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달러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한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입법조차 마무리 짓지 못해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3,200억달러, 지난해 연간 거래량은 28조달러에 달한다. 이 시장의 99.4%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다. 비달러권에서도 현지 통화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구매한 거래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BIS는 전통 외환시장과 병존하는 새로운 '암호자산 기반 외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달러가 디지털 지갑 안에서도 기축통화 지위를 굳히고 있는 것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은 미 국채 수요도 끌어올리고 있다. 테더·서클의 자산 중 미국 단기국채 비중이 53%에 달하며, 두 회사의 단기국채 보유액은 2022년 이후 700억달러 늘었다. 스테이블코인이 커질수록 미 국채를 매입하는 민간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구도다.
미국은 제도 정비까지 마쳤다. 지난해 7월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제정해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준비자산·상환·공시 기준을 법제화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이를 "달러 패권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으로 규정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는 AI 컴퓨팅 자원 접근과 달러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연계하는 '컴퓨트 달러' 전략도 제시됐다. 과거 원유 결제와 달러를 묶었던 페트로달러처럼,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달러 수요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한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틀도 없다. 올해 상반기 통과가 기대됐던 디지털자산 2단계 입법이 거래소 대주주 적격성·지분율 상한 논의에 발목이 잡혀 표류 중이다.
발행 주체나 준비자산 요건 같은 기본 규율조차 확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달러 기반 결제·정산 인프라가 글로벌 표준으로 먼저 굳어지면 국내 기업과 이용자의 달러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논의가 지연될수록 글로벌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달러 종속이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업계에서는 지배구조 논쟁과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분리해 합의 가능한 부분부터 먼저 입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금융의 기본 언어가 되기 전에 원화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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