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헌재 판결에 뿔난 태국 시위대…"시위 더 할 이유 생겨"

입력 2020-12-03 11:12   수정 2020-12-03 11:18

[르포] 헌재 판결에 뿔난 태국 시위대…"시위 더 할 이유 생겨"
총리 면죄부에 '태국 민주주의가 운다·헌법쿠데타소' 비판 쏟아져
"가진 자·힘있는 자 편드는 헌재 결정 이미 예상…변화 위해 계속 시위"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태국 사법부에 화가 많이 납니다. 더 시위해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태국인들이 또다시 사법부 결정에 화가 났다. 헌법재판소가 전날(2일) 내린 또 하나의 '친정부' 판결 때문이다.
헌재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전역 이후에도 군 관사에 계속 거주한 것은 특혜를 금지하고 윤리적 행동을 규정한 헌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야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 규정에 부합하는 데다, 쁘라윳 총리가 개인적 이득을 취한 일이 없기 때문에 이해충돌도, 윤리 위반도 아니라고 9명 재판관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앞서 헌재는 2월에는 쁘라윳 정부에 '눈엣가시'인 제3당 퓨처포워드당(FFP)의 해산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결정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반정부 시위를 촉발했다.
재판 결과가 알려진 직후 시위대 수천 명이 방콕 북부 랏프라오 사거리에 집결했다. 헌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넘쳐났다.



거리 한쪽에는 헌법재판관 9명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대형 현수막이 펼쳐졌다.
시민들은 앞에 놓인 매직을 이용해 비판의 글귀를 적었다. 재판관 얼굴에 뿔 모양을 그려 넣기도 했다.
도로 위에도 헌재 비판 글귀가 빼곡했다.
스프레이를 사용해 영어로 쓰인 '지금 태국 민주주의는 울고 있다'(Democracy of Thailand is now crying)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도로 위 차선 위에 적힌 글귀도 눈길을 끌었다.



지우지 못하게 페인트로 'CONSTITUTIONAL COU(RT)P'이라고 적혀 있다.
헌법재판소를 뜻하는 영어 단어 'Constitutional Court'에 쿠데타를 뜻하는 'Coup'를 절묘하게 합성해 놓은 것이다.
헌재의 쿠데타적 판결이라는 뜻이거나, 헌재가 쿠데타 주역인 쁘라윳 총리에 유리하게 불공정한 판정을 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헌법에 대한 최고 재판기관인 헌재가 헌법 파괴 행위의 최고봉이라 할 쿠데타와 '한 몸'으로 묶였다는 점을 표현한 것으로도 풀이됐다.
도로 한쪽 바닥에 엎드려 분필로 무언가를 쓰는 여성 2명에게 물었다.
방콕대 2학년 학생들이라는 이들은 "정의에 관해 쓰고 있다"고 말했다.
얀얀(19)은 기자에게 "태국 사법부는 총리나 군인, 경찰 같은 힘 있는 사람들에게는 착하지만,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이들에게는 나쁘다"고 말했다.
옆의 친구 캣(20)도 "헌재 판결에 화가 난다. 나를 비롯해 여기 모인 사람들이 오늘 시위에 참여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친구를 따라 처음 시위에 나왔다는 얀얀은 앞으로 시위에 계속 참여할 거냐는 물음에 세 가지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나오겠다며 웃었다.
5개월째로 접어든 반정부 시위는 군주제 개혁·총리 퇴진·군부정권 제정 헌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너덧 차례 시위에 참여했다는 캣도 고개를 끄덕였다.



쇼핑몰 디자인이나 장식을 담당하는 비주얼 머천다이저로 일하고 있다는 쩨이(35)씨는 지하철을 타고 와 혼자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
쩨이씨는 기자에게 "모든 사람이 쁘라윳 총리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군에서 전역했는데 왜 군 관사에 살 수 있다고 판결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헌법재판소는 정부만을 편든다. 야당이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조금 전 휴대전화로 찍었다는 사진 한 장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누군가 도로 위에 분필로 그려놓은 저울이었다.



사법부를 거론할 때 양쪽이 평평한 저울의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이 저울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기울어진 쪽에는 왕관이, 올라간 저울 쪽에는 태국 민주세력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의 세 손가락이 각각 그려져 있다.
쩨이씨는 이를 가리키면서 "법은 옳지 않다"면서 "많은 사람이 오늘 판결에 화가 났다. 정말 화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태국 민주주의를 위해, 국가 발전을 위해서 앞으로 시위에 계속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지도부 발언을 경청하던 아몬(55)씨는 헌재가 형평성을 잃었다면서, 2008년 헌재 결정으로 직을 상실한 사막 순다라웻 전 총리 예를 들었다.
사막 전 총리는 정치적 동지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쿠데타로 실각한 지 1년 만인 2007년 12월 탁신계 신당 국민의힘(PPP) 총재를 맡아 총선을 승리로 이끌고 이듬해 2월 총리에 임명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TV 요리쇼를 계속 진행하다 겸직 위반 논란이 불거지면서 같은 해 9월 헌재로부터 사퇴 명령을 받았다.
아몬씨는 이를 거론하며 "왜 쁘라윳 총리는 전역 이후에도 여전히 군 관사에 살고 있는데, 헌재는 위법이라고 판단하지 않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어로 헌재 판결을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대 사이를 돌아다니던 중년 남성을 인터뷰했다.
손팻말에는 '완전히, 불법적' 등의 문구가 적혔다.
가이드인 서니(56)씨는 "이미 예상한 결과다. 헌재는 언제나 그들 편에 서왔고, 법에 의한 지배(rule of law)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위를 해야 할 이유가 더 생겼다. 계속 싸워야 한다. 더 자주 나와 시위를 벌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위를 이끄는 아논 남파는 이날 무대에 올라 "무자격자가 공짜로 정부 주택에 남아 있어도 법이나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새로운 선례가 마련됐다"고 비꼬고, "내년에는 반정부 시위가 더욱 격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일간 방콕포스트는 전했다.


sout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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