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연출가 성기웅 "'21세기 건담기'로 '구보씨 연작' 마무리"

입력 2017-09-03 09:00  

극작·연출가 성기웅 "'21세기 건담기'로 '구보씨 연작' 마무리"

'말하기쇼' 형식으로 30년대 경성의 구보와 이상의 이야기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5∼30일 공연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극작가 겸 연출가 성기웅(43)은 10여 년간 구보 박태원과 1930년대 경성의 이야기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왔다.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5일 개막하는 연극 '20세기 건담기' 역시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구보와 시인 이상의 이야기다.

성 연출은 대학(연세대 국문과) 때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일본에서 구보에 대한 관심을 두게 됐다. 이후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2007)을 시작으로 '깃븐우리절믄날'(2008), '소설가 구보씨의 1일'(2010)까지 구보와 그가 주로 활동한 1930년대 경성의 이야기를 쓰고 연출하고 있다.

신작 개막을 앞두고 최근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난 성 연출은 "이 작품이 '구보씨 연작'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는 '구보씨 연작'을 3편 정도 생각했어요. '깃븐우리절믄날','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 그리고 이번 작품까지요. 그런데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이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그 작품은 소설 원작의 문장을 많이 활용한, 소설의 코멘터리(영화나 방송프로그램에서 어떤 장면이나 행위를 해설 또는 부연 설명하는 내레이션) 같은 거였죠. 연극으로 하는 코멘터리 같은 시도라서 번외편처럼 생각했던 작품이었죠."






같은 1930년대 경성의 이야기지만 이번 작품은 전작들과 형식적으로 차별화된다. 연극은 1936년 초 구보와 이상이 마이크 앞에 서서 새로운 4차원 라디오 기술을 통해 21세기 미래의 청중들에게 보내는 '건담'(建談)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연극은 구보와 이상, 소설가 김유정, 화가 구본웅의 이야기를 '말하기 쇼' 형식으로 담아낸다.

"만담쇼, 오디오쇼 같은 연극으로 구보나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상은 자기를 건담가(建談家)로 칭했어요. 자신이 건축가였으니까 건축가 출신의 만담가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상은 어두운 분위기에 눌변이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농담을 좋아하는 달변가였다고 해요. 구보와 함께 '만담커플'처럼 주변 문인들을 웃기고 다녔다고 해요. 거기서 착안해 이들이 자기네 이야기를 마치 만담 형식으로 떠드는 이야기를 만들었죠."

'말하기쇼' 형식의 연극은 낭독공연이나 팟캐스트처럼 청각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대사에는 일본어와 영어가 섞여 있고 관객은 때론 자막을 보면서 대사를 이해해야 한다.

"처음에는 만담이나 서양식 보드빌(vaudeville. 통속적인 희극과 노래, 춤을 섞은 쇼), 극장식 쇼를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까 오디오 요소가 강한 쇼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극장에 와서 보는 것이고 라디오나 팟캐스트를 하는 게 아니라 들려주는 게 전부는 아닙니다. 귀로 들려주는 정보와 눈으로 보이는 정보가 어긋날 수도 있죠. 관객들은 그 정보들을 어긋나게 할 수도 있고 거리를 둘 수도 있고 차이를 종합할 수도 있죠. 그렇게 자기만의 의미나 재미를 찾으며 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관객이 자막을 봐야 해서 몰입이 깨진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깊이 몰입하는 게 반드시 중요한 건 아니에요. 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브레히트식 '거리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너무 몰입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다른 사고를 할 수 있도록요."






그는 언어에 관심이 많다. 구보와 1930년대 경성에 천착한 데에는 구보 소설이 당시 사람들의 발음이나 억양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 1930년대 서울말이 그 이전 시대와는 달리 지금의 감각이나 지식으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왜 이런 작업을 무대에서 하느냐고 한다면 우리는 예전에는 연기를 표준어로 해야 한다고 배워왔어요. 하지만 표준어는 딱딱하고 규범화된 말이라 재미있는 말의 여지가 없죠. 또 표준어로 연극한다는 것은 번역극을 연기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번역극의 대사는 인위적인 말이죠. 그런 인위적인 대사들을 소화하려다 보니 연극적인 말투가 형성돼 있었죠. 저는 그런 말투에 위화감, 이질감을 느꼈어요. 갇혀있고 딱딱한 번역투 말투, 이런 것에 대한 탈출구가 표준어로 규범화되기 이전의 서울말인 것 같았어요. 1920년대는 신문·잡지를 보면 한자도 많고 언어감각 자체가 달라서 읽기가 어려운데 1930년대 신문·잡지는 비교적 읽어낼 수 있어요. 지금 감각이나 지식으로도 바로 감촉할 수 있는 시대였죠. 지금의 언어 면에서도 기원이 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구보씨 연작'을 마무리한 그는 계획을 묻자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했다.

우선 11월에는 재미교포 2세 극작가 줄리아 조의 '랭귀지 아카이브'(Language Archive)를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소수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의 이야기다. 역시 언어와 관련된 이야기다.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스탠더드한(일반적인) 극작술에 따른 드라마도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너무 새로운 스타일, 형식을 찾고 도전하다 보니 힘들기도 하고요. 새로운 형식이라면 현대·당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요."

이윤재·이명행·안병식·백종승·김범진 출연. 공연은 30일까지. 전석 3만원. ☎ 02-708-5001.

zitro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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