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국민 46만명] ⑦범죄 사각지대로 몰린 거주불명자들

입력 2017-03-02 07:30   수정 2017-03-02 08:14

[사라진 국민 46만명] ⑦범죄 사각지대로 몰린 거주불명자들

한계 계층으로 범죄 유혹에 빠지거나, 범죄의 표적 되기 쉬워

전문가 "빈곤·가족해체→거주불명 악순환…사회안전망 구축 시급"

(수원=연합뉴스) 최해민 기자 = 우리 사회가 파악하지 못하는 국민이 46만명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통계는 범죄와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더욱 실감하게 된다.

거주불명자들은 채무를 회피하기 위해, 가정불화 탓에, 혹은 범죄에 연루돼, 저마다의 사정으로 제도권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최근 일어난 범죄 사례들을 보면 거주불명자들이 범죄 표적이 된 경우나 반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문제 등으로 인한 가족해체가 거주불명으로 이어지고, 이 문제가 거시적으론 당사자들을 가해자 혹은 피해자 역할로 '범죄 사각지대'에 내몰고 있다고 진단한다.


◇ 주민등록상 거주지 불일치 '범죄표적 우려'

지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충북 청주 축산노예 사건은 실종으로 행방불명된 40대가 무려 19년에 걸쳐 무임금 강제노역에 시달린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지적장애인 고모(48·지적장애 2급)씨는 20년 전인 1997년 충남 천안의 한 양돈농장에서 일하다가 영문도 모른 채 소 중개인의 손에 이끌려 청주시 청원구 김모(69)씨 농장으로 오게 됐다.

이곳에서 그는 2평 남짓한 축사 창고 옆 허름한 쪽방에서 생활하며 소똥을 치우고, 여물을 챙겨주는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하루 12시간에 달하는 고된 노동에 동원되면서도 대가는 받지 못했다.

품삯은 고사하고 일을 못 하면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고 심지어 매질도 당했다.

그가 생활한 쪽방은 축사와 불과 3m도 안 떨어져 소똥 냄새가 진동했고, 바닥에 깔린 전기 패널의 온기만으로 겨울을 나야 했다.

이런 악몽 같은 시간은 지난해 7월 1일 밤 축사를 나온 고씨가 경찰에 발견되면서 비로소 끝이 났다.

지옥으로 끌려온 지 꼭 19년 만이다.

고향집과 이 축사는 불과 18㎞ 거리로, 자동차로 20여분 걸리는 집까지 돌아오기까지 무려 19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고씨가 우연히 비를 피하려고 들어간 공장에서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다면, 그의 강제노역은 죽을 때까지 계속됐을 수도 있다.

20년 전 고씨 어머니는 경찰에 실종(미귀가) 신고를 했지만 아들을 찾지 못했다.

어머니는 "언제든 돌아올 아이"라며 고씨의 주소지를 청주 오송읍 예전 집으로 해놨다.

이로 인해 고씨는 공식적인 거주불명자는 아니었지만,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실 거주지와 불일치한 상태였다.

우리 사회가 몰랐던, 정부는 파악조차 하지 못했던 이 거주 불일치자는 19년을 범죄 피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고씨 외에도 범죄 표적이 되는 거주불명자 사례는 범죄에 노출된 노숙자들에게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달 28일엔 서울 영등포역 인근에서 노숙인끼리 싸움이 일어나 40대 남성이 숨졌고, 같은달 16일 광주광역시에서는 식당에서 얻어온 밥을 노숙인끼리 나눠 먹으면서 자신만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40대 노숙인이 60대 노숙인 잠자리에 불을 놓아 중상을 입히는 사건도 있었다.



◇ 경찰 "주민등록상 주소는 못 믿어"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이 투입된다.

살인, 폭력, 절도, 강도 등 사건 유형을 막론하고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관련자 신원 확인이다.

피해자가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 가해자는 누구일지, 어디 살고 있을지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경찰은 수사 시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을까.

현직 형사들은 "사건에 연루된 피해자나 피의자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거의 믿지 않는다"라고 입을 모은다.

그도 그럴 것이 강력범죄에 연루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맞지 않는, 제도권 밖 사람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5월 경기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 사건인 조성호 사건의 피해자 최모(당시 40세)씨 역시,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인천 소재 어머니 집이었다.

하지만 조성호(31)씨와 인천 연수구에서 동거생활을 해오다 같은해 4월 13일 밤 살해됐다.

경찰은 같은 해 5월 1일 오후 3시 50분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도 내 불도방조제 입구 근처 한 배수로에서 마대에 담긴 남성 하반신 시신이 발견돼 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3일 오후 2시께 대부도 북단 방아머리선착장 인근 시화호쪽 물가에서 수색 중 상반신이 발견되자 피해자 최씨의 신원을 확인, 주소지를 찾아갔지만 어머니 집이었다.

탐문조사를 거쳐서야 최씨가 모텔 근무 당시 만난 조씨와 동거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고, 이후 관련 증거를 모아 조씨를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한 현직 형사는 "요즘엔 주민등록상 주소는 일단 참고만 하고, 보다 정확하게 하기 위해선 휴대전화 요금 고지서 발송 주소지를 확인한다"라며 "이 또한 이메일로 돌려놓거나, 휴대전화 가입 시점이 오래되면 정확한 주소지를 찾기 어려워 여러가지 다른 방법으로 주소지를 찾는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형사는 "공식적인 거주불명 등록자뿐 아니라 주민등록상 주소지 등록이 돼 있는 사람이라도 사건 관계자가 되면 실 거주지를 찾는 게 중요하다"라며 "그렇다보니 거주불명자라고 해서 수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가족 등과 연락이 끊긴 사람의 경우 체포 통지, 출석 통보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가족해체→거주불명→범죄 사각지대…고리 끊어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거주불명자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를 단 한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내막을 정확하게 알 순 없다.

다만 거주불명자들은 경제적인 문제로 채무를 회피하기 위해 또는 가정불화 탓에 거주지를 옮긴 뒤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빈곤이나 가정불화가 거주불명으로 이어지고, 거주불명자가 범죄 사각지대에서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범죄에 노출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창무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전 한국경찰연구학회장)는 "제도권에서 제외된 거주불명자들은 사회 양극화에 따른 소득불균형에 한계계층으로 몰려 범죄 유혹에 빠지기 쉽고, 반면 신분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범죄를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는 입장에 처할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설사 제도권에서 멀어졌더라도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구축돼야 이들을 다시 제도권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라며 "복지측면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 생각된다"라고 덧붙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주민등록상 거주지에 실제로 거주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으로 보인다"며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클 것이고, 범죄 가해자를 피해 거주지를 이탈했다던가, 성범죄를 저지른 신상정보 등록자가 다른 지역에 사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주불명자들이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어떤 형태로든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좀 더 큰 것은 사실"이라며 "거주불명자에 대한 당국의 관심과 파악, 거주불명 해소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거주불명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는 빈곤이나 가족해체 등의 문제가 해소되는 것인데 현실성 있는 대책이 나오긴 어려울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goal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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