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연평해전 15주년] ③이희완 소령 "허 찌르는 게 北 수법"

입력 2017-06-28 06:11   수정 2017-06-28 06:15

[제2연평해전 15주년] ③이희완 소령 "허 찌르는 게 北 수법"

"北, 월드컵축제 틈타 도발…박동혁 병장 보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특별한 느낌은 없었죠. 한일 월드컵 3·4위전으로 온 국민이 들뜬 틈을 타 북한이 뭔가 '수작'을 부릴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지만…."

2002년 6월 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에서 남북한 해군이 충돌한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인 이희완(41) 소령은 지난 2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투 당일 아침을 이렇게 회고했다.

제2연평해전은 NLL을 기습 침범한 북한 경비정과 우리 해군 고속정이 교전을 벌인 사건이다.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우리 해군 '참수리 357' 고속정 장병 6명이 전사했다. 참수리 357 부정장이었던 이 소령도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제2연평해전 당일 26세의 해군 중위였던 이 소령은 동이 터오는 새벽 6시 30분, 평소와 다름없이 약 30명의 동료와 함께 고속정에 올랐다.

고속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경보음을 울리며 NLL 바로 남쪽에 떠 있는 대형 바지선인 연평도 해상전진기지에서 출항했다.

한국과 터키 축구대표팀이 한일 월드컵 3·4위전을 하는 날이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한국 대표팀의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온 국민이 축제 분위기였다.

참수리 357 고속정 대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녁에 임무를 마치고 기지로 돌아오면 TV 앞에 모여앉아 '대∼한민국'을 외치며 태극전사들의 활약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들떠 있었다.

고속정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NLL을 따라 항해를 시작했다. 조금 남쪽에는 연평도 꽃게잡이 어선들이 어장을 향해 항해하고 있었다.

오전 9시 37분, NLL 북쪽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북한 중형 경비정 한 척이 NLL 쪽으로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대형 경비정 한 척이 그 뒤를 따랐다.

북한 경비정 두 척이 잇따라 NLL을 침범하자 주변에 있던 우리 함정들은 바로 대응 태세에 들어갔다. 참수리 357 고속정은 북한 대형 경비정이 더 내려오지 못하게 2∼3㎞의 거리를 두고 차단 기동을 했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은 참수리 357 고속정으로 빠르게 다가오더니 85㎜, 37㎜, 14.5㎜ 함포로 일제 사격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월드컵으로 축제 분위기인 것을 북한은 도발의 기회로 삼은 듯합니다. 항상 그런 식으로 허를 찔러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게 북한의 수법이죠."


북한 경비정의 공격으로 참수리 357 고속정의 정장 윤영하(당시 29세) 소령이 전사했다.

부정장이었던 당시 이 중위는 북한 경비정의 포격으로 쓰러졌다가 눈을 떠보니 오른쪽 다리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지휘권을 물려받은 그는 극심한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전투를 지휘했다.

고속정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심하게 흔들렸고 조타실이 있는 함교는 불길에 휩싸였다. 머리 위로는 북한군이 쏜 총탄들이 공기를 가르며 지나갔다.

해상전투에서는 선제공격을 당한 쪽이 절대적으로 불리하지만, 참수리 357 고속정 대원들은 용감하게 싸웠다. 40㎜와 20㎜ 함포로 맹렬하게 대응 사격을 하자 북한 경비정도 이내 화염에 휩싸였다.

위생병인 박동혁(당시 21세) 병장은 손가락이 모두 잘려나간 상태에서 팔목으로 화기를 고정해 사격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참수리 357 고속정이 거세게 반격하고 주변에 있던 참수리 358 고속정과 초계함도 집중포화를 퍼붓자 북한 경비정 두 척은 NLL 북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참수리 357과 맞붙었던 대형 경비정은 불길에 휩싸인 채 중형 경비정에 예인돼 퇴각했다. 북한군 사상자는 약 30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됐다.

31분에 걸친 전투가 끝나고 참수리 357의 예인이 시작되자 이 소령은 그제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온몸으로 느꼈고 이내 정신을 잃었다.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매고 겨우 의식을 회복한 이 소령은 동료 여러 명이 전사하고 참수리 357은 예인 중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의 눈물을 흘렸다.

처절했던 전투도 벌써 15년 전의 일이 됐다.

그동안 이 소령은 결혼해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고 지금은 합동군사대학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오는 11월에는 중령으로 진급할 예정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딸은 제2연평해전에서 한쪽 다리를 잃어가며 싸운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이 소령은 아이들에게 "언젠가 군인이 돼 아버지와 같이 북한군을 맞닥뜨리면 절대 도망하지 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라고 가르친다.

이 소령은 제2연평해전 15주년을 맞아 당시 전사한 박동혁 병장을 유독 떠올린다.

치기공학을 전공한 박 병장은 치기공사가 돼 부모님께 효도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품고 있었다. 지금도 살아 있다면 서른을 훌쩍 넘긴 치기공사가 돼 있을 박 병장을 상상한다고 한다.

"성품이 밝고 맑아 대인관계가 참 좋은 친구였죠. 제2연평해전 15주년을 맞아 살아남은 전우들을 만나면 동혁이가 무척 그리울 것 같습니다."


ljglor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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