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가 없어요"…환자도 의사도 못 지키는 응급의료체계

입력 2019-02-08 17:26  

"베드가 없어요"…환자도 의사도 못 지키는 응급의료체계
응급실 과밀화·불필요한 전원 막아야…지역 중심 체계 구축 필요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설 연휴 근무 중 윤한덕(51)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돌연 사망하면서 국내 열악한 응급실 환경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각급 병원 응급실 의사들은 비단 명절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밀려드는 환자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난 1일 당직실에서 숨진 가천대길병원 전공의도 '과로'가 사망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엇보다 응급실 과밀화 등에 따른 문제는 고스란히 환자의 생명 문제와도 직결된다. 전문가들은 응급의료체계의 근본적 개선 없이는 의사들의 과로사는 물론 환자들의 '골든타임'(치료·처치 적정시기)도 지킬 수 없다고 지적한다.

◇ 가벼운 복통·입원 대기 환자도 응급실로…과밀화 심각
응급의료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대표적인 사회안전망이다. 민간에서는 적정 공급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장실패' 영역인 만큼 정부의 정책적 개입 필요성이 큰 분야로 꼽힌다.
8일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으로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 57개소, 지역응급의료센터 131개소, 지역응급의료기관 247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는 중증응급환자 치료에 집중하고, 지역응급의료기관은 24시간 일차 응급진료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지역응급의료기관은 물론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에도 경증환자가 몰리는 과밀현상으로 응급실은 몸살을 앓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 의사들은 응급실이 '시장통'과 흡사하다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경기도의 한 응급실에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대형병원 응급실은 항상 베드(병상)가 부족하다"며 "단순 복통 등 응급상황이 아니어도 응급실을 찾는 환자부터 외래진료를 받고 입원이 안 되자 응급실로 오는 환자까지 언제나 붐빈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렇다고 환자들이 오는 데 막을 수도 없다"며 "정부가 책임지고 응급의료체계를 잡아야 하는데, 현재는 비응급 의료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하는 문턱이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환자 스스로 응급진료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만큼 병원 내에서 신속하게 환자를 구분하고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인철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환자 스스로 응급하지 않다고 판단해도 응급한 경우가 있다"며 "환자가 응급실에 오는 것을 망설이게 하기보다는 병원 내에서 환자 분류를 신속하게 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 응급실은 중증응급환자 치료가 핵심…중환자 수용력 높여야
현장에서 중증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치료가 가능한 적정 병원을 찾아 이송하는 것도 문제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더라도 수술이 가능한 의료진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2016년 9월 교통사고로 전북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된 이후 전국 13개 병원에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골든타임'을 놓쳐 숨진 소아환자 사망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안전처 등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3∼2016년 상반기 119구급차 병원 재이송 사례는 총 4만5천352건에 달했다.
병원의 거부 사유는 '전문의 부재'가 10만537건(23.2%)으로 가장 많았고, '진료과 없음'이 6천069건(13.4%)으로 뒤를 이었다. '병상 부족'이 3천922건(8.6%)이었고, 의료장비 고장으로 인해 재이송한 횟수도 774건(1.6%)이나 됐다.
전문가들은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의료기관 간 환자를 옮기는 전원(轉院)체계가 일률적으로 갖춰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명제 응급의학과 전문의(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는 "병원마다 전원체계가 다르고 대부분의 병원은 이를 담당하는 전담인력이 없다"며 "이 때문에 전원 때마다 병상에 여력이 있는지, 치료가 가능한 전문의가 있는지 등이 제대로 파악이 안 되거나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또 중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의 기반 자체가 미흡하다는 점도 전원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박 교수는 "응급의학에 있어 중요한 것은 치료 시기에 따라 사망률이 달라지는 중증환자"라며 "우리나라 병원은 전반적으로 중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환자실이 꽉 차 있다 보니 응급실에서도 중증환자를 못 받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라며 "결국 중환자, 응급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시설, 인력 등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지역 중심 응급의료체계 구축…이송체계도 개선 필요
신속한 전원도 중요하지만,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응급환자 발생했을 때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바로 이송이 이뤄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는 응급의료체계가 지역에 기반을 두고 구축돼야 불필요한 전원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마다 중증응급환자를 담당할 수 있는 응급의료시설이 확보돼야 한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김윤 서울의대 교수는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에서 취약한 부분은 중증응급환자에 대한 진료 기능"이라며 "지역별로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있지만, 숫자가 적고 중환자 진료 기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각 지역의 권역센터 숫자를 늘리고 중증응급환자 진료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며 "권역센터가 책임지는 응급환자의 범위를 정하고 지역에서 발생하는 환자를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중심의 응급의료체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 단계인 이송체계 역시 손봐야 한다.
119는 통상 응급환자를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는데, 환자 상태에 따라 멀더라도 적정한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전국 17개(운영예정 포함) 권역외상센터가 있지만 중증 외상환자 비율은 30%에 못 미친다"며 "지역에서 중증응급환자가 발생하면 권역외상센터가 이를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 상태에 따라 어느 의료기관으로 이송을 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체계도 지역 응급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운영돼야 빠른 이송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대한응급의학회 홍은석 이사장 역시 "응급환자를 중앙에서 모두 컨트롤하는 것은 어렵다"며 "17개 시도별로 진료권역을 나눠 지역 내에서 응급의료 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e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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