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어마' 뚫고 온 각막 덕에 새 희망 찾았어요"

입력 2017-09-13 06:41  

"허리케인 '어마' 뚫고 온 각막 덕에 새 희망 찾았어요"

40대 기초생활수급자 세브란스병원서 이식수술 극적 성공

생명을나누는사람들 "각만 기증자 부족해 이식수술 5~6년 대기해야"

(서울=연합뉴스) 김민수 기자 = 선천적으로 시력이 좋지 않은 이경원(48·남) 씨는 4년 전 왼쪽 눈이 실명됐고, 최근에는 오른쪽 눈마저 실명될 위험에 놓여있었다. 지적장애·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부인과 올해 초 대학교에 입학한 딸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있는 이씨는 현재 안 좋은 시력 때문에 기초생활수급비 외 별다른 소득이 없는 상태다.

눈 상태가 더 악화하기 전에 각막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관련 정보를 알아보니 800만~900만원에 이르는 수술비가 큰 부담이었다. 더욱이 각막 수술 대기자가 약 2천명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이씨의 가슴은 더 막막해졌다.

이씨의 사정을 알게 된 사단법인 '생명을나누는사람들'은 이씨를 돕기 위해 미국, 필리핀 등 외국 각막 기증자를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미국에서 폐암으로 사망한 60대 여성 환자의 각막을 구할 수 있어 한숨 돌리는가 싶었지만, 이번에는 미국 현지 날씨가 문제였다.

미국 여성 환자의 각막을 보유하고 있는 아이 뱅크(Eye Bank)가 현재 허리케인 '어마'가 큰 피해를 내는 플로리다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항공기가 결항하고 있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각막기증을 돕고 있는 미국 현지의 종교 단체의 도움을 받아 이씨의 각막은 뉴욕을 거쳐 지난 11일 한국에 도착해 무사히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다.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은 이씨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각막 도착 후 하루가 지난 12일 오전 이씨에게 각막이식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씨는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수술을 받게 돼 아직 기분이 얼떨떨하다.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한다"며 "하루빨리 시력을 회복해 남들처럼 생계유지를 위해 일도 하고, 운전도 배워서 딸을 학교까지 직접 태워줘 보고 싶다"고 전했다.

이씨의 주치의를 맡은 배형원 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는 "수술은 잘 진행됐으나, 최종 시력 회복이 어느 정도 될지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한다"며 "제때 각막을 구하지 못해 수술을 제한되는 환자가 적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에 이씨에게 도움을 준 생명을나누는사람들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약 80명에게 각막 기증자를 연결해줬다. 생명을나누는사람들은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한 장기기증등록기관이다.

이 단체에 따르면 국내 각막 기증자는 워낙 구하기가 어려워 미국, 필리핀에서 기증자를 찾는 경우가 잦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각막이식 수술 대기자는 1천880명(남성 1천202명·여성 678명)으로 평균 대기일은 2천134일이다. 환자 1명당 평균 5~6년을 대기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씨의 사례처럼 각막을 외국에서 들여올 경우 시술비용이 약 500만원 정도 더 든다는 점이다.

한국인으로부터 기증을 받으면 항공료 등 별도의 추가 비용 없이 수술비 약 300만원만 부담하면 되지만, 외국에서 기증받은 경우 시술비용이 약 800~900만원에 이르게 된다.

조정진 생명을나누는사람들 상임이사는 "각막은 보통 한 사람이 2개를 기증할 수 있어 한 사람의 기증으로 두 사람이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다"며 "우리나라 고유의 장례 문화로 인해 각막기증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강남성심병원·강남세브란스병원·부천성모병원·춘천성심병원·온누리안과(전주)에 소속한 안과 의사들은 각막기증 활성화를 위해 기증자가 나타나면 언제든 현장으로 출동해 각막 적출을 돕고 있다. 그러나 일부 안과 의사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각막 적출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상임이사는 "각막기증 문화가 활성화해 시력을 잃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찾는 사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km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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