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 미국에서 흑인을 공개로 인종 차별하던 시절 흑인의 안전한 여행을 돕는 안내책이 있었다.
미국 CBS 방송은 '흑인 역사의 달' 마지막 날인 2월 28일(현지시간) 흑인의 생존 여행 지침서인 '그린 북'(Green Book)을 소개했다.
뉴욕 시 우체국에서 근무하던 흑인 빅터 그린이 제작한 책으로 원제는 '흑인 운전자를 위한 그린 북'이다. 자신의 이름에서 책 제목을 따오면서 표지도 녹색으로 만들었다.
그린은 동료 흑인 집배원들에게서 참고 자료를 얻어 주(州)마다 차별 없이 모든 이에게 개방하는 숙소, 식당, 주유소 등을 이 책에서 소개했다.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미주리, 캔자스, 오클라호마,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주를 거쳐 캘리포니아 주 샌타모니카에서 끝나는 총 길이 3천939㎞의 66번 국도를 타고 여행하는 흑인들은 이 책을 필독서로 여겼다.
1936년부터 미국에서 흑인 차별이 공식적으로 사라질 무렵인 1966년까지 총 1만5천 권이 인쇄됐다. 1941년 판 그린 북은 2015년에 한 경매에서 2만2천 달러(약 2천486만 원)에 팔렸다.
흑인인 커티스 그레이브스(78)는 CBS 방송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차를 타고 여러 지역으로 갈 때마다 주유소에 들르면 사람들이 나와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당신들에게 팔 기름은 없다'고 했었다"면서 흑인들이 거부당하는 건 다반사였다고 회고했다.
또 일몰 후 백인의 흑인 공격이 자행되는 '일몰 마을'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마을에 사는 백인들은 유색인종에게 일몰 전까지 마을을 떠나라는 섬뜩한 포스터를 가게 밖에 걸어두고 겁박하기도 했다.
그레이브스는 "그린 북 덕분에 여행을 떠나도 당황하거나 의기소침하지 않게 됐다"고 했고, 또 다른 흑인인 AC 하워드는 "그린 북은 우리에게 생존 지침서와 같았다"고 말했다.
CBS 방송은 당시 비인간적 인종차별을 겪은 여행 세대에게 그린 북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위안을 줬다고 평했다.
지난해 일간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그린 북에 수록된 호텔, 이발소 등 로스앤젤레스 지역 흑인 출입 업소 224개 중 56개가 지금도 영업 중이다.
'흑인 역사의 달'은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흑인과 이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과거 사건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생겼다.
미국 흑인 역사학자 카터 우드슨이 1926년 2월 둘째 주에 만든 '흑인 역사 주간'이 효시로 미국과 캐나다에선 해마다 2월에, 영국에선 10월에 '흑인 역사의 달'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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