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유네스코 위기 부른 세계유산 갈등

입력 2017-10-24 07:30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유네스코 위기 부른 세계유산 갈등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902년 이집트를 점령하고 있던 영국은 홍수 조절과 관개용수 확보를 위해 1902년 나일강에 아스완댐을 완공했다. 1946년 또다시 나일강이 범람하고 전력 수요가 급증하자 1952년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아스완하이댐 건설에 나선다. 이 때문에 기원전 13세기 람세스 2세가 세운 아부심벨 신전 등 수단 누비아 계곡에 있던 고대 이집트 유적이 물에 잠길 운명에 놓였다.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는 1959년 유적 보호를 위한 모금운동을 제안했으며 50여 개국에서 약 8천만 달러를 모금해 1968년 아부심벨 신전을 해체 이전했다. 이 운동은 인류의 유산을 국제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자각을 불러일으켜 197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 채택으로 이어졌다.




유네스코는 1978년 폴란드 비엘리치카의 소금광산을 시작으로 올해 7월까지 문화유산 832점, 자연유산 206점, 복합유산 35점 등 167개국 1천73점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유네스코의 심벌마크이자 세계유산 1호로 잘못 알려진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인근의 다른 유적과 함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란 이름으로 1987년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는 지난해 말 현재 긴급보호목록 26개국 47건, 대표목록 108개국 366건, 모범사례목록 17건이 등재됐다. 세계기록유산은 2015년 10월 기준으로 107개국에 348건 분포돼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유산 12건, 인류무형문화유산 19건, 세계기록유산 13건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기록유산은 세계에서 4번째,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많다.


보편적 가치가 높은 유산을 지정해 인류가 함께 보호하며 상호 이해를 높이자는 세계유산은 최근 들어 분란의 씨앗으로 떠올라 유네스코의 존립 기반을 흔들고 있다. 지난 12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유네스코 동반 탈퇴를 선언한 것이나 최근 일본이 탈퇴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세계유산 지정을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됐다. 올해 유네스코 분담금이 823억여 원(22.0%)으로 으뜸인 미국에 이어 362억여 원(9.7%)으로 두 번째인 일본마저 빠져나가면 유네스코 주요 사업의 축소는 물론 위상 추락도 불가피하다. 유네스코 분담금 3위는 296억여 원(7.9%)의 중국이며 독일(6.4%), 프랑스(4.9%), 영국(4.5%), 브라질(3.8%), 이탈리아(3.7%), 러시아(3.1%), 캐나다(2.9%)가 차례로 10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스페인(2.4%)과 호주(2.3%)에 이어 76억여 원(2.0%)으로 13위에 해당한다.




지난 7월 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팔레스타인이 신청한 요르단강 서안의 알킬릴 구시가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이스라엘이 헤브론이라고 부르는 이곳에는 유대민족과 아랍민족의 공통 조상인 아브라함(아랍어로 이브라힘)과 아들 이삭, 손자 야곱이 묻혀 있다는 파르티라크 동굴이 있다. 무슬림은 14세기 이 동굴 위에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지었는데, 유네스코는 결정문에서 이 모스크를 세계유산으로 인정하며 유대교도들이 신성시하는 무덤은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유네스코가 동예루살렘의 공동 성지 템플마운트(아랍명 하람 알샤리프)의 관리 문제에 관해 팔레스타인의 손을 들어주었을 때도 유네스코의 반이스라엘 성향을 문제 삼아 거세게 반발했다.


일본은 지난해 5월 31일 한·중·일 등 8개국 14개 시민단체가 연대해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심사가 24∼27일로 다가오자 촉각을 곤두세우며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다. 일본 언론은 위안부 기록물이 등재되면 일본이 유네스코 탈퇴를 본격 검토할 것이라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이에 앞서 일본 정부는 2015년 '난징(南京)대학살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확정되자 "중국의 일방적 주장에 따른 것으로 진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며 유네스코 분담금 납부를 거부하는 한편 세계기록유산 제도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심사방식을 개선하자고 요구해왔다. 이에 따라 지난 16일 유네스코 집행위원회는 "세계기록유산의 등재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으면 정치적 긴장을 피하기 위해 상호 이해와 대화의 원칙을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내년 봄 이후 신청 대상부터 적용되는 규정이어서 위안부 기록물은 해당하지 않으나 미국이 탈퇴를 선언한 마당에 유네스코가 2위 분담금 국가인 일본의 입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지는 의문이다.




2015년 7월 유네스코는 한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강제노역이 이뤄진 일본 하시마(일명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강제동원 피해자를 기리고 관련 사실을 알리겠다는 일본의 약속을 받았으나 지금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05년에는 강릉단오제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두고 일부 중국인이 자국의 고유 전통 축제를 한국이 가로챘다고 주장해 사이버공간에서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홍콩 언론은 최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을 인용하며 "중국이 유네스코에서 더 큰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일본뿐 아니라 동북공정 등을 둘러싸고 중국과도 역사 논쟁을 계속해온 터여서 중국의 역할 증대론을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봐야 할 신세다.



유네스코가 외교의 각축장을 넘어 돈을 앞세운 강대국들의 힘겨루기 마당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면서 1945년 11월 18일 제정된 유네스코 헌장 서문의 정신이 더욱 절실해진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 서로의 풍습과 생활에 대한 무지는 인류 역사를 통해 세계 국민들 사이에 의혹과 불신을 초래한 공통적인 원인이며, 이 의혹과 불신 때문에 그들의 불일치가 너무나 자주 전쟁을 일으켰다.(중략) 정치적·경제적 조정에만 기초를 둔 평화는 세계 국민들의 일치되고 영속적이고 성실한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평화가 아니다. 평화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인류의 지적·도덕적 연대 위에 평화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 된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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