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석이 그린 내면의 디스토피아…소설집 '수림'

입력 2017-09-05 08:40  

백민석이 그린 내면의 디스토피아…소설집 '수림'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작가 백민석(46)이 새 소설집 '수림'(예담)을 냈다. 오랜 절필생활을 접고 2013년 돌아온 이후 세 번째 책이다. 2014년 봄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연작 형태로 발표한 단편 9편을 묶었다.

인물들은 대부분 이름 없이 남자 또는 여자로만 불린다. 겉으로는 비교적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온갖 왜곡된 욕망과 신경증으로 만신창이다. 맨 앞에 실린 '수림'의 남자는 번듯한 대기업 과장이고 주말이면 자원봉사도 다닌다. 이혼 전력 정도야 요즘 세상에 큰 흠결은 아니다. 문제는 이혼 사유다. 그는 성도착증 환자다. 자원봉사에서 만난 여자를 보면서도 성적 상상을 한다.

소설들은 전편의 등장인물이 이어지는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식으로 연결된다. 남자가 자원봉사에서 만난 여자는 우울증에 자살 충동을 겪고 있다. 여자의 남편은 아내 걱정에 무조건 칼퇴근 하고 회사에서도 수시로 집에 전화해 생사를 확인한다.

인물들의 뒤틀린 내면은 대개 평균에서 벗어난 성적 욕망 또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검은 눈'의 소설가 남자는 시인인 애인을 두고 어린 여자와 조건만남을 한다. 하지만 자살한 형의 환영에 시달리며 섹스에는 실패한다. 시인 여자는 시 강좌를 수강하는 제자 '나른 보이'와 밀회를 즐긴다.






제자는 "성 분비물로 흥건한 시"를 쓴다. 감성 넘치는 문학소녀였던 시인은 중학교 졸업반 때 강간을 당하면서 "남자 앞에서 눈물을 흘릴 바에야 펜촉으로 눈을 긁어 뽑아버리는 편이 낫다"고 다짐했다. 지금 쓰는 시는 활력도 의욕도 없다.

소설에는 폭력적이고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는 성행위 묘사가 빈번하고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 인물들의 도착적 시선도 적나라하다. 권위와 배제·복종으로 작동하는 남근중심주의 사회를 고발하는 위악적 포즈로 읽힌다.

"나른 보이는 그날 밤 음경이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제 인생의 기둥 줄기가, 그의 왕조의 뼈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다가 뒤집히고 지구의 핵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뚝, 하고."

마지막 단편 '비그늘 아래로'에는 처음의 남자가 다시 등장해 파국적 결말을 맺는다. 삶의 에너지와 미래의 희망을 소진한 남자에게 죽음은 비를 피하려 비그늘 아래로 들어가는 일과 같다. '어두침침하고 우울하게 내리는 긴 장맛비'라는 뜻의 한자말인 수림(樹林)은 그래서 디스토피아로서의 현실을 은유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독자 내면에 숨겨진 악을 들추고 공포와 불안을 증폭시킨다. 작가는 "인간의 선량함은 자기와의, 그리고 자기를 둘러싼 환경과 사회와의 투쟁을 통해 어렵사리 얻어지는 결과물"이라며 "선량해지기 위한 싸움에서 물러나고 적절한 기회만 주어졌다면, 나 역시 전반적으로 비도덕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80쪽. 1만3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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