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종교단체 문제 제기에 충남도의회 가세…전국 첫 관련 조례 폐지 추진
충남도·시민단체·정치권 "조례 폐지는 민주주의 후퇴시키는 것" 반발 거세

(홍성=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충남도민은 성별, 나이, 외모, 장애, 인종, 종교, 병력(病歷), 사상, 신념, 출신 및 거주지역, 결혼 여부, 가족구성, 학력, 재산,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국적, 전과(前科), 임신, 출산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충남도민 인권선언' 제1조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인권이 있음을 밝힌 선언문이지만 일부 종교단체가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라는 문구를 문제 삼으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일부 종교단체는 "이런 내용의 인권선언을 담은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조례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충남도의회까지 가세해 전국 최초로 인권조례 폐지에 나서면서 폐지 반대 측과 찬성 측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 "새누리당이 만들고 자유한국당이 없앤다?"…전국 첫 폐지 나서
충남도 인권조례는 2012년 5월 당시 자유선진당 소속이던 송덕빈 의원과 새누리당 의원들이 주도적으로 발의해 제정했다.

이에 따라 도는 2012년 '충청남도 도민인권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충남인권조례)를 제정, 공포하고 2014년 10월 인권선언을 선언했다.
이어 2015년 10월 30일에는 현 충남도의회 재석 의원 36명 중 35명이 찬성해 인권조례 전부 개정안이 통과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인권조례 제정을 권고함에 따라 현재 충남도를 비롯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6곳이 인권조례를 제정, 시행 중이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일부 기독교단체에서 인권조례 폐지를 청구한 데 이어 충남도의회 자유한국당 의원 23명을 포함한 25명이 지난 15일 인권조례 폐지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종교단체에서 조례 폐지를 청원한 지역은 있지만 지방의회가 직접 나서 조례 폐지안을 발의한 것은 충남도의회가 처음이다.

도의회는 "충남 인권선언문에 담긴 성적지향과 성별 지향성 등이 역차별을 낳을 수 있다. 도민 대표기관으로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조례를 그냥 놔둘 수 없다"고 조례 폐지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반발에 이어 일부 기독교단체마저 맞불 기도회를 여는 등 도의회의 조례 폐지 시도가 갈등을 외려 심화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도의회는 오는 29일 제4차 행정자치위원회(자유한국당 6명·더불어민주당 2명)를 열고 조례 폐지안의 본회의 상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 "지켜주지 않아도 되는 인권도 있나요"…각계 비판 잇따라
도의회의 이런 시도에 대해 지역 시민단체와 변호사협회, 정치권 등 각계의 비판이 쏟아진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주도해 발의해 놓고 이제 와 조례를 없애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5일 상임위원회를 열고 충남도의회가 발의한 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도의회 의장과 충남지사에게 표명했다.

인권위는 "충남 인권조례 폐지 추진은 지방자치단체의 인권보호 의무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자 여성·장애인·어린이·노인·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인권보장 체계를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례 제정 목적과 가치, 지역 인권 보장체계 폐지로 상실되는 공익 등에 대한 구체적 검토 없이 반대여론이 있다는 이유로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합리성과 정당성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충남도 인권위원회도 지난 17일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당 윤리강령에도 소수자와 소외계층을 배려한다고 돼 있다"며 "한국당 소속 도의원들이 자신들의 정당이 제정한 윤리강령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주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를 비롯한 충남 11개 민·관 협력단체도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충남인권조례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는 조항에 근거해 제정된 것"이라며 "한국당 의원들이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충남청소년인권더하기 소속 한 청소년활동가는 "지켜주지 않아도 되는 인권도 있느냐"며 "성수자 역시 우리의 이웃이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인권조례 폐지 추진은 지방선거용?
이미 개신교계에서 인권조례 폐지를 청원해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도의회가 무리수를 던지는 것을 두고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양심과 인권 나무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전충청지부 등 대전지역 17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3일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한국당 소속 도의원들이 일부 개신교계의 표를 얻으려 앵벌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도의회가 급할 것이 없는 사안을 갑자기 폐지 발의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한국당 의원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 기독교계 표심을 얻기 위해 비합리적인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j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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