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란 잘란] 인니 인간 신호등 '빡 오가'…"동전 모아 큰돈"

입력 2021-02-03 06:06  

[잘란 잘란] 인니 인간 신호등 '빡 오가'…"동전 모아 큰돈"
하루 7시간 교통정리 평균 8천원 수입…아내 2명에 자녀 10명




[※ 편집자 주 : '잘란 잘란'(jalan-jalan)은 인도네시아어로 '산책하다, 어슬렁거린다'는 뜻으로, 자카르타 특파원이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연재코너 이름입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수도권의 작은 교차로에는 신호등을 대신해 교통정리를 해주고 동전을 받는 사람이 어김없이 서 있다.



목이 타들어 갈 듯 더운 날에도,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빡 오가(Pak Ogah) 또는 폴리시 쯔빼(Polisi Cepek)라 불리는 남성들이 쉼 없이 차량에 수신호를 보내고 동전을 받는다.
2일(현지시간) 오후 남부 자카르타 끄망빌리지 입구를 연결하는 교차로에 선 악산(60)씨는 퇴근 시간대에 몰린 차량을 빠른 손짓으로 멈추고, 세우고, 규칙적으로 다시 움직였다.
네덜란드에 350년 식민지배를 받은 인도네시아는 자카르타 수도권의 경우 좁은 도로에 차량은 넘치고, 일방통행과 회전 교차로가 많다.
자카르타에 살아보면 도로에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함께 달리는데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대로에서 신호도 없이 유턴하고, 중앙선을 넘나들어 좌회전과 우회전을 하는 모습에 가슴이 덜컹거린다.



출퇴근 시간 교통량이 많은 교차로에는 민간 교통정리원 빡 오가가 손짓이나 호루라기 하나로 신호등을 대신한다.
교민들 말로는 빡 오가는 1970년대 교민 초기 정착자들이 자카르타에 왔을 때부터 이미 존재했다.
과거에는 주요 교차로에 빡 오가를 3교대로 세우고, 상납금을 받는 이른바 '동네 깡패' 조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조직보다는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자율 경쟁하는 모습이다.
엄밀히 따지면 민간 교통정리는 불법이다.
다만, 생계형으로 일하고, 이들의 활약이 없으면 정말 도로가 막히기에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자카르타주 규정에 따르면 권한 없는 사람이 교차로 등에서 교통을 통제하면 공공질서에 관한 법령 위반이고, 10일 이상 최대 60일의 구류형 또는 10만 루피아 이상 최대 2천만 루피아(8천∼160만원) 이하 과태료에 처하게 돼 있다.



악산씨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끄망빌리지 앞 교차로에서 교통정리를 한다.
아파트·백화점 단지로 들어가고 나오는 차량을 위해 직진 차선을 막아 세우고, 동전을 받는다.
그는 본래 오토바이택시 운전일을 하다가 3년 전부터 빡 오가로 변신했다.
악산씨는 가족 관계를 묻자 "아내가 둘인데 첫째 아내한테 4명, 둘째 아내한테 6명의 자녀를 낳았다"며 웃었다.
악산씨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고 쫓아온 친구들도 "대단하다"며 따라 웃었다.
다만, 그와 대화하는 5분 남짓한 시간에 주변 도로가 꽉 막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급했다.
그는 "보통 차가 좌회전, 우회전하기 위해 교통정리를 해주면 500루피아(40원) 동전부터 2천루피아(160원) 지폐를 주는데 동전조차 안 주는 사람이 훨씬 많다"며 "그래도 동전을 모으면 큰돈이 된다. 하루 평균 7만∼10만루피아(5천600∼8천원)는 번다"고 자랑했다.
본래 빡 오가를 부르는 다른 말인 '폴리시 쯔빽'은 '100루피아짜리 경찰'이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교통정리를 해주면 100루피아(80원) 동전을 많이 줬기 때문이다.
악산씨는 "비 내릴 때가 가장 힘들다"며 "삶이 고되고 힘들어도 맨몸으로 돈을 벌 수 있고, 동전 받은 거로 먹고사는 건 할 수 있다"며 자부심을 보였다.
그는 매주 토요일만 쉬기에 한 달 평균 200만 루피아(16만원) 넘게 길에서 번다.
자카르타 수도권에서 한 달 내 정규직으로 일해도 월급 40만원을 받기 힘들고, 입주 가사도우미 월급 역시 20만∼25만원 선이기에 적은 돈이 아니다.



남부 자카르타의 또 다른 교차로에서는 젊은 청년 셋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이 서 있는 지점은 왕복 4차로 도로 한 가운데 유턴, 중앙선을 넘어서는 좌회전과 우회전이 빈번한 곳이었다.
차량 운행 속도가 제법 빠른데, 이들이 강제로 차량 흐름을 끊었다가 붙였다가를 반복해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따오픽(19)군은 2년 전부터 이 자리에서 동네 친구들과 함께 하루 2∼3시간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그는 "학교는 다니지 않는다"며 "하루 평균 5만 루피아(4천원)를 벌 수 있다"고 말했다.
'5만 루피아로 무엇을 하느냐'는 말에 그는 "밥은 먹고 산다"고 짧게 답했다.
따오픽 군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매연 탓에 목이 아프다"며 "하지만, 이 일 말고 다른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2020년 인도네시아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인구 2억7천만명 가운데 생산가능연령(15∼64세)은 70.72%로 나타났다.
인도네시아 청년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작년부터 직업을 구하기 더 어려운 상태다.



noano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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