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 "뉴욕의 고독과 고통 맛봐야 즐거움 알 수 있죠"

입력 2019-06-26 14:11   수정 2019-06-26 14:30

한대수 "뉴욕의 고독과 고통 맛봐야 즐거움 알 수 있죠"
'나는 매일 뉴욕 간다' 출간…40년 뉴요커가 전하는 진짜 뉴욕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10년 이상 살면서 100년 넘는 고독을 느껴야 한다. 이혼도 한 번쯤은. 월세를 못 내서 한두 번은 쫓겨나야 한다. 노숙자 경험까지 했다면 '진짜'다.
'포크록 전설' 한대수(71)가 생각하는 뉴요커 조건은 다소 극단적이지만 의미심장하다. 한대수 특유의 유머 섞인 화법에 자본주의 천국인 도시의 무정한 현실이 깔려있어서다.
"이 도시가 주는 고독과 고통을 맛봐야 그 즐거움을 알 수 있다는 얘기죠."
미국 뉴욕에서 수화기 너머로 이런 말을 들려주면서 한대수는 '크하하~' 웃었다. 최근 국제전화로 만난 그는 얼마 전 건강 이상으로 주위를 걱정시켰지만, 다행히 호전된 듯 호탕한 목소리였다.
"월세 2만 달러 뉴욕 아파트에서 호화롭게 살다 간 외국 재벌들을 뉴요커라 할 수 없죠. 4~5년간 뉴욕대(NYU)에 다니며 월세 6천 달러 맨해튼 아파트에서 지낸 것도 그저 뉴욕을 즐긴 거고요. 뉴욕의 상처와 고통은 알지 못했을 테니까요."



2016년 여름, 한대수는 15년의 신촌 단칸방 살이를 접고 부인 옥사나, 환갑에 얻은 딸 양호와 다시 뉴욕으로 이주했다. 한국의 버거운 교육 환경에 떠밀릴 딸에게 자유로운 문화예술의 공기를 마시게 해주고 싶었다. 한대수가 조부모 초청으로 처음 뉴욕에 간 게 1958년이니, 70여년 인생 중 40년을 뉴욕에서, 30년을 서울과 부산에서 보냈다. 그래서 뉴욕은 그에게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다시 만난 세계는 달라져 있었다. 그는 뉴욕 곳곳을 걸으며 '옛것'을 상기했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1년간 써 내려갔다. 그 결과물이 최근 출간한 책 '나는 매일 뉴욕 간다'이다.
그는 "나 자신도 바뀌어 새로운 인생담과 태도로 뉴욕을 다시 깨닫게 됐다"며 "매일 만나는 도시가 새롭다 보니 '나는 매일 뉴욕에 간다'"고 웃었다.



한대수의 발길이 닿은 곳에선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최첨단 문화 도시의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뉴욕의 미술관, 박물관, 예술가 생가, 거리에서 만난 대가들의 삶과 걸작 이야기는 그의 박력 있는 필체와 지적 편력 덕에 생동감이 넘친다. 역동적인 뉴욕 풍경도 그가 직접 찍었다.
한대수는 뉴욕의 가장 오래된 술집 피츠태번에서 소설가 오 헨리의 흔적과 만난다. 오 헨리는 이곳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걸작 '크리스마스 선물'을 3시간 만에 썼다. 시인이자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가 살던 마지막 집 '포의 오두막'에선 비극적인 삶을 산 문학가의 영혼을 느낀다. 그는 포를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 박물관은 뉴욕의 '숨은 보석'이며, 구겐하임 박물관이 '사진계 폭군'이자 이단아 메이플소프의 파격적인 사진전을 여는 것에 놀란다.



1968년 데뷔한 음악가이자 사진가, 작가인 한대수는 폭넓은 예술 취향과 가치관의 호불호를 직설화법으로 풀어낸다.
'팝 아트 거장' 앤디 워홀은 "유명해지자 돈 버는 기계가 됐고", 비욘세는 "수영복 모델인지 가수인지 알 수 없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같은 현세대 영웅은 우리 생활을 단순화시킨 '역적'이다.
반면 그는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50회 공연을 매진시킨 한살 어린 빌리 조엘을 재발견하고, U2 공연을 보고는 실력이 모자란다고 느낀 기타리스트 디 에지가 위대하다고 느낀다.
"크하하~. 책을 쓸 땐 있는 그대로, 솔직해야 하잖아요."



그의 시선에 포착된 예술가 도시의 낭만은 민낯을 한층 도드라지게 한다. 한대수는 노숙자, 성소수자(LGBT), 마리화나, 가짜 뉴스, 총기, 악몽 같은 지하철 등 도시의 속살을 예리한 사색으로 짚어낸다.
그는 "지금 뉴욕은 재벌의 놀이터지만 뉴욕 원주민엔 지옥"이라며 "부동산값은 계속 오르고, 서민은 월세가 너무 비싸고, 노숙자는 계속 늘어난다. 진짜 뉴요커가 쫓겨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가 1960~70년대 느낀 도시의 매력적인 공기도 희미해졌다.
"(비틀스) 존 레넌이 1980년 암살당하기 전엔 많은 스타가 레스토랑에서 혼자 음식을 먹고 거리를 활보했죠. 수다쟁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만났고, 알 파치노, 장 폴 고티에, 더스틴 호프만 등을 곧잘 보았어요. 레넌은 자유 때문에 뉴욕을 좋아했지만, 그가 살해당하면서 모든 걸 바꿔놨죠. 지금은 모든 스타가 경호원을 두고 거리를 걷는 것도 드물어요. 너무 슬프죠."
그래도 다채로운 표정의 뉴욕은 한대수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세계 경제와 예술을 리드하는 도시이자, 그 이면의 고독한 공기는 그의 감각을 계속 자극한다.



"고독한 로큰롤 할배"라는 그는 책에서 자유분방하게 디자인한 인생도 돌아본다. 신학자이자 연세대학교 설립자 중 한 명인 할아버지 한영교 목사, 촉망받던 물리학자였으나 미국에서 실종돼 그가 17살에 재회한 아버지, 뉴요커가 돼가는 딸의 이야기까지…. 불장난 같던 그의 청년기 사랑도 가감 없이 담겼다.
그는 "매일 같이 죽음을 생각한다"며 실수와 후회가 있는 인생이라고 자기 고백을 한다.
최근 한대수는 폐 이상으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두 번이나 응급실을 다녀왔다.
그는 "양호가 911에 전화한 덕에 살아났다"며 "병원에서 5분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더라"고 떠올렸다. 당연히 지난 50년간 줄기차게 피웠던 담배도 몇달 전부터 끊었다.
"밴드를 하며 녹음실에 밤낮으로 처박혀서 음반 만들고…. 로큰롤 인생이 폐를 망친 거죠. 제국의 몰락처럼 폐가 몰락했어요. 다행히 산소치료로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 돈, 권력도 아니고 호흡이에요. 숨 쉬는 건 아름다운 아트죠. 크하하~."
책 사이 담긴 예술가들의 명언 중 이사무 노구치의 글귀가 문득 눈에 들어온다.
'살아있는 이 순간을 고맙게 생각하라.'
북하우스. 328쪽. 1만5천800원.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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