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서] 美, 88올림픽 전 긴장완화 '시거 구상'…KAL폭파사건후 철회

입력 2018-03-29 12:00   수정 2018-03-30 09:18

[외교문서] 美, 88올림픽 전 긴장완화 '시거 구상'…KAL폭파사건후 철회
韓, 시거 구상에 '미지근'…'미국이 한국의 중·소 접촉 지원' 조건으로 수용
"北, 올림픽 8개 종목 경기 개최 준비 언급 등 정보도 입수"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김호준 홍국기 기자 = 지금처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도 올림픽을 한반도 평화의 계기로 삼으려는 외교적 노력이 전개됐지만 북한의 도발로 실패로 돌아간 사실이 30일 공개된 당시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후로 한 외교적 노력이 한국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면, 당시에는 미국 레이건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레이건 정부의 개스턴 시거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1986년 11월 7일 방한, 최광수 외무장관 등을 만나 이른바 '시거 구상'을 제안한다.
같은 해 11월 11일 최 장관이 주미대사에게 보낸 전문을 보면, '시거 구상'은 북한 인사와의 접촉을 일절 금지한 미국의 외교지침을 '제3국 공관 주최 행사에서 미국 관리의 북한 관리와의 인사 교환을 허용'하는 것으로 완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북한이 남북대화 재개 등으로 화답하면 인도적 교역 등 추가조치를 고려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시거 차관보는 이 제안이 "88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이 초조한 나머지 무력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을 줄이고 북한을 남북대화의 장으로 유도해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첫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당시 최광수 외무장관은 "북한이 남북대화를 중단하는 시점에서 해당 조치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측의 지속적인 요구에 우리 정부는 이로부터 석 달이 지난 1987년 2월 9일 '한국 외교관의 중공 및 소련 외교관 접촉을 위한 미국의 지원' 등을 조건으로 걸고 '시거 구상'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최 장관이 이튿날 주미대사에 보낸 전문에 기록돼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2월 말 모든 재외공관에 '대북한 관리접촉에 관한 개정 지침'을 하달했고, 3월 초 당시 중공을 통해 북측에도 관련 사항을 전달했다.
북한은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북한은 1987년 3월 19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는 미국 측의 이런 조치를 긍정적인 것으로 주목하게 된다"면서 "우리는 장소와 형식, 급수의 구애됨이 없이 미국 측 공식인물들과 접촉하여 대화를 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밝혔다.
미국과의 직접대화, 혹은 남북미 3자 대화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북한이 '시거 구상'을 계기로 이를 거듭 촉구한 것이다.
외무부가 작성한 '시거구상 북한반응 비교' 문건을 보면, 북한은 이로부터 나흘 뒤인 3월 23일 당시 중공(중국)을 통해 ▲ 북미 2자회담 또는 남북미 3자회담 희망 ▲ 5월중 북미 외교당국자 회담 개최 ▲ 올림픽 남북 공동주최 등을 미국에 공식 제안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남북한 당사자 간 회담만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방안'이라며 미국이 이에 응하지 않도록 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고, 미국의 방침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 북한의 제의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중국을 통해 전달했다.
이후 '북한은 남북대화에 응하고 서울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혀라'는 미국의 입장과 남한보다는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원하는 북한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돌파구가 마련되지 못했다.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7년 4월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미관계와 관련, "미국은 궁극적인 한반도 긴장완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상호적 단계를 개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히는 등 적극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북미 직접교섭을 강하게 반대하는 한편 '시거 구상'을 계기로 호주나 캐나다, 프랑스 등 우방들이 행여나 북한과의 접촉을 확대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데 외교적인 노력을 쏟았다.
결국, '시거 구상'으로 북·미 외교관 간에 간헐적인 접촉은 이뤄졌지만, 의미 있는 소통은 없었다. 이후 북한이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을 저지르자 미국은 이듬해 1월 '시거 구상'을 철회했다.
한편 북한은 1987년 7월 23∼25일 일본 사회당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서울올림픽의 남북 공동개최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올림픽시설 공사현장을 방북단에 보여준 것으로 외교문서에서 확인됐다.
다나베 마코토(田邊誠) 전 서기장을 대표로 한 일본 사회당 방북단은 북한이 88 올림픽시설 건설공사를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으며, 해당 건설현장에서 관청 직원들과 시민 자원자들이 작업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일 한국대사관 측에 전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올림픽시설 건설에 필요한 재정·기술지원을 중국에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국무부 한국과 북한담당관은 1987년 6월 미국 주재 중국대사관 관계자와의 면담에서 전해 들은 이 정보를 주미 한국대사관 측에 전달했고, 주한 미국대사는 '북한의 대 중공(중국) 올림픽시설 지원'이라는 제목의 문건으로 보고했다.
당시 미국은 1987년 5월 김일성이 방중했을 때 이런 요청을 했을 가능성이 크며, 북한이 88올림픽 경기의 분산 개최를 매우 진지하게 추진 중인 동시에 필요한 체육시설 건설에 상당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 북한은 같은 해 6월 9∼13일 평양에서 열린 비동맹회의에 참석한 외국 대표단과의 비공식 접촉에서 88올림픽에서 8개 종목의 경기 개최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으며 올림픽 시설과 선수촌 및 38개의 호텔을 건설 중이라고 언급했다는 정보도 당시 우리 외교당국에 입수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1987년 6월 29일 외무부 국제연합과가 작성한 '평양 비동맹회의 계기 파악 북한 동향 보고'라는 문건에는 이 내용이 싱가포르 외무성 정무국장의 언급이라면서 적시됐다.
transil@yna.co.kr, hojun@yna.co.kr, redfla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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