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 "달라진 뉴욕, 그래도 고독한 매력이 있지 않은가"

입력 2017-07-16 14:41   수정 2017-07-16 16:43

한대수 "달라진 뉴욕, 그래도 고독한 매력이 있지 않은가"

공연 차 뉴욕 이주 1년 만에 한국 방문…"촛불집회로 이뤄낸 안정은 기적"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저 친구들 음악 정말 잘해요. 한 곡만 듣고 갑시다."

신촌 로터리를 걷다가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리자 한대수(69)는 손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버스킹(거리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인데도 꽤 많은 젊은이가 모여있었다.

밴드의 이름은 안코드. 유창한 한국어 실력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 안코드를 주축으로 흑인 특유의 솔(Soul)이 일품인 색소포니스트 태보고, 수려한 연주 실력의 바이올리니스트 탁보늬로 이뤄진 팀이다.

한대수는 "안코드란 친구의 이력이 정말 독특하다", "색소폰 연주가 죽이지 않느냐"며 거리에서 환호했다.

한 곡이 끝나자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뒤 지갑에서 1만 원을 꺼내 밴드에게 답례하고선 다시 걸었다.

"뉴욕에는 풍요로운 거리 공연들이 정말 많아요. 거리에서 만나는 할아버지 블루스 뮤지션의 연주는 차원이 다르죠."

'포크록의 거장', '히피 문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한대수를 다시 만난 것은 송별회에서 막걸릿잔을 부딪힌 지 딱 1년 만이다. 그는 초등학생 딸 양호가 한국의 학업 풍토에 억눌리지 않길 바란다면서 지난해 7월 몽골계 러시아인 부인 옥사나 알페로바와 함께 뉴욕으로 이주했다.

세 가족이 8월 중순까지 머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아담한 레지던스에 들어서니 마치 몇 년은 산 집처럼 짐이 빼곡했다. 그가 뉴욕으로 가기 전까지 가족과 12년간 살던 신촌의 10평대 오피스텔의 풍경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옥사나가 이 짐을 다 싸들고 왔어요. 하하. 정말 못 말리는 대단한 여자죠."





그가 한국을 다시 찾은 것은 지난 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융복합 공연 '할리우드의 피터와 늑대'에서 해설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 코리안심포니의 연주, 애니메이션이 한 무대에서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는 내레이션하는 로커의 음악이 삽입되는데 한대수의 '고무신'이 들어갔다.

그는 "80인조 오케스트라와 공연하는 것은 처음이고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는 대중 가수가 서기 힘든 무대여서 흥분됐다"며 "화폐도 중요했는데 가족이 한국에 나올 기회였다. 양호가 미국에 적응을 너무 빨리해서 한국말을 잊어버릴까 봐 걱정됐다"고 이 공연에 끌린 이유를 꼽았다.

뉴욕에서 떡볶이와 돼지 껍데기, 불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는 양호는 유창한 영어로 아빠 옆에서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한대수도 슬픈 가족사로 인해 10대에 아버지를 만나러 미국으로 건너가 청년기를 뉴욕에서 보냈다. 1966년 뉴햄프셔 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했다가 자퇴하고 적성을 찾아 뉴욕 사진 학교에 다닌 그는 1968년 미국에서 귀국해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 무대를 밟았다. 쎄시봉 사회자 이백천은 당시 그를 "미국에서 바다 건너 노래하러 온 한대수"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세월을 건너뛴 뉴욕은 달라져 있었다고 한다.

"알고는 왔지만, 뉴욕이 장난이 아니에요. 과거엔 지금처럼 분위기가 험악하고 빈부 차이가 크지 않았죠. 재벌 0.1%는 딴 세상 사람이고 빈곤층은 너무 많아졌어요. 중산층은 월세 낸다고 허덕이며 살죠. 경제학자나 철학자들이 뉴욕을 관찰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급진적으로 발전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구나' 하고 한눈에 보이니까요. 과거의 낭만과 뉴욕의 느낌이 많아 사라진 것이죠. 전부 다 돈이에요."

그가 1967년 살던 이스트빌리지의 '원 베드룸'은 월세가 50달러였으나 지금은 4천500달러가 됐다고 한다. 허름하고 가난한 동네들도 중국, 홍콩, 아랍 등지 자본이 들어와 깨끗하게 단장되면서 토박이들이 쫓겨나고 집값이 뛰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심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40년 지기 사진작가 친구를 만나면 '옛날에 우리가 일할 때의 뉴욕이 좋았다. 그 뉴욕은 어디 갔느냐'고 한탄한다"며 "그러나 뉴욕이 고독한 매력은 있지 않나.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만들어냈고, 밥 딜런도 뉴욕의 그린위치 빌리지에서 록을 하지 않았나"라고 '크하하' 웃었다.







맨해튼에서 15분 거리의 퀸스에 사는 그는 한국의 음악 터전을 버리고 가족을 부양하는 삶은 힘에 부치지만, 딸이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다. 내년이 칠순인데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에 감사하다며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와~ 오늘이 최고의 날이야"라고 말한다며 다시 웃었다.

"전 사실 한국이 편하죠. 하지만 양호가 학업에 짓눌리는 것이 싫었어요. 미국 학교는 한국보다 쉽게 가르치고 학비도 공짜죠. 또 양호와 요즘 박물관과 전시회를 다니는데 지적인 자양분을 섭취하길 바라요.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세계적인 관념을 열어주고 싶어서 대학 입학 때까지 노력할 겁니다. 그리고서 저는 다시 신촌의 고시원으로 돌아와야죠. 크하하~."

그는 오전 7시50분에 아이를 등교시킨 뒤 홀로 카메라를 둘러메고 자연사박물관과 전시회를 다니며 사진을 찍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또 일간지 칼럼도 쓰고, 뉴욕시립대학교 영상학과 정영 교수의 제안으로 '한대수의 마이 뉴욕'이란 팟캐스트를 2주일에 한 번씩 하고 있다. 그는 팟캐스트에서 뮤지컬 '캣츠', 롤링스톤스 전시회 등 뉴욕에서 일어나는 음악, 미술, 공연 등 문화예술 소식을 전한다.

그는 "세계적으로 전쟁, 시기, 질투, 거짓말이 난무하는 시대이니 아름다운 예술 이야기를 꾸준히 들려줘 사랑과 평화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주 가끔은 친구가 운영하는 리노베이션 업체에서 양탄자를 뜯거나 페인트를 칠하며 일당도 받는다고 했다.

"뉴요커들은 투잡, 쓰리잡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전 나이가 있으니 그리 힘들지 않은 일을 시켜주죠. 택시를 운전하려 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위험한 데다가 이미 뉴욕 택시는 방글라데시 친구들이 꽉 잡았더라고요. 교포들이 뉴욕의 다리는 방글라데시라고 말한 이유를 알겠더군요. 크하하~."







그는 자신이 떠난 직후 일어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등 한국의 파란만장한 격동기를 나라 밖에서 지켜본 소회도 전했다. 지난겨울 촛불집회에 전인권, 양희은, 한영애 등의 가수들이 노래로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졌듯이 그도 한국에 있었다면 이 무대를 채웠을 법하다.

그는 1970년대 군사정권 시대에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 '희망가' 등이 담긴 1·2집이 체제 전복 음악이라며 금지되는 수난을 겪었고, 전쟁과 테러, 경제난을 겪는 시대에 유감을 표하고('아이 서렌더'), 지도자의 덕목을 설파하고('대통령'), 반핵과 세계평화('뉴크 미 베이비')를 노래한 뮤지션이다.

그는 "굉장한 혼돈을 보며 무척 가슴이 아프고 걱정됐다"며 "소위 지식층이 아닌 미국의 일반 대중은 남한은 부패하고 북한은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있다고 느꼈다. 남북 구분 없이 그냥 코리아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올림픽 이후 이미지가 좋아졌고 미국 중산층 집에 가봐도 삼성과 LG 제품이 많을 정도로 정밀한 물건을 잘 만드는 대단한 나라인데 미국인이 한국행을 취소할 정도로 불안한 나라가 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문과 뉴스를 보면서 돌파구가 없어보였다"며 "언제 해결될까 했는데 평화적인 촛불집회와 법적인 단계를 밟아 새 정부가 들어서고 안정을 찾아간 것은 기적이다. 우리 국민이 상당히 품위 있게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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