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의 국제화] 위안부 여론전서 밀린 日…학술 형태로 반격 '올인'

입력 2021-02-23 07:01   수정 2021-02-23 07:46

[왜곡의 국제화] 위안부 여론전서 밀린 日…학술 형태로 반격 '올인'
위안부 역사 왜곡 서적 영어 번역…"친일파·지일파 육성할 것"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위안부 문제가 20세기 최악의 인권유린 중 하나라는 사실은 이미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일본의 한 우익단체가 2007년 6월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정하는 의견 광고를 게재했다가 오히려 역풍을 불렀을 정도다.
가해 사실을 부정하는 태도가 미국 정치권을 자극해 연방 하원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미래세대에 대한 역사교육을 요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을 처리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이후 일본 우익의 대응은 미국의 위안부 기림비에 말뚝 테러를 하는 식의 유치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016년 캘리포니아주(州) 교육 당국이 위안부 역사를 역사 교과서에 싣기로 한 것을 계기로 일본 우익의 전략이 수정됐다.
일본 우익세력의 원로인 히라카와 스케히로(平川祐弘) 도쿄대 명예교수가 '미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20만 명의 성노예라는 숫자가 나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대외발신조성회'라는 단체를 설립한 것이다.


당시 히라카와 명예교수는 위안부 납치 부정세력이 교과서처럼 받드는 하타 이쿠히코(秦郁彦)의 저서 '위안부와 전장의 성'을 영어로 번역하자고 제안했다.
학술이라는 형태를 빌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극우파의 주장을 국제사회에 전파하겠다는 것이다.
히라카와 명예교수가 모금 운동까지 전개한 끝에 하타의 저서는 2018년 미국의 대형 출판사인 해밀턴 북스에서 번역 출간됐다.
일단 이들은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다.
최근 논란이 된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의 위안부 논문에서도 '위안부와 전장의 성'의 영역본은 참고문헌으로 명기돼 있다.
위안부에 대한 왜곡된 주장이 학술자료로 포장돼 동아시아 역사 문제에 관심이 있는 서구 학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게 된 셈이다.



히라카와 명예교수가 고문으로 이름을 올린 극우파 싱크탱크 '일본전략연구포럼'은 하타의 저서 영역 작업에 힘을 보태는 한편 미국 대학을 직접 공략하는 작업에 나섰다.
이들이 발간하는 계간지 'JFSS Quarterly Report'는 하버드와 밴더빌트, 시카고, 코넬, 조지타운 등 미국의 11개 주요 대학 도서관에 비치된다.
계간지의 주요 기사와 논문은 일본어와 영어 등 2개 언어로 제공된다.
일본어 능력이 없는 미국의 대학생과 연구자를 공략하기 위한 조치다. 영어 논문의 형식을 빌려 일본 우익의 주장을 미국 학계에 주입하겠다는 것이다.
제2의 램지어 교수가 탄생할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해 7월에는 일본전략연구포럼의 선임연구원인 제이슨 모건 일본 레이타쿠(麗澤)대 교수가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책 '반일 종족주의'를 극찬하는 영어 기고문을 싣기도 했다.


문제는 국제 학술계를 겨냥한 일본 우익세력의 이 같은 전략적 활동이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여당 자민당은 2019년 종합정책집에서 위안부 문제 등 각종 역사 현안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국내 싱크탱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초빙·파견·교류사업 등을 통한 친일파·지일파 육성을 추진하고 일본 입장에 대한 지지 확대와 국제여론 형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경제법 전공인 램지어 교수가 2019년부터 갑자기 위안부와 간토대지진, 재일교포 차별 등 역사 현안에 대한 논문을 쏟아내는 배경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kom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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