴장이상’과 같은 신경학적 문제까지 여러 요인이 관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니 입스를 그저 ‘멘탈이 약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눈으로 보면 여기에는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한번 실패하고 난 뒤 우리의 주의와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이다. 평소라면 짧은 퍼팅을 놓치고도 ‘아, 조금 밀렸네’ 하고 지나갈 수 있다. 그런데 비슷한 실수가 몇 차례 반복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또 밀렸네.’
‘아까도 그랬는데.’
‘또 그러면 어떡하지?’
‘혹시 입스가 온 건가?’

불안해지면 사람의 주의는 중립적인 것보다 위험이나 실패를 암시하는 신호에 더 쉽게 끌릴 수 있다. 애매한 상황도 평소보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기 쉽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주의편향, 해석편향과 같은 ‘인지편향’으로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한번 신경 쓰이기 시작한 실패가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한 번의 짧은 퍼팅이 ‘오늘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오늘도 퍼팅이 안 된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잘 친 여러 번의 샷보다 조금 전의 실수가 더 선명하게 남고, 다음 샷에서도 잘 맞을 가능성보다 또 실패할 가능성을 먼저 떠올린다. 불안에서 위협적인 정보에 주의가 더 쉽게 끌리는 현상과 여러 부정적 인지편향의 관계는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에서도 보고되어 있다.

▼ 몸이 하던 일을 머리가 간섭하기 시작할 때

문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진행된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움직임을 더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한다. 운동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과도한 의식적 운동 통제(reinvestment)’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충분히 연습해서 몸에 밴 움직임을 중요한 순간에 다시 머리로 하나하나 확인하고 조절하려는 것이다. 처음 골프를 배울 때는 스윙의 각 단계를 생각해야 하지만 숙련될수록 여러 동작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결정적인 퍼팅을 앞두고 갑자기 손목과 그립, 어깨와 백스윙을 하나하나 의식하기 시작한다면, 잘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자동화된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다. 결국 악순환은 이렇게 이어질 수 있다.

한 번의 실수 → ‘또 그러면 어떡하지?’ → 실패의 신호가 자꾸 눈에 들어옴 → 내 움직임을 지나치게 살핌 → 몸이 알아서 하던 동작까지 머리로 통제함 → 움직임이 더 어색해짐 → 다시 실수 → ‘역시 또 안 된다.’

▼ 생각을 없애기보다, 생각에 끌려가지 않는 연습

그렇다면 어떻게 이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순간 오히려 그 생각을 계속 확인하게 되는 상황. 우리 일상에서도 부정적인 반추가 일상을 괴롭혀 진료실을 찾게 되는 분들이 있다. 입스에서도 진료실 이 상황에서도 마음챙김의 원리가 힌트를 줄 수 있다. 불편한 생각이나 감정을 당장 없애려고 하기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되,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좋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음챙김 능력과 감정조절 능력의 향상은 치료적 변화와 관련된 중요한 요소로 연구되어 왔다.

골프에 적용한다면 거창할 필요도 없다. 퍼팅을 앞두고 ‘또 놓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라고 싸우기보다 ‘아, 지금 내가 실패를 걱정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손에 긴장이 느껴져도 ‘큰일 났다, 또 시작됐다’고 판단하기보다 ‘지금 손에 힘이 좀 들어가 있구나’ 정도로 관찰한다. 그런 다음 다시 공과 목표 지점, 평소의 준비 순서로 주의를 돌린다.

이 작은 차이가 중요하다. 내 몸을 고치기 위해 들여다보는 것과, 지금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다시 해야 할 일로 돌아가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는 태도가 오히려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 감정조절도 마찬가지다. 목표가 불안을 0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긴장한 자신에게 ‘왜 이것도 못하지’라고 화를 내면 처음의 불안에 좌절과 수치심까지 더해진다. 반대로 ‘중요하니까 긴장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그 감정과 다음 행동을 분리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불안하다고 해서 반드시 스윙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고, 직전 퍼팅을 놓쳤다고 해서 다음 퍼팅까지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인지치료의 뉴웨이브 일종인 변증법적 행동치료에서도 감정이 올라온 상태에서 즉각 그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재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이 요구하는 행동이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중요하게 다룬다. 감정조절을 목표로 한 심리치료들에 대한 최근 종합 연구에서도 이런 접근이 감정조절의 어려움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입스의 순간 필요한 것은 ‘마음을 강하게 먹는 것’보다 조금 다른 것일 수 있다.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음을 알아차리고, 그것과 싸우지 않고, 내 몸을 지나치게 고치려 들지도 않은 채 다시 지금 해야 할 한 번의 동작으로 돌아오는 것.

퍼팅 전에는 평소 해오던 순서와 리듬을 유지하고, 시선은 공과 목표에 두고, 이미 수없이 연습해온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조금은 몸에 맡겨보는 것이다. 어쩌면 다음 라운드에서 필요한 것은 완벽한 스윙에 관한 생각을 하나 더 머릿속에 넣는 것이 아니라, 생각 하나를 조금 덜 붙잡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뒤땅과 OB는 오늘 골프장에 두고 오는 편이 좋겠다. 그리고 다음 공을 맞을 때 이 글도 잊는 것이 좋겠다.

<자문>

김기원 가야삼성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의학박사, 전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 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임의

<이미지 생성 = 챗 GPT>

한국경제TV    박준식  기자

 parkjs@hankyung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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