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탁의 탁견] 4년 전 트럼프가 말했다…'방위비 교착'의 진실

입력 2020-04-20 09:24   수정 2020-04-20 09:46

[이우탁의 탁견] 4년 전 트럼프가 말했다…'방위비 교착'의 진실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2016년 7월 21일, 공화당 대선후보로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는 전당대회 도중 뉴욕타임스(NYT)의 데이비드 생어, 매기 하버만 기자와 인터뷰를 합니다.
트럼프의 외교 철학을 아주 직설적인 언어로 담아낸 이 인터뷰는 이후 '세계의 대통령' 트럼프의 생각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이단아'로 치부되던 트럼프는 세계적인 외교·안보 전문기자인 생어와의 대화를 통해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라는 것을 뽐냅니다. 트럼프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돼버린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구호를 놓고 거침없는 얘기를 하는 대목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의 흐름을 살펴볼 때마다 생어의 기사를 참고하곤 했는데 이 인터뷰 기사(Transcript:Donald Trump on NATO, Turkey's Coup Attempt and the World)를 읽은 뒤 느낀 충격이란…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생어가 "당신은 다른 나라들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그들과의 동맹 관계를 끊을 수도 있느냐"고 묻습니다.
트럼프는 답합니다. "우리 군대에 드는 엄청난 비용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중략) 난 그런 나라들에 '축하합니다. 이제 당신들 나라는 당신들이 지키게 됐습니다'라고 말할 겁니다".
곧바로 기자들의 '추궁'이 이어집니다. '전 세계에 주둔하는 미군들이 바로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이 헤게모니를 쥘 수 있었던 비결'이라며 한미 동맹의 전통적 의미와 주한미군의 가치 등을 거론하자 트럼프가 답합니다. "그게 우리에게 무슨 도움을 줬나"
한마디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을 자신의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미군 철수까지 검토하겠다는 겁니다.
4년 전의 일을 상기시키는 이유는 최근 한미방위비 분담금협정(SMA) 체결 협상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일 언론에는 '한미 방위비협정 잠정 타결, 이르면 오늘 합의 발표'라는 기사가 일제히 보도됐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지루하게 이어져 온 협상이 전격 타결돼 양국 정상의 최종 승인 절차만 남았다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갖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협력하기로 한 것을 계기로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는 정부 소식통의 설명까지 붙은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내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막판에 일이 틀어졌다는 겁니다. 워싱턴발 소식들을 종합해보면 한국 측이 전년 대비 최소 13%를 인상하겠다는 '최고 제시액'을 내놨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거부했다는 겁니다.
지난 20여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른바 '트럼프 변수'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말해주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트럼프는 자신이 설정해놓은 '목표액 50억달러'를 어떤 형태로든, 또 적어도 외형적으로 충족시키기 전에는 합의 문서에 서명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요즘 워싱턴에서는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거론된다고 하는데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 주류 사회는 트럼프의 생경함에 질려있다고 합니다. 이는 국무부나 국방부 등 미국 주요 관료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사임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인물로 잘 알려진 밥 우드워드가 2018년 책을 출판했는데, 제목이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Fear: Trump in the White House)'입니다. 백악관을 장악한 트럼프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데서 오는 '공포'라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한국 그리고 북한과 관련된 흥미 있는 내용도 적지 않습니다. 대통령 취임 직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파기하겠다고 공언한 트럼프를 막기 위해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은 트럼프 책상 위의 FTA 관련 문서를 치워버렸는데 트럼프는 정작 문서가 없어진 걸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게 정말 실화냐"고 눈을 의심했었습니다.
우드워드는 '행정부의 쿠데타'라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트럼프의 즉흥 결정을 막으려고 백악관 참모까지 나섰다는 증언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주한미군이 필요하냐는 말을 하는 트럼프에 대해 매티스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은 5∼6학년 수준"이라고 평가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또 취임 한 달 만에 대북 선제공격을 요청했다는 대목에선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트럼프와 백악관이 '허구의 이야기' 또는 '날조'라고 우드워드를 공격했지만, 워싱턴 정가는 대체로 책 내용이 그간 알려진 것과 일치한다는 반응입니다.
그러니까 세계 최강 미국과 협상할 때는 언제든 돌출할 수 있는 '트럼프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겁니다.
트럼프는 세계 최강 미국의 대통령입니다. 특히 그의 입지를 강화한 요소는 경제입니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 경제는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2017년 당선 이후 트럼프는 최고 35%에 달했던 법인세를 21%로 인하했습니다. 이듬해인 2018년에는 2.9%로 3%에 육박하는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세계 각국을 압박하며 미국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트럼프에 대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미국인, 특히 중부 지역의 백인들은 환호합니다. 게다가 미국의 턱밑까지 성장해버린 중국을 거칠게 다루는 트럼프를 미국인들은 그들의 지도자로 받아들입니다.
'코로나 시대'인 만큼 한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로 미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실업자가 역대 최대규모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무얼 의미할까요. 경제와 일자리를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운 트럼프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재선에 실패할 확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진정 기미가 확연하지 않은데도 트럼프가 경제활동 재개에 목을 매는 모습이 연일 보도되는 이유가 잘 이해될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미국 기류에 민감한 북한이 최근 트럼프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냉소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김정은으로부터 '좋은 편지(nice note)'를 받았다고 트럼프가 발표했는데 정작 평양에서는 '보낸 적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미국 내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걸 겁니다.
어쩌면 '포스트 코로나' 전략은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지 못한 이후의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 전략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을까요? 총선 이후 정부 외교·안보진용 재편 움직임이 있을 거라는 얘기들이 돌던데, 이번에는 기대해도 될까요.
lwt@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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