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블랙리스트' 없다던 법원 곤혹…'고의 부실조사' 의혹

입력 2018-11-26 17:17   수정 2018-11-26 18:23

'판사 블랙리스트' 없다던 법원 곤혹…'고의 부실조사' 의혹
3차례 자체조사에도 문건 발견 못 해…법원 "수사권 없어 조사 한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임순현 기자 =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한 문건이 드러나면서, 법원이 세 차례 자체조사에서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을 고의로 조사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26일 검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이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은 '법관사찰은 있었지만 인사 불이익을 준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법원의 자체조사 결과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문건은 애초 매년 2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음주운전 등 비위를 저지른 판사들에 대한 인사조치를 검토할 목적으로 작성됐지만, 대법관 인사나 사무분담 등 사법행정이나 특정 판결을 비판한 법관들에 대한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해외 파견 등 선발 인사에서 이들을 배제하고, 소속 법원에서도 형사합의부나 영장전담 업무는 맡기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별도의 문건도 함께 확보된 것으로 알려져 판사 블랙리스트의 결정적 증거가 될 전망이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수사가 속도를 낼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그동안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 존재를 부정했던 법원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됐다.
앞서 이 의혹을 처음 조사했던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는 지난해 4월 18일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을 추단케 하는 어떠한 정황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소장파 판사들의 거센 요구로 재조사를 실시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 역시 지난 1월 22일 판사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이마저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3차 조사격인 대법원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가동됐지만 지난 5월 25일 조사결과 발표에서 판사 블랙리스트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3번의 자체조사에서 발견하지 못했다던 블랙리스트 문건이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손쉽게 발견되면서 법원이 고의로 문건을 확보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애초 이 의혹이 '판사 뒷조사 문건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탄희 판사가 사직서를 내면서 시작된 만큼 문건을 작성할 가능성이 높은 인사총괄심의관실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했어야 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자체조사 단계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알고도 고의로 숨긴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물의 야기 법관'에 대한 인사조치 검토 문건이 해마다 작성되다가 올해부터 중단된 사실을 확인했다. 또 인사 담당자만 접속 가능한 법관인사관리시스템에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 등 특정 성향 판사들에 대한 평가가 기재됐다가 삭제된 정황을 파악하고 최근 인사 업무를 맡았던 심의관들을 잇따라 불러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수사권한이 없어 당사자의 동의를 전제로 문건을 확보해 조사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있었다며 민감한 개인정보가 담긴 인사실 문건에 대해서는 조사가 불가능했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특별조사단 조사 당시 공문으로 인사총괄심의관실에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에 대한 불이익한 인사처분 관련 문건이 있는지 요청했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식입장을 받은 것으로 안다"면서 "당시 특별조사단은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문건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y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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