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우리동네] '아픈 과거도 역사다'…식민지 유산이 바꾼 도시

입력 2018-01-06 11:00  

[쉿! 우리동네] '아픈 과거도 역사다'…식민지 유산이 바꾼 도시
'수탈 흔적' 건물 ·적산가옥 복원 근대문화 중심지로 탈바꿈한 군산

(군산=연합뉴스) 최영수 기자 = 전북 군산 옛 도심에서는 지도를 들고 있는 관광객을 흔히 볼 수 있다. 홀로 온 학생도 있고, 가족·친구와 함께 무리를 지은 관광객도 많다.
'근대역사문화교육도시 군산'이라고 적힌 안내지도와 소개서를 낀 채 휴대전화와 카메라로 고색창연한 건축물을 찍고 이를 배경으로 추억도 담는다.
그 배경에는 일제강점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제 군산은 국내에서 근대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역사관광도시로 통한다.
이런 평가를 받기까지 군산시의 정책이 큰 몫을 했다.
시는 2008년부터 '아픈 과거도 역사다'며 강점기 현장을 복원하고 재조명해 역사교육현장으로 바꿨다.
문동신 군산시장은 "나라를 뺏긴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와 청소년에게 당시 상황과 고통을 잘 보여주는 공간"이라며 교육·체험적 가치를 으뜸으로 꼽는다.
군산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강점기 유산으로 돈을 버는 도시가 됐다.


◇ 해상유통 거점에서 개항 후 수탈·저항지로
군산의 근대는 군산항 개항(1899년 5월) 즈음과 일제강점기를 포괄한다. 개항을 계기로 일본인과 그 문화가 들어와 해방 전까지 수탈로 점철되고 저항이 잇따른 시기였다.
근대를 강조한다고 해서 개항 전 군산이 초라한 어촌이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군산역사이야기' 저자인 김중규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과장은 "고려와 조선 때 관용항구로 활용된 군산포 역사를 부정한 채 개항으로 군산이 형성 발전한 것으로 오인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고려와 조선의 세금 창고 '조창'이 설치된 쌀 집결지며 객주, 주막, 여관 등이 밀집하고 장사꾼이 모이는 활발한 항구였다고 그는 말한다.
금강과 서해를 접한 자연조건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서해안 물류유통 중심지였고 그런 까닭에 외적의 주요 공격 대상지가 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지에 보이는 기록이나 옛 지도 등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군산은 개항 후 일제 침략 교두보와 쌀 공급·반출지로 아픔을 겪는다.
1933년 군산항의 쌀 수출량은 당시 우리나라 전체의 53%에 달했다고 한다.
군산항은 일본에 의해 사실상 강제 개항한 항구다.
일본은 조선을 침탈하고 인천과 목포를 잇는 서해 중부 중심도시로 군산을 활용하려 했다. 비상시 군대 주둔 및 보급기지로 쓰려는 목적도 있었다.
일본은 1908년 전국 최초의 전주∼군산 2차선 포장도로(폭 7m·전장 46.4㎞)와 1912년 익산∼군산 철도를 개통해 군산으로의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네 차례 축항 공사로 1930년대 군산항의 무역량은 개항 때보다 100배를 훌쩍 넘겼다.
개항 후 군산에는 외국인 거주지역인 조계지를 중심으로 서양과 일본의 문물이 들어오고 건물도 들어섰다.
일본인들은 시내 중심지를 싸게 사 중앙동, 영화동, 장미동, 해망동 일대에 관공서, 은행, 회사 건물을 짓고 조선인들을 부렸다.
조선인들은 산기슭에 초막 집을 짓고 허드렛일, 막노동, 부두 하역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었다.
전체 인구 3만7천명 중 일본인이 1만명에 달한 1934년 쌀 200만 섬이 반출될 때 조선인들은 깻묵, 콩, 죽으로 연명해야 했다.
그들은 저항했다.
1919년 3월 5일부터 연인원 2만6천여명이 참가한 호남 최초의 만세운동을 벌여 21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했다고 전해진다.
1927년 11월에는 일본인 이엽사(二葉社) 농장주의 75% 소작료 요구와 폭압에 군산 옥구 소작농들이 들고일어났다.
1920∼30년대 전북에서 소작쟁의가 20여 건 있었는데, 옥구 항쟁이 가장 큰 규모였다.
1927년과 1930년에는 각각 정미소 직원과 미선공(쌀 품질검사 여성)들이 부당한 처우와 핍박에 총파업으로 항거하기도 했다.


◇ '수탈의 현장'에 일본이 세운 건축물들
쌀과 자원이 유출되는 전진기지인 군산항에는 쌀과 생필품을 실어가는 증기 선박이 줄을 이었다.
주변에는 이를 관리하기 위한 관공서나 건축물이 들어섰다.
1899년 6월 조계지로 설정된 옛 도심권에는 현재 조선은행, 일본 제18은행, 일본식 가옥 등을 포함한 170여 채의 근대유산 건물이 남아있다.
'쌀을 쌓아두는 곳'을 뜻하는 장미동(臧米洞) 부두에는 호남에서 거둬들인 쌀이 산더미처럼 쌓였다고 한다. 그 곳에 1908년 붉은 벽돌과 화강암을 두른 일본식 군산세관이 세워졌다. 이 건물은 현재까지 남아 전북도 기념물(87호)로 지정됐다가 지난해는 호남관세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그 옆에는 1923년 지은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국가등록문화재 374호)이 있다.
조선총독부 금융기관인 조선은행은 일본 상인들이 상권을 장악하도록 하는 데 앞장섰다. 당시 군산에서 가장 컸던 이 건축물은 지금 근대건축관으로 쓴다.


또 인근에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건물(국가등록문화재 372호)이 있다. 1907년 조선에서 일곱번째 지점으로 건립돼 일본인에게 고리대금 자금을 댔다. 일본인들은 싼 이자로 대출받아 토지를 담보로 높은 이자에 빌려준 뒤 못 갚거나 뒤늦게 찾아온 농민들의 땅을 빼앗았다. 지금은 미술작품과 지역작가 전시공간인 근대미술관이 됐다.
바로 옆 1930년대 무역·상업시설인 미즈상사 건물은 북카페로 변모했다.
5분 거리인 내항에는 쌀을 쉽게 반출하려고 만든 부잔교(뜬다리 부두)가 남아있다. 밀물 때 수면에 떠오르고 썰물 때는 수면만큼 내려가는 선박 접안시설이다. 1938년까지 3천t급 기선들이 접안하도록 총 4기가 축조됐다.
사이토 총독은 1926년 부잔교 준공식 때 부두에 쌓인 쌀을 보고 "아! 쌀의 군산"이라고 탄성을 질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가옥과 사찰들도 남아있다.
신흥동에는 일본식 2층 목조집인 히로쓰 가옥(국가등록문화재 183호)이 대표적이다. 농장과 포목점 운영자의 집이다. 'ㄱ'자형 건물 두 채가 붙어있고 일본식 정원, 다다미방 등도 잘 보존됐다. 적산가옥 중 가장 크고 잘 지어 지금도 찾는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월명공원 인근에는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국가등록문화재 64호)가 있다. 1913년 대웅전과 건물 등이 건립됐다.
일본 종단인 조동종이 강제 지배를 반성한 '참회와 사죄의 글' 참사비가 있고, 그 옆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2015년 8월 사찰 경내로는 처음 세워졌다.
동국사는 고은 시인이 입문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빵집 이성당과 더불어 군산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이 근처에는 1926년 도심과 수산물 집합소인 해망동을 연결한 해망굴(국가등록문화재 184호)이 있는데, 6·26 전쟁 때 연합군 공군기가 인민군 지휘소를 공격한 총탄 흔적이 남아있다.


◇ 역사적 건축물 보존·복원…근대역사도시로 도약
군산시는 2008년부터 옛 도심권에 남은 건축물을 활용해 근대문화도시 조성에 나섰다. 이복웅 당시 군산문화원장을 중심으로 근대문화벨트화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 건축물 복원·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근대 건축물을 실사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근대문화유산을 복원하고 역사 학습, 체험, 문화예술 등의 공간을 꾸몄다.
옛 건물과 가옥 등을 묶어 근대 시간여행지로 조성했다. 옛 도심이 수탈 실상과 저항정신을 알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현장으로 변모했다. 연간 100만명 정도의 발길이 찾아온다.
시 관계자는 "근대역사 벨트는 건축물과 경관을 관광하는 곳일 뿐 아니라 교육과 이야기가 있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라며 "나라 침탈에 따른 비참한 현실, 착취 현황, 민초 저항 등을 생생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복웅 군산역사문화연구원장은 "지역에 관한 역사인식을 새롭게 하고 옛 도심을 보전 발전시키는 사업으로 군산은 근대문화 중심지가 됐다"며 "주민이 참여하고 새 콘텐츠를 개발해 옛 도심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k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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