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다뉴브강'…비극의 현대사 한몸에 품은 머르기트 다리

입력 2019-06-05 07:00   수정 2019-06-05 16:30

'슬픈 다뉴브강'…비극의 현대사 한몸에 품은 머르기트 다리
유람선 침몰 현장 바로 위 가로지르는 부다페스트의 대표적 다리
1944년 11월 독일군 모의 폭파훈련 잘못돼 수백명 희생…독일군 퇴각하며 완파
韓 잠수요원들, 2차대전 당시 두 차례 폭파된 다리의 잔해 수중서 확인하기도



(부다페스트=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다뉴브강(헝가리어로 '두나' 강)에서 한국인 33명 등 총 35명을 태우고 가다 추돌사고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헝가리어로 '인어'라는 뜻)호는 현재 머르기트 다리 아래 수중에서 인양을 기다리고 있다.
유람선 침몰 지점의 바로 위에 놓인 머르기트 다리(Margit hid. 영어명 Margaret Bridge)는 부다페스트의 화려한 다뉴브 강변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도심의 휴식처인 머르기트 섬을 연결해 유동 인구가 많은 명소지만, 이번 참사 이전에도 2차대전 당시 수백명의 인명이 희생된 슬픈 역사를 품고 있다.
부다페스트 서쪽의 부다와 동쪽의 페스트를 머르기트 섬을 가운데 두고 연결하는 이 다리는 처음에 프랑스인 엔지니어 에르네스트 구앵의 설계로 1876년 지어졌다.

하지만 지금 지어진 다리는 2차대전 때인 1944∼45년 두 차례 완파된 뒤 완전히 새로 지은 것이다.
1944년 11월 4일 머르기트 다리에서는 나치 독일군의 모의폭파 훈련이 잘못돼 다리의 동쪽 교각이 완파되면서 수백명의 인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있었다.
이날은 헝가리의 파시스트 정당인 '화살십자당'의 당수 살러시 페렌츠의 총리 취임식이 있던 날이었고, 토요일이라 머르기트 다리는 평소보다 더 많은 보행자와 차량으로 붐볐다.
이날도 부다페스트 남동쪽 100㎞ 지점에서는 독일군과 소련군이 치열한 포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일부 소련군은 부다페스트 외곽까지 진격한 상태였다. 독일의 패색이 짙어가던 무렵이었지만 파시스트 정권 치하의 헝가리는 나치의 편에서 최후의 항전을 결의했던 시점.
이에 따라 헝가리 공병대는 11월 초에 머르기트 다리에 대량의 폭탄을 설치했다. 시시각각 진격하는 소련군이 다리를 통해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이었다.
11월 3일 이 교량의 책임은 나치 독일군의 공병대로 이관됐고, 독일은 다음날 교량을 통제하지도 않은 채 폭파 모의훈련을 했다.
그런데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원인으로 인해 이 모의훈련은 다리 동쪽 부분이 완전히 파괴되는 대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독일군이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지도 않고 벌인 폭파훈련이 잘못되면서 다리 위에 있던 100∼600명의 폴란드인과 40여명의 독일군이 그 자리에서 폭사한 것이다.
아직도 사망자 수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고 있지만, 최대 600명에 달할 것이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추산이다.
희생자들은 독일군 공병대 40명을 제외하고는 다리 위의 전차에 타고 있거나 걸어가던 평범한 시민들과 강제노역에 동원돼 교량 위의 트럭에서 대기하던 유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목격담들에 따르면, 이 일대는 폭격을 맞은 현장보다 더 참혹했고 다리에서 떨어진 사람 중 60여 명이 중상을 입고 인근 선박들에 의해 구조됐다고 한다. 사망자 중에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펜싱 챔피언이었던 엔드레 카보스도 있었다.
하지만 머르기트 다리 폭발 참사는 비극의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이 사건이 있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부다페스트는 퇴각하는 독일군과 진격하는 소련군이 벌인 102일간의 공방전으로 초토화되다시피 했고, 특히 독일군은 후퇴하면서 부다페스트를 흐르는 아름다운 다뉴브강 위의 교량 전부를 폭파해버렸다.
호르티 다리(현 페토피 다리), 자유 다리, 엘리자베스 다리, 세체니 다리, 그리고 반 토막만 남아있던 머르기트 다리까지, 모두 잔혹한 전체주의와 전쟁의 참화로 무너져내렸다.
머르기트 다리 아래의 다뉴브강 수중에는 여전히 2차대전 말기 두 차례의 폭파로 무너져 내린 잔해들이 가득하다.
실제로 한국인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우리 정부가 파견한 해군·해경 등의 특수 잠수요원들도 당시의 잔해들을 직접 확인했다.
정부 합동신속대응팀의 현장지휘관인 송순근 육군대령(주헝가리대사관 무관)은 지난 4일 "(수중에 투입된) 우리 대원들에 의하면, 강바닥이 모래나 진흙이 아니고 부서진 바윗덩어리들인 것을 확인했다. 2차대전 때 다리가 파손돼서 그 잔해가 밑에 깔려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교량의 잔해뿐만이 아니다. 2011년에는 이 머르기트 다리 아래 수중에서 1944년 11월 4일 폭발사고 희생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이 대거 발견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머르기트 다리와 바로 그 하류의 명소인 세체니 다리 사이 강둑에는 2차대전 당시 파시스트 민병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시민들을 기리는 조형물 '다뉴브 강가의 신발들'이 당시의 또 다른 비극의 역사를 증언한다.


영화감독 캔 토가이, 조각가 귈라 파우가 의기투합해 2005년 설치한 이 작품은 다뉴브 강가에서 신발을 벗어 놓고 일렬로 선 채로 민병대의 총격을 받고 숨져 떠내려간 3천500명의 무고한 시민(이 중 800명이 유대인)을 추모하고 있다.
이런 비극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견뎌낸 다뉴브강이어서일까. 한(恨)의 정서를 깊이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한국인들이 다수 희생된 이번 유람선 침몰 사고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며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는 모습이다.
머르기트 다리 곳곳과 강변에 시민들이 두고 간 국화와 양초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가운데, 지난 3일 저녁에는 머르기트 다리 위에 자발적으로 헝가리인 수백명이 모여 우리의 '아리랑'을 낮은 목소리로 합창하며 눈물을 훔쳤다.
실종 한국인의 시신이 2구 수습된 지난 4일에는 한국 정부합동 신속대응팀의 현장지휘소가 차려진 머르기트 섬을 조깅하던 한 중년의 헝가리인 여성이 취재 중이던 기자 앞에 갑자기 멈춰 서더니 뜻 모를 헝가리어로 말을 걸어왔다.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슬픈 눈으로 말을 하는 그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당신의 나라에서 온 분들의 희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yongl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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