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베이스 연광철…끝나지 않는 브라보

입력 2018-09-16 06:30  

'명불허전' 베이스 연광철…끝나지 않는 브라보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 '돈 카를로' 리뷰



(대구=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백발의 필리포 왕이 '왕비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쓸쓸히 노래할 때 1천2백명이 넘는 관객들은 눈을 반짝이며 숨을 죽였다. 아리아가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열광적인 갈채와 끊이지 않는 '브라보'는 한국의 오페라 팬들이 베이스 연광철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듣는 순간을 얼마나 간절히 기다려왔는가를 확연히 보여주었다. 14일 저녁 대구오페라하우스(대표 배선주)에서 막을 올린 제16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예술감독 최상무)의 개막공연 현장이었다.
올해 연광철은 성악가에게 최고의 영예인 베를린 캄머쟁어(궁정가수) 칭호를 받았고 국내에서는 호암상을 수상했다. 예술가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점에 오른 셈이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극장들을 순회하느라 국내 오페라 무대에 설 여유가 거의 없었던 그는 '파르지팔'의 구르네만츠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달란트 선장 같은 바그너 배역으로는 국내 관객들을 만났으나 베르디 주역을 전막으로 노래한 것은 이번 대구 공연이 처음이었다. 그런 만큼 관객의 기대와 감동은 남달랐다.
그는 함께 출연한 모든 성악가에게 예술적인 모범이 되었다. 이날 공연의 타이틀 롤을 맡은 테너 권재희의 미성과 명쾌한 고음, 로드리고 역의 바리톤 이응광이 보여준 기품과 깊이를 갖춘 해석, 엘리자베타 역을 노래한 소프라노 서선영의 뛰어난 표현력과 파워, 고난도 테크닉을 거침없이 소화한 에볼리 역 메조소프라노 실비아 벨트라미의 활력 등 주역 가수들 모두가 공연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연광철 같은 '내려놓기'의 경지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힘을 뺀 채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노래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에서는 놀랄 만한 에너지로 강조점을 분명히 하고, 피아니시모에서까지도 단어 하나하나를 귀에 꽂히도록 명료하게 노래하는 경지 말이다. 그저 무대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배역의 인물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연광철의 '인물 내면화' 역시 우리 오페라 가수 모두가 배웠으면 하는 방식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의 토대가 된 원작은 '무적함대'로 유명한 16세기 스페인 군주 펠리페 2세(필리포)와 그 아들 카를로스 왕자(돈 카를로)의 비극적 실화를 다룬 프리드리히 실러의 희곡이다. 작곡가 베르디가 최고로 무르익은 관현악을 보여준 이 오페라는 다채로운 음악의 색채만큼이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연출가 이회수는 자유 평등의 이상과 휴머니즘, 우정, 사랑, 부자 관계, 권력자의 고독 등 이 작품의 수많은 주제 중 특히 종교와 국가권력의 폭력성에 초점을 맞췄다. 펠리페 2세가 건축한 마드리드 근교 엘에스코리알 궁전 및 수도원을 무대 배경으로 설정하고, 왕들의 대리석 석관이 가득 들어찬 벽을 마치 감옥처럼 갑갑하고 위압적인 구조로 무대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무대를 가득 채우는 담장 형태의 이 구조물은 전면의 상부가 트여 있고, 이 트인 부분의 변화에 따라 관객은 수도원 성당, 궁전의 정원, 아토차 광장, 왕의 집무실 등의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연출가는 아래 무대에서 벌어지는 모든 장면을 위에서 감시하고 조종하는 수도복 입은 인물을 항상 등장시켜, 무대 위는 국가권력이 지배하는 공간이지만 그 국가권력을 지배하는 것은 종교재판장, 즉 종교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가시화했다. 특히 아토차 광장의 이단 화형식 장면에서는 실제로 불을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한 시각적 효과를 이뤄냈으며, 당대 화가들의 성화와 초상화들을 활용한 배경 영상도 설득력이 있었다.
호른을 비롯한 몇몇 악기들이 가끔 난조를 보여 음악적 밀도가 다소 떨어지기도 했지만 독일 지휘자 펠릭스 크리거는 디오오케스트라와 함께 극적 활력을 살리며 음악의 큰 그림을 잘 그려냈다. 조역 대부분의 가창도 훌륭했고 메트로폴리탄오페라콰이어 역시 음악적 화려함과 생동감을 뒷받침했다.
공연 직전 오페라하우스에서 짧은 개막식이 펼쳐진 이날 공연은 객석점유율 98.4%에 80%가 넘는 유료관객 비율을 보여줬다.


rosina@chol.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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