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재구성한 '구한말 풍운아' 민영익 일대기

입력 2017-06-02 10:47  

소설로 재구성한 '구한말 풍운아' 민영익 일대기

김원우 장편소설 '운미회상록'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신절을 지키느라고 만년을 중국 땅 상해에서 외로이 입을 봉하고, 그것도 가탁의 은둔생활을 곰곰하니 꾸려내면서 한편으로는 서화에의 골몰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행적 지우기로 자학을 일삼았지 싶은 운미는, 그의 난화가 말하듯이, 자신의 생애 전반에 대한 어떤 촌평도 터무니없는 수작이라며 돌아앉았을 양반이다."

소설가 김원우(70)가 구한말 개화사상가이자 난화가였던 운미(芸楣) 민영익(1860∼1914)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소설 '운미회상록'(글항아리)을 냈다. 제목에서 보듯 소설은 1인칭 회고 형식이다. 구한말 격랑의 역사와 함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민영익의 심리·성격 묘사가 두드러진다. 인용한 '작가의 말'은 민영익의 인간 됨됨이는 물론 만연체 안에 한국어를 맛깔나게 운용하는 작가의 특기를 잘 보여준다.

열다섯 살 되던 해 중전 민씨의 친정집에 양자로 입양된 민영익은 명성황후와 고종의 후광으로 출세 가도를 달린다. 개화정책에도 적극 가담했다. 1883년 외교사절단인 보빙사(報聘使)로 미국에 파견된 뒤 유럽을 거쳐 돌아옴으로써 한국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인물로 기록된다.

하지만 김옥균 등 급진개화파와 갈등을 겪다가 갑신정변 때 겨우 목숨을 건졌고, 스물일곱 살이던 1886년 중국으로 건너가 망명생활을 시작한다. 망명지에서 홍삼판매로 큰 돈을 번 민영익은 은둔한 채 그림을 그리며 말년을 보냈다.






소설은 '망명객 민씨 일대기'를 펼쳐놓고 마지막 장에서 작자가 누구인지 논하며 끝난다. 복잡하고 다소 뒤틀린 민영익의 기질이 제 입을 빌어 묘사된다. 김옥균 등과 갈등 끝에 개화정책을 접고 망명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누구든 쓰기 나름이라는 이 간단한 철리를 감정에 치우쳐서 한사코 듣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무리들이라니. 내 기질상 나는 제 감상적 의사만 옳다는 그 옹졸한 족속들과는 말을 섞기조차 싫어졌다. 어차피 서로가 제 주장을 꺾지 않고 제 고집만 부릴 텐데, 시간 낭비 아니겠는가."

작가는 재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하루에 원고지 10매씩을 육필로 써 1천쪽 넘는 대작을 완성했다. 참고문헌으로 든 논문과 책이 50여 편이다. 작가는 "불과 100여 년 전의 당시 기록물들도 거의 구전에 기대고 있는 설화 같은 게 수두룩하다"며 "그런 '하더라' 체의 난무 때문에라도 그는 망외의 여러 구설수로 무르춤해질 수밖에 없는 푸른 양반이었을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1권 480쪽. 2권 524쪽. 각권 1만8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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