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 휩싸인 걸프…이란, 호르무즈 봉쇄 '전가의 보도' 꺼내나(종합)

입력 2018-07-05 08:23   수정 2018-07-05 08:49

전운 휩싸인 걸프…이란, 호르무즈 봉쇄 '전가의 보도' 꺼내나(종합)

미국 고사작전에 전세계 원유 해상수송량 30% 호르무즈 해협 차단 언급
미 핵합의 탈퇴로 이란과 '석유 전쟁'으로 번져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정부가 '전가의 보도'인 걸프해역 봉쇄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란을 압박하기 위해 제재를 복원, 이란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원유 수출을 고사하려고 하자 이란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강 대 강'으로 맞불을 놓을 기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하고 이란산 원유 수출을 '0'으로 줄이려는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기로 하면서 미국과 이란의 '석유 전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2일 스위스를 방문, 동포 간담회 연설에서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출을 모두 차단하겠다고 한다"라며 "중동의 다른 산유국은 원유를 수출하는 동안 이란만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제재로 이란이 원유를 수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다른 중동 산유국도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로하니 대통령은 또 "미국이 이란의 원유 수출을 막으면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우려하는 중동발 유가 급등을 시사한 것이다.
로하니 대통령이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발언은 곧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이라크 등 중동의 주요 산유국이 원유를 수출하는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주요 산유국이 중동에 몰린 탓에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30%를 차지하는 요충지다. 이란과 오만 사이의 바다로 폭이 좁은 곳은 50㎞에 불과하다.

이란은 미국 진영과 갈등이 있을 때마다 이 해협을 기뢰, 기동타격 쾌속정을 동원해 군사적으로 막겠다고 위협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국제 원유 시장은 직접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유조선과 상선의 통행이 중단될 뿐 아니라, 바레인에 주둔한 미 5함대가 개입할 수 있는 휘발성도 지닌다. 이 해협에서 미군 함정과 이란 해군 사이에 근접 기동과 경고 사격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지금까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실제로 막은 적은 없지만, 봉쇄 위협만으로도 국제 유가가 출렁이곤 했다. 그만큼 이 해협을 봉쇄하는 것은 전방위로 폭발력이 크다는 방증이다.
이번에도 이란은 미국과 정면 대치 국면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동시에 효과적이기도 한 호르무즈 해협을 이용할 공산이 커졌다.

로하니 대통령이 포문을 열자 당장 4일 이란에서는 강경한 발언이 이어졌다.
평소 로하니 대통령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부대 쿠드스군의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그런 시의 적절하고 현명한 말을 하다니 그의 손에 입을 맞추고 싶다"면서 "이란에 충성하는 어떤 정책이라도 즉시 실행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이스마일 코사리 혁명수비대 사령관은 이날 이란 영저널리스트클럽(YJC) 웹사이트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들(미국)이 이란의 원유 수출을 중단시키길 원한다면, 우리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어떤 원유 선적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미군 중부사령부 대변인인 빌 어반 대위는 4일 AP통신에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과 관련, "미 해군과 지역 동맹국들은 국제법이 허락하는 곳에서 항해와 무역의 자유를 보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반박했다.
<YNAPHOTO path='PYH2018070401860034000_P2.jpg' id='PYH20180704018600340' title='이란대통령 "미, 이란 원유수출 못 막아"…공급차질 경고' caption='(베른 AP=연합뉴스) 스위스를 방문 중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간) 베른에서 알랭 베르세 스위스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 중 발언하고 있다. 이날 로하니 대통령은 대이란 제재를 동원해 이란산 원유 수출을 막겠다고 공언한 미국을 거듭 비판하며, 미국의 계획은 현실화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란산 원유수출을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 막으려 한다면 중동산 원유 공급이 차질을 빚어 국제 원유 시장이 교란될 것이라면서 "압박을 멈추지 않으면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lkm@yna.co.kr' />
이란이 종종 구사하는 벼랑끝 전술의 일종인 걸프 해역 봉쇄가 미국의 압력을 줄이는 '보도'(寶刀)가 될 수도 있지만, 강경한 미 정부를 고려하면 오히려 양측의 군사 충돌까지 부르는 '양 날의 검(劍)'이 될 수도 있는 긴박한 국면이다.
대이란 제재의 부작용인 유가 상승을 최대한 막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은 대안으로 사우디, UAE 등 걸프 지역의 동맹 산유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지난달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주요 산유국이 이달부터 하루 100만 배럴 정도를 증산하기로 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들 동맹국에 원유 증산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란의 영향력이 미치는 OPEC이 시장을 조작한다면서 압력을 넣기도 했다.
사우디와 UAE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강제성' 요구에 3일 언제라도 증산할 여력이 있다고 화답했다.
이란은 미국의 사우디 압박은 OPEC을 탈퇴하라는 뜻이라면서, OPEC에 보낸 서한에서 지난달 이뤄진 증산 합의 이외의 일방적인 산유량 증가는 합의 파기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호세인 카젬푸르 아르데빌리 OPEC 주재 이란 대표는 4일 "나이지리아, 리비아 정세가 불안하고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제재로 원유 수출량이 준 데다 사우디마저도 국내 원유 소비가 증가세다"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이란 원유 수출을 막으면 국제 유가가 올라가 결국 미국 국민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란산 원유 수출을 차단하는 건 미국의 자해 행위"라고 경고했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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