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 석탑, 20년 보수 끝내고 역사적 준공(종합)

입력 2019-04-30 15:58   수정 2019-04-30 20:13

익산 미륵사지 석탑, 20년 보수 끝내고 역사적 준공(종합)
2001년 해체 시작해 2017년 6층으로 조립 완료
석탑 관련 논문·학술 발표·책자 48건, 특허 등록 5건



(익산=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백제 무왕(재위 600∼641) 때 창건한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20년에 걸친 보수 공사에 마침표를 찍고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전라북도, 익산시와 함께 30일 오후 2시 미륵사지에서 석탑 보수정비 준공식을 열어 기나긴 해체·수리 작업이 마무리됐음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익산시립무용단 무용극과 사업 경과보고, 기념사에 이어 참가자들이 흰색 가림막을 제막하자 보수를 마친 미륵사지 석탑이 눈앞에 나타났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미륵사지 석탑 수리 20년 동안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며 "1천300년 전 왕후가 안녕을 위해 탑을 세우신 그 마음을 그대로 가슴에 담아 돌 하나, 흙 한 줌의 역사를 어루만졌다"고 말했다.
정 청장은 "체계적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미륵사지 석탑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 진정성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며 "석탑 보수·정비를 통해 한국 석조문화재 보존기술은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자평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20년 보수 끝내고 역사적 준공 / 연합뉴스 (Yonhapnews)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최대(最大)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은 부재 1천627개를 짜 맞춰 새롭게 완성했다. 높이는 14.5m, 폭은 12.5m, 무게는 약 1천830t이다. 탑 위에 돌을 하나 더 얹으면서 종전보다 30㎝ 높아졌다.
미술사적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석탑은 서쪽 금당(金堂)터 앞에 세운 서탑이다. 백제가 왕실 안녕과 중생 불도(佛道)를 기원하며 조성한 미륵사는 금당과 탑이 각각 세 개인 삼원식(三院式) 사찰로, 중앙에는 목탑을 두고 서쪽과 동쪽에 석탑을 건립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 문신 소세양의 문집인 양곡집(陽谷集), 조선 후기에 편찬한 기행문 와유록(臥遊錄)에도 등장한다.
영조 32년(1756)에 간행한 익산 읍지인 금마지(金馬志)는 미륵사지 석탑에 대해 "높이가 10여장(丈)이며, 동방에서 가장 높은 석탑으로 속설에 전한다"며 "벼락 친 곳 서쪽 반은 퇴락했다. 흔들렸음에도 큰 탑은 그 후 더 이상 무너지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일제는 1915년 석재들이 일부 무너져 내린 미륵사지 석탑을 콘크리트로 긴급 수리했다. 이후 석탑은 약 80년을 콘크리트에 엉겨 붙은 채 버텼다.
서쪽에서 보면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느껴진 미륵사지 석탑은 1999년 문화재위원회가 구조가 불안정하다는 안전진단 결과를 반영해 해체·수리를 결정하면서 대역사에 돌입했다.
이듬해 석탑을 보호하기 위해 거대한 가설 덧집을 설치했고,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1년 10월 6층 옥개석(屋蓋石·지붕돌)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체에 나섰다.
해체가 완료될 무렵인 2009년에는 미륵사를 창건한 인물이 '좌평 사택적덕(沙宅績德)의 딸이자 백제 왕후'이고, 사찰 건립 시기가 639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리봉영기가 발견됐다.
삼국유사는 미륵사를 창건한 주체가 백제 무왕과 그의 왕비이자 신라 진평왕 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라고 했으나, 사리봉영기에는 왕후가 사택적덕 딸로 기록돼 '서동요' 설화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미륵사지 석탑을 둘러싼 또 다른 논쟁은 층수였다. 일제강점기에 촬영한 사진에는 석탑이 6층이었으나, 1990년대에 2년 3개월 만에 복원한 동탑처럼 9층까지 탑을 쌓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하지만 연구소는 6층 이하 부재만 현존하는 데다 7층 위로 돌을 올리면 옛 부재가 하중을 견디지 못한다고 판단해 한 세기 전처럼 6층으로 보수하기로 했다.
연구소는 이후 설계 과정에서 추론에 의한 복원을 지양하고, 훼손된 부재는 과학적 방법으로 보강해 되도록 재사용하며, 현대적 기술 적용을 최소화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에 따라 옛 부재 중 81%를 다시 썼고, 새 부재는 익산에서 나는 화강암인 황등석을 가져와 사용했다. 옛 부재와 새 부재 비율은 각각 65%, 35%다.
석재를 하나하나 떼어내고 185t에 달하는 콘크리트를 제거한 뒤 다시 조립하는 데에는 16년이 걸렸다. 연구소는 2017년 조립을 완료하고, 가설 덧집과 울타리를 올해 초에 철거했다.



미륵사지 석탑이 단일 문화재로는 가장 오랫동안 수리한 사례로 기록되면서 다양한 연구 성과가 쏟아지기도 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미륵사지 석탑과 관련해 집계된 학술 발표가 18건이고, 연구논문 14건, 학위논문 5건, 책자 9권이 나왔다. 특허 등록도 5건에 달한다. 보수에 참여한 연인원은 12만명이다.
김현용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미륵사지 석탑의 진정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연말까지 연구 성과와 해체·보수 과정을 정리한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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