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홍콩 투표소마다 긴 줄…"폭력경찰 심판" vs "시위 끔찍"

입력 2019-11-24 17:31  

[르포] 홍콩 투표소마다 긴 줄…"폭력경찰 심판" vs "시위 끔찍"
아침부터 수백 미터 줄 서 투표…사상 최고 투표율 예상
폭동 진압 경찰 배치…폭력사태 없이 평화롭게 진행돼
'송환법 시위' 영향 민주파 승리 자신…친중파 "침묵하는 다수 존재"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24일 오전 홍콩 타이쿠싱 지역의 아파트 단지 내에 마련된 구의원 선거 투표소.
이른 시간이었지만 수백 명에 달하는 유권자들이 긴 줄을 서 투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20, 30대 젊은 층에서부터 중장년층, 70, 8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수백 미터의 줄을 서 있었다.
한 70대 노인은 "투표를 일찍 마치려고 아침 8시도 안 된 시간에 투표소로 왔는데, 벌써 수백 명의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며 "2시간 동안 기다려서 겨우 투표를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근 사이완호 지역의 투표소 앞에서도 시민들이 수십 미터의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곳은 지난 11일 홍콩 경찰이 21살 시위 학생에게 실탄을 쏴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이날 홍콩에서는 18개 선거구에서 구의원 452명을 뽑는 구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유권자 413만명이 일반 투표소 610여 곳과 전용 투표소 23곳 등에서 투표권을 행사한다.



지난 6월 초부터 홍콩을 휩쓸고 있는 송환법 반대 시위가 6개월째 이어진 가운데 치러지는 이날 선거는 홍콩인들에게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시위대에게 수차례 실탄을 쏘는 등 과잉진압 비난을 받아온 홍콩 정부와 경찰에 이 선거는 '신임투표'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 친중파가 패배한다면 이는 홍콩 정부가 불신임을 받았다는 뜻이다.
시위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시위대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치며 홍콩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막상 이번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패배한다면 이는 시위대의 폭력을 시민들이 거부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오늘 선거는 시위대와 정부에 대한 민심을 읽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묘사했다.
이날 선거 등록 유권자는 413만 명으로 지난 2015년 369만 명보다 크게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이번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높은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18∼35세 젊은 층 유권자가 12.3% 늘어 연령대별로 최대 증가 폭을 보였는데, 진보적 성향의 젊은 층 유권자가 많이 늘어난 것은 범민주 진영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타이쿠싱 투표소에서 만난 20대 토 씨는 홍콩 경찰과 정부에 대한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홍콩 시민들은 경찰이 시위대에 대해 얼마나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는지 낱낱이 지켜봤다"며 "홍콩 정부에 대한 '국민투표'와 같은 오늘 선거에서 이러한 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표소 인근에서 기호 1번 앤드루 치우(趙家賢)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던 케이트 씨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염원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날 것이며, 범민주 진영이 승리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홍콩은 선거일 당일에도 각 후보 진영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치우 후보는 지난 3일 타이쿠싱 시티플라자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정치적 문제로 논쟁하던 상대 일가족 4명에게 흉기를 휘두른 친중파 남성을 말리다가 한쪽 귀를 물어뜯겨 심하게 다쳤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6개월 동안 이어진 송환법 반대 시위의 영향으로 범민주 진영이 다소 유리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시위대의 폭력을 비판하면서 질서 회복을 촉구하는 유권자들도 상당수 있어 선거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타이쿠싱 주민인 웡(52) 씨는 "지하철역과 길거리 점포에 불을 지르고 보도블록을 온통 깨뜨려 놓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냐"며 "70대 노인에게 돌을 던져 사망하게 한 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는 지난 13일 홍콩 성수이 지역에서 발생한 시위대와 주민 간 충돌 과정에서 시위대가 던진 것으로 보이는 돌에 머리를 심하게 다친 70세 노인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사망한 사건을 말한다.
친중파 진영은 이번 선거에서 그동안 시위대의 폭력에 환멸을 느낀 '침묵하는 다수'가 표심을 발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친중파 진영이 각 지역구에 구축한 탄탄한 선거 기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 민주개혁 등 정치적 담론에 치중하는 범민주 진영과 달리 친중 진영은 민생 문제에 주력해 지역 기반이 상대적으로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친중파 진영은 327석의 절대적인 의석을 차지하면서 18개 모든 구의회를 지배하고 있지만, 범민주 진영은 118석에 불과하다.
투표소에서 만난 30대 회사원 앤서니 씨는 "구의원 선거는 각 지역에서 누가 지역민들을 위해 더 나은 활동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할 것"이라며 "홍콩 전체의 정치적 문제는 그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유권자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이날 선거는 사상 최고 수준의 투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투표율은 이미 낮 12시 30분에 30.98%로 30%를 넘어섰다. 같은 시간 투표율을 비교하면 2015년 구의원 선거 때는 14.48%, 2016년 입법회 선거 때는 14.99%에 불과했다. 투표율이 이전 선거의 2배에 달한다는 얘기다.
이날 오후 2시 30분 현재 투표한 사람의 수는 175만 명으로 지난 2015년 구의원 선거 때 총 투표자 수 147만 명을 훨씬 넘어섰다. 투표율은 42.26%를 기록해 2015년 선거 때의 최종 투표율 47%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선거는 밤 10시 30분에 끝난다.
폭력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각 투표소에는 경찰이 배치됐다. 다만 이들은 유권자들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되도록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순찰하는 모습이었다.
선거는 전반적으로 평화롭게 진행됐다. 이는 시위대가 선거 승리를 염원하면서 시위를 자제한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2일 텔레그램에 올라온 '선거 승리를 위해 시위를 자제하고 반드시 투표하자'는 글에는 하루 동안 5천여 명이 '좋아요'를 누르기도 했다.
선거 결과는 25일 오전에야 나올 것으로 보인다.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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