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서울의대 조교수 버리고 아프리카 가나로 간 강미주씨

입력 2017-06-15 09:58  

[사람들]서울의대 조교수 버리고 아프리카 가나로 간 강미주씨

KOICA '글로벌협력 의사'로 복강경 수술법 전수 "삶의 의미 찾아왔어요"

"봉사는 전문경험 살려 실질적 도움 주는 것…낭만적 접근 안돼"




(아크라<가나>=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지난 2007년 의학드라마 '하얀거탑'이 안방극장을 사로잡있다. 배우 김명민과 이선균, 차인표, 송선미 등이 열연했다. 외과의사 강미주(여·40) 박사는 자신의 전문인 간, 담도, 췌장 분야를 TV에서 처음으로 다룬 이 드라마에 특별히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강 박사는 복강경 수술로 경력을 쌓았다. 2004년 서울대 의과대를 졸업하고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 펠로우, 조교수까지 11년을 한 곳에서 일했다. 부교수, 정교수 등의 탄탄대로가 펼쳐졌지만 그는 과감히 포기하고 서부 아프리카 가나를 택했다. 현재 직함은 정부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글로벌협력 의사'. 과거 군 복무 대체제도에 의해 남자 의사들에게만 적용됐지만 제도 폐지 이후 여성들도 참여할 수 있게됐다.

현지 시간으로 14일 가나에서 세번째로 큰 병원인 '그레이트 아크라 리저널 병원'에서 강 박사를 만났다. 1920년 지어진 탓에 곳곳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는 지난해 3월 이 병원에 와서 1년 4개월째 복강경 수술 도입과 현지 의료진 역량 강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교육이 주된 임무지만 한국에서처럼 진료를 하고 외래환자를 돌보며 수술도 한다. 지금까지 월 120∼150명의 외래진료와 40∼60건의 수술을 진행했다. KOICA는 이 병원에 복강경 수술을 위한 의료기기 등을 지원했다.

"KOICA에 군 대체복무 제도가 있던 시절 개발도상국에 3년간 갔다 온 선배들로부터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때 여성은 갈 수 없었으니까 전공이 끝나면 국경없는의사회를 통해 개도국 봉사를 가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아는 선배가 KOICA에서 모집 공고가 났다고 알려줘 응모해 가나로 온 것입니다."

쉽고 편한 길을 두고 왜 이렇게 힘들고 험한 길을 걷고 있는지 궁금했다. '계가가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굳이 제가 아니어도 서울대 병원까지 올 수 있는 사회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치료할 의사들은 많잖아요. 저는 좀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배운 재능을 쓰고 싶었어요. 복강경 수술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생각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생각만큼 가나의 의료 수준이 열악하지는 않았다. 의료진의 역량도 훌륭하고 일차적인 진료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개복을 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환부를 도려내는 복강경 수술을 감당할 수준까지는 못됐다. 강 박사에게는 관련 기계들을 도입하고 의료진에게 수술 시연이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지금까지 복강경 수술을 위해 기계 견적을 받고 구매하고 설치하는 데 1년 걸렸어요. 지난 2월 첫 수술을 시작해 5건이 진행됐고요. 현지 의사들도 관심을 보이고 수술실에 들어와서 함께 참여하기도 합니다. 처음 수술하던 날은 가나 일간지, TV, 라디오 등 10여 군데에서 대서특필됐어요."

수술법 전수를 위해 의사와 간호사 상대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강 박사는 환자가 죽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한 이 나라 의사나 환자 가족들의 태도에 답답함을 느낀다. 독특한 종교적인 배경 때문인 듯하지만 어려운 환자가 들어오면 살리려는 시도조차 않고 그냥 포기하는 경우를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 현지 의사들에게 "환자는 의사가 노력하면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강 박사는 내년 3월 초 계약기간이 끝나면 재연장해 이 나라 의사들이 자신이 없이도 복강경 수술을 할 수 있게끔 해 놓고 귀국할 작정이다.

그는 지금도 '어떻게 하는 게 의사로서 보다 의미 있게 사는 길인가'를 고민 중이다. 대학병원에서 연구하고 후배를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옳은 길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나행을 결행한 그였다. '이곳에서 지내보니 이젠 확신이 섰느냐'는 질문에 그는 "저는 평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도 확신을 못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봉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봉사에는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겼다. 저도 11년간 한국에서 의사로 일한 경험이 있었기에 여기에서 인정받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며 "환상이나 낭만으로 봉사에 접근하면 안된다"고 조언했다.

ghw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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