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기행] '혼령 떠난 뒤의 그 허한 뒷맛'…헛제삿밥과 안동식혜

입력 2019-03-13 08:01  

[음식기행] '혼령 떠난 뒤의 그 허한 뒷맛'…헛제삿밥과 안동식혜

(안동=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경북 안동만큼 우리나라의 유교적 전통이 살아있는 지역은 없다.
1999년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나흘간의 짧은 방문 기간에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교 문화를 상징하는 도시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다양한 음식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제사에 사용된 재료로 만들어진 헛제삿밥을 들 수 있다.
안동 시내를 들를 때 한두 번 가본 적이 있는 상아동 월영교 앞 헛제삿밥 전문 식당을 최근 다시 한번 찾았다. 예전엔 몰랐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식당 간판에 '맛 50년'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안동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에서는 제사를 지낸 음식 재료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곤 했다. 여기서 개발된 것이 헛제삿밥이다.
밥에 다시마와 무, 두부를 넣고 끓인 탕과 간고등어, 쇠고기 꼬치 등이 주메뉴를 이룬다.



어떤 시인은 '혼령 떠나고 난 뒤의 그 심심한 뒷맛'이라는 말로 안동의 헛제삿밥을 표현했다.
혼백의 허허로움을 달래는 음식이었던 제삿밥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음식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최영년(1859∼1935)이 지은 책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제사에서 음식이 남으면 비빔밥을 만들었는데, 대구부 안에서 이를 모방해 시장의 가게에서 판매하며 이름을 헛제삿밥이라고 하였다."
1800년대에 이런 기록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이미 그 이전부터 이런 전통이 내려왔던 모양이다. 최영년은 신소설 '추월색'(秋月色)을 쓴 최찬식의 아버지다.

◇ 헛제삿밥의 유래

헛제삿밥은 경상도 지역에서 제사음식을 흉내 내 장만한 갖가지 나물과 밥을 버무려 먹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조선 시대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등 서원에서 공부하던 학자와 유생들이 출출함을 달래려 제사상을 보게 한 뒤 실제로 제사는 지내지 않고 그 제사음식만 먹었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제사를 핑계로 음식을 만들어 먹은 데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연유야 어찌 됐든 제사음식에서 시작된 이 헛제삿밥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다. 상아동 식당의 주인 전명자 씨는 헛제삿밥이 1977년에 상품화됐다고 증언한다.
전씨는 진성 이씨 집안의 맏며느리였던 조계행 할머니가 안동민속촌에서 헛제삿밥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며느리인 방옥선 씨에게 전수됐고, 이후 2003년부터 본인이 이어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헛제삿밥은 제삿밥인 만큼 화학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재료도 국산만 쓴다.

◇ 헛제삿밥 메뉴

가장 기본적인 상차림은 탕과 삼색 나물이 주재료인 비빔밥, 고기와 전, 안동 식혜 등 핵심적인 메뉴들로만 구성된 것으로, 가격은 1만원이다.
헛제삿밥의 비빔밥은 고추장을 쓰지 않고 깨와 참기름이 더해진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산나물은 제주도에서 계약재배를 한다.
탕은 어류와 육류, 채소의 맛을 잘 낼 수 있도록 쇠고기와 무, 명태와 오징어, 다시마 등을 써서 끓여낸다. 이 집 탕은 약한 불로 오랫동안 끓여내 고유의 제사 탕 맛을 재현하고 있다.
헛제삿밥을 가장 제사음식처럼 보이게 하는 메뉴는 제기 위에 올라가 있는 음식들로, 쇠고기 꼬치와 간고등어 꼬치, 배추전과 호박전, 다시마 전, 두부 전, 삶은 계란 등이다.
여기에 조기와 상어 꼬치, 쇠고기 산적, 떡 등이 더해진 것이 1만8천원짜리 선비상이다.



상어 꼬치는 상어고기를 토막 내고 포를 뜬 뒤 소금에 절인 것이다. 경상도에서는 이를 '돔배기'라 부르기도 하는데, 안동지역에서는 상어 꼬치라 표현한다. 선비상에다 불고기와 육회, 문어 숙회가 더해지면 3만원짜리 '현학금상'으로 변한다.
일단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은 비빔밥은 오히려 깔끔한 느낌을 줬고, 원재료의 맛을 더 생생하게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짭조름한 상어 꼬치와 쇠고기 산적은 몇 번 씹자 침이 가득 고일 만큼 맛났다.
밥숟가락을 움직이다 보니 놋그릇 특유의 댕댕거림도 멋스럽게 느껴졌다.
탕국은 밥을 추가하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킬 만큼 시원했다.
"안동에 왔으면 간고등어를 좀더 먹는 것이 어떠냐"는 주인 아주머니의 권유에 한 접시를 시켰는데, 배가 너무 부를 정도였다. 양이 적은 사람은 1만원짜리 헛제삿밥 정도도 좋을 것 같았다.



◇ 빨간색이 강렬한 안동 식혜

이 집에서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안동 식혜다. 안동 식혜는 밥에 무를 썰어 넣고 생강즙, 고춧가루, 엿기름물을 넣고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켜 만든 음료다. 헛제삿밥을 시키면 함께 나온다.
전씨는 "제사를 지낸 뒤 새벽에 잠자리에 들면 소화가 안 되니 소화제 역할을 한 것이 안동 식혜"라고 말했다.
식당 주방에는 옛날 아이스크림 통 형태의 식혜 전용 냉장고가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낼 수 있는 식혜와 조금 삭혀야 하는 식혜 등이 나눠 보관돼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lpor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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