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어느 작은 약방 외판원의 꿈

입력 2021-05-24 08:07  

[카드뉴스] 어느 작은 약방 외판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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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칡뿌리를 뜯어 팔며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 한 청년.

어머니의 권유로 서울에 있는 한 약방의 일을 돕기 시작한 그는 큰 꿈을 품고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약 행상을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짧게는 영등포에서 수원까지, 길게는 대전이나 개성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23살이 되던 해, 스스로 개척하는 인생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가진 돈 15원에 일수 50원을 빌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4평짜리 약방을 차리고 '궁본약방'이라는 간판을 내겁니다.

이후 약업인으로 뜻을 펼치기 시작하죠.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1948년, 지독한 인플레이션으로 약값이 치솟았던 때에 한 사람으로부터 인상 전 가격으로 활명수를 공급받아 팔았는데 알고 보니 이 약이 가짜였던 겁니다.

경찰서 조사까지 받게 된 그는 약을 사서 판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믿을 수 있는 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가짜 활명수 사건이 의약품 판매가 아닌 약품 제조를 하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가 됐죠.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부산으로 피난을 간 후엔 "우리 국민 건강은 내 손으로 직접 지켜야 한다"라는 꿈을 품습니다.

그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약품 판매업을 이어갑니다. 약품을 생산, 공급하며 사업의 틀을 다지죠.

1956년, 회사명을 자신의 이름을 딴 '종근당 제약사'로 개명하고 해외 유수의 제약사로 눈을 돌려 한국 제약산업의 국제화를 추구합니다.

1961년에는 97일간 세계 16개국 제약사를 직접 방문하며 항생제 원료를 자체 생산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이를 실행하죠.

그가 바로, 1941년 시작한 작은 약방을 국내에서 손꼽히는 제약 기업으로 키워낸 고촌 이종근 회장입니다.

이종근 회장은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너무 비싼 약값 때문에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 현실을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에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항결핵제 '리팜피신'을 개발, 결핵 치료제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가격은 수입 치료제의 3분의 1에 불과해 국민들의 부담을 많이 낮췄죠.

종근당은 이종근 회장의 철학에 따라 2006년부터 '고촌상'을 제정해 결핵 퇴치에 공헌한 세계적 인물이나 단체를 선정해 10만 달러의 상금을 매년 지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췌장염 치료제로 쓰이던 의약품의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확인 후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약을 만드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우리가 만든 약이 있어야 하는 사람 곁에 항상 우리의 약이 있게 하는 사명을 지녀야 한다" - 고촌 이종근

23살 어느 작은 약방 외판원이 가슴에 품었던 꿈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이도경 작가
seva@yna.co.kr
dk12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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