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권력자가 '쓰레기의 자유'를 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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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0-25 07:07  

[특파원 시선] 권력자가 '쓰레기의 자유'를 탐한다면

[특파원 시선] 권력자가 '쓰레기의 자유'를 탐한다면
인터넷 시대 표현의 자유 악용과 미국 사회의 대응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최근 표현의 자유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다 참혹하게 살해된 프랑스 교사에게 국가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가 수여됐다.
계몽주의의 고향인 프랑스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 가치로 존중되고 있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서양 반대쪽 미국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건국 이념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지 않은 외부인으로서는 가끔 혼란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에 대한 미국 사회의 신념이 교조주의적으로 비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극명한 사례가 1969년 미국 대법원의 '브랜든버그 대 오하이오주(州)' 판결이다.
대법원은 '흑인과 유대인을 미국에서 추방하자'는 취지의 연설을 한 인종차별단체 '큐 클럭스 클랜'(KKK) 지도자가 오하이오주의 과격단체 처벌법에 따라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폭동을 직접적으로 선동할 정도의 구체적 내용을 담지 않았다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라도 "표현의 자유는 건강한 사회의 밑거름"이라는 이유로 보호받기도 한다.
1988년 대법원이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으로 알려진 제리 폴웰 목사가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패러디 인터뷰 광고를 낸 포르노 잡지 허슬러의 손을 들어주면서 내놓은 논리였다.
당시 "수정헌법 1조가 나 같은 쓰레기를 보호한다면 모든 국민이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허슬러 발행인 래리 플린트의 법정 발언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법 앞에선 만인이 평등하다는 민주사회의 기본원칙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인종차별단체 KKK든 포르노 잡지 발행인이든, 설사 그 주장이 100% 진실을 담은 것이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최근 미국 사회에선 권력자들이 '쓰레기의 자유'까지 넘보는 듯한 모습이 목격된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권력 집단이 표현의 자유를 권력 유지를 위한 무기로 사용하려는 분위기라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불리한 우편 투표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선 결과 불복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도 마찬가지다. 최근 공화당의 주류로 부상 중인 큐어넌(QAnon)은 백화점식으로 온갖 음모론을 유통하고 있다.


당연히 미국 사회에서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고개를 드는 양상이다.
최근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트럼프 대통령이 쏟아내는 각종 발언에 대해 내부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경고 표시를 하거나 삭제 조치까지 취했다.
"좋은 의견이든 나쁜 의견이든 모두 들어보기 위해 수정헌법 제1조가 존재한다"는 과거 대법원의 시각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여론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호의적인 분위기다.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는 표현의 자유가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를 위협한다면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거짓과 진리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경쟁을 벌인다면 필연적으로 진리가 승리한다'는 취지에서 표현의 자유를 굳게 수호했던 미국 대법원의 입장에선 동의가 힘든 대목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대선이 코앞으로 닥친 지금의 미국 사회에는 시간제한이 없는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펼쳐지는 승부의 결과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kom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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