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인이여"…이란서 시아파 최대 추모제 아슈라 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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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9-10 17:36  

"호세인이여"…이란서 시아파 최대 추모제 아슈라 엄수

"호세인이여"…이란서 시아파 최대 추모제 아슈라 엄수

680년 수니파 왕조에 비참하게 살해된 시아파 이맘 호세인 기려

시아파 무슬림 정체성 되새기는 연례 종교행사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오늘은 아슈라. 호세인께서 적이 쏜 화살을 수도 없이 맞아 피를 흘리셨다. 그들은 목을 잘랐다. 아 호세인이여"

이슬람력(히즈라력)으로 첫달인 무하람이 되면 시아파의 중심국 이란 전역은 이맘 후세인(이란어 발음으로 호세인)을 상징하는 초록 깃발과 쿠란(이슬람경전) 구절을 적은 검은 휘장으로 둘러싸인다.

시민들도 추모하는 뜻으로 검은색 긴 옷을 입는다.

시아파 무슬림이 가장 숭모하는 후세인의 비장한 순교를 추모하는 아슈라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무하람 10번째 날인 아슈라는 올해 10일에 도래했다.

그의 죽음은 이슬람의 수니파와 시아파가 나뉘게 된 역사적인 사건이다.

비록 1천400년전 일이지만 이런 구분은 정치로도 이어져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 그룹과 이란을 맹주로 하는 시아파가 여러 중동 현안을 놓고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

같은 이슬람이지만 이슬람국가(IS)와 같은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이 타 종교보다 오히려 시아파를 더 배척해 이단자, 배교자로 보고 잔혹하게 공격했을 만큼 양측의 종교적 간극이 크다.

두 종파는 이슬람이 탄생한 초기 7세기에 갈라졌다.

이슬람을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후계자(칼리프)를 지목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것이 결과적으로 두 종파로 나뉘게 된 원인이 됐다.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4대 칼리프 알리까지는 예언자의 혈통으로 후계자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 수니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혈통이 아니더라도 합의로 칼리프에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시아파는 반드시 예언자와 알리의 직계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시아파라는 명칭 자체가 '알리의 추종자'라는 뜻이다.



양측의 갈등은 서기 680년 10월 지금의 이라크 중남부 카르발라에서 폭발한다.

수니파 세력은 우마이야 왕조를 창건해 그 왕을 최고 종교지도자인 칼리프로 책봉했다. 반면 소수 시아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이자 4대 칼리프 알리의 아들 후세인 이븐 알리를 따랐다.

우마이야 왕조의 야지드 1세는 아버지 무아위야에게서 680년 칼리프를 이어받은 뒤 후세인의 시아파 세력에 충성을 요구했다.

거대한 수니파 왕조와 대결을 앞두고 당시 시아파 내부에서는 주전론과 주화론이 충돌했다.

결국 후세인은 결사 항전을 택하기로 하고 카르발라에서 우마이야 왕조와 맞붙었으나 그의 곁엔 72명의 병사와 가족밖에 없었다.

현격한 군사력 차이로 단 2시간 만에 후세인은 수니파 군대에 처참하게 패한다. 수십 발의 화살을 맞고 전사한 후세인의 목은 베어져 수니파 칼리프 야지드 1세에게 보내졌다.

야지드 1세는 그가 죽어서도 쿠란을 암송하지 못하도록 잘린 머리를 심하게 매질했다고 한다.

카르발라 전투는 전투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일방적이고 순식간이었지만 수니파와 시아파가 돌이킬 수 없는 원한 관계가 된 결정적 장면이 됐다.

시아파 무슬림에게 후세인의 비극적 전사는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순교와 견줄 수 있을 만큼 시아파의 종교적 정체성을 설명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수니파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아슈라에 금식기도했다는 이유로 하루 동안 금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시아파는 전혀 다르다.

순교한 후세인은 시아파가 섬기는 12명의 이맘 가운데 가장 숭모하는 대상이다. 그가 전사한 이라크 카르발라는 지금 시아파 최고의 성지다.

1천400년전 후세인의 용기와 비극적 순교, 수니파에 당한 치욕을 매년 기억하는 아슈라는 시아파를 결속하는 가장 중요한 종교 행사다.

시아파는 후세인의 순교를 거짓과 압제, 불의에 굴하지 않고 목숨으로 이슬람의 진실을 수호한 성스러운 행위로 여긴다.

최근 이란이 미국의 경제·군사적 압박을 받자 이란 정부와 종교계에서 '적에 대한 저항'을 독려하면서 후세인의 장렬한 전사와 불굴의 정신을 상기하기도 한다.

이 기간엔 어린이도 후세인을 공격한 우마이야 왕조를 상징하는 붉은색 옷을 입지 않는 게 좋다.

시내 여러 곳엔 검은색의 아슈라 텐트(차도르)가 설치돼 무료로 식사와 차를 대접하는 자선이 베풀어진다.

'노헤'라는 장송곡과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추모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양손에 든 쇠사슬 채찍으로 자신의 어깨를 때리며 후세인의 고통을 되새긴다.

이 채찍질은 이맘 후세인을 지키지 못한 자책의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엔 칼로 자신의 이마를 반복적으로 두들겨 피를 내는 것이 믿음을 표현하는 행위로 여겨졌으나 사상자가 나자 정부가 나서서 이를 자제하도록 했다.

행진 중에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때리면서 후세인이 수니파 군대에 당한 모욕을 애통해하고, 감정이 고조돼 눈물을 흘리는 무슬림도 쉽게 볼 수 있다.

성탄절과 같이 기쁜 날을 기념하는 다른 종교와 달리 시아 이슬람은 7세기 카르발라 전투 이후 역사적으로 핍박받는 소수 종파인 탓에 한스럽고 슬픈 날을 추모한다는 점에서 시아파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날이 아슈라라고 할 수 있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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