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미 대통령은 백악관 새 주인에게 어떤 손편지 남겼을까

입력 2021-01-19 13:45  

역대 미 대통령은 백악관 새 주인에게 어떤 손편지 남겼을까
성공 기원 '초당적 우정' 자리잡은 32년 전통, 트럼프가 깰듯
'패자' 아버지 부시 "당신의 성공이 나라의 성공…열렬히 응원"
오바마 "민주제도·전통의 수호자 돼야"…트럼프 현 상황 맞물려 주목

(서울=연합뉴스) 송수경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0일(현지시간) 퇴임을 앞두고 역대 미 대통령들이 백악관을 떠나면서 후임자들에게 남긴 '손편지'들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물러가는 대통령이 당적을 초월해 자신의 바통을 이은 후임자에게 성공을 바라는 덕담과 당부의 글을 백악관 집무실(오벌오피스)의 '결단의 책상'(대통령 전용 책상) 서랍에 친필로 남기고 떠나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
그러나 조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를 쉽사리 인정하지 못한 채 '아름다운 퇴장'을 거부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통 마저 깰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부 측근의 조언에도 불구, 트럼프 대통령이 편지를 남길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는 게 미언론의 전망이다.



AP통신은 18일(현지시간) '퇴임 편지는 트럼프 대에서 끊길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역대 미 대통령들의 편지를 소개했다.
이 전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때인 것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고 통신이 전했다.
32년 전인 1989년 1월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을 앞둔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앞으로 유머작가 샌드라 보인튼의 그림이 그려진 편지지에 글을 썼다. 그리고는 이 편지지 묶음도 함께 남겼다.
웅크린 채 엎드려있는 코끼리 몸에 칠면조들이 올라타 있는 그림 위로 "칠면조들이 너를 주저앉게 하지 말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쓰여 있는 편지지였다. 코끼리는 두 사람이 속한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레이건은 부통령으로서 자신과 한솥밥을 먹었던 아버지 부시에게 쓴 이 편지에서 "친애하는 조지, 당신은 이 특별한 편지지를 사용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라며 재임 기간 부시와 매주 함께 한 '목요 오찬'이 그리워질 것이라며 편지를 맺었다.



'가벼운 글'로 시작된 이 전통은 그 이후 품격을 더해가며 이어져왔다. 레이건 때를 빼고는 정당을 달리하는 전임자와 후임자 간에 오간 초정파적 '우정'이었다.
아버지 부시는 1993년 1월 물러나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남긴 손편지에서 "매우 힘든 시간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공정하지 않다고 여길지도 모를 비판 때문에 더욱 어려울 것"이라면서 "나는 조언에 능한 사람은 아니지만, 비판자들 때문에 낙담하거나 경로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제 당신의 성공이 곧 우리나라의 성공이다. 나는 당신을 열렬히 응원한다. 행운을 빈다. 조지"라고 글을 맺었다.
아버지 부시는 1992년 대선에서 격한 선거전 끝에 패배, 단임 대통령에 그치게 됐지만 흔쾌하게 '승자' 클린턴의 행운을 빌어준 것이다.
편지의 내용에 감동한 나머지 당시 백악관의 새 안주인이 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울음을 터뜨렸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아버지 부시 타계 직후인 2018년 12월 1일 이 편지를 공개했다.



그로부터 8년 뒤 그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주게 된 클린턴 전 대통령은 편지에서 "오늘 당신은 가장 위대한 모험을 시작했다. 지금 당신이 어깨에 짊어진 짐은 무겁지만 때때로 과장돼 있을 때도 있다"며 "당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순전한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적었다.
이 편지를 받은 아들 부시는 그로부터 다시 8년이 흘러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적어 내려간 편지에서 "비판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며 당신의 친구들은 당신을 실망시킬 것"이라면서도 국민들로 인해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AP통신에 따르면 당시 27세였던 부시 전 대통령의 쌍둥이 딸 제나와 바버라도 10세, 7세였던 오바마의 두 딸 말리아와 샤샤를 위한 '자녀 지침'을 남겼다고 한다. "일광욕실 난간에서 미끄럼틀을 타라", "너희 아빠가 양키스 경기에서 시구할 때 경기를 보러 가라"는 등의 조언이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7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앞으로 남긴 편지에서 "이는 성공에 대한 청사진이 없는 독특한 직"이라면서 자신의 재임 기간에 대한 반추를 토대로 조심스러운 어조로 4가지 조언을 곁들였다.
이 가운데 지난 6일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폭력사태에 대한 '내란 선동' 혐의로 퇴임 목전에서 하원에서 탄핵당한 트럼프 대통령의 현 상황을 비춰볼 때 '예언적'인 듯한 내용도 들어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우리는 단지 이 직을 잠시 거쳐 가는 사람들"이라며 "이러한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선조들이 피 흘려 싸워 지킨 법의 지배와 권력 분립, 평등권과 인권 등과 같은 민주적 제도와 전통의 수호자가 되도록 해준다"고 언급한 대목을 일컬은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또 "매일 벌어지는 정치적 밀고 당기기와 관계없이 민주주의 제도를 굳건히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조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흰색 편지 한 통을 꺼내 보이며 "오바마가 남긴 아름다운 편지"라고 자랑했지만,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다. 편지 내용은 그해 9월 CNN 방송의 보도로 공개됐다.
역사학자 마크 K. 업드그로브는 "편지 전통이 트럼프에서 끝나더라도 바이든이 (백악관을) 떠날 때 쉽사리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며 "바이든이 품격있게 편지를 쓸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hanks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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