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미국 내 이념전쟁의 최전선 '리튼하우스 재판'

입력 2021-11-21 07:07  

[특파원시선] 미국 내 이념전쟁의 최전선 '리튼하우스 재판'
'정당방위' 폭넓게 인정하는 미국 법 체계 따라 무죄 평결
우파선 '대중의 영웅', 좌파선 '무모한 총 쏘기 좋아하는 젊은이' 상반된 평가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미국에서 인종차별 항의 시위대에 총을 쏴 2명을 숨지게 한 백인 청년이 법원에서 무죄 평결을 받으면서 미국 사회가 시끄럽다.
카일 리튼하우스(18)는 17살이던 지난해 8월 25일 위스콘신주(州) 커노샤에서 불법으로 소지한 'AR-15'형 자동소총을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 나섰던 백인 3명에게 발포했고 이 중 2명이 숨졌다.
이보다 앞서 같은 달 23일 커노샤에서 경찰 총에 맞은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가 하반신 불수가 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방화·약탈 등 폭력 행위도 벌어졌다.
위스콘신주 바로 아래의 일리노이주에 살던 리튼하우스는 소총을 구매해 '자경단'을 자임하며 약탈 등 불법행위를 막겠다고 시위 현장에 나왔다가 총격 사건에 휘말렸다.
리튼하우스는 살인, 살인 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됐지만 배심원단은 26시간에 걸친 숙의 끝에 '나를 공격하는 시위대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총을 쐈다'는 리튼하우스의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 평결을 내렸다.
리튼하우스 재판은 미국 사회의 여러 첨예한 쟁점들에 가지를 걸치면서 미국 내 이념 전쟁의 최전선이 돼 왔다. 경찰 같은 공공 치안 조직을 대신하는 자경단의 역할, 용인될 수 있는 정당방위의 범위, 총기 소유의 정당성처럼 이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논쟁적 주제들과 얽혀 있었다.



무엇보다 정당방위의 범위를 극도로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한국의 사법 체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2명이나 총으로 쏴 죽였는데 무죄라는 평결이 직관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은 이런 법원의 결정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보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많은 주의 법률 체계에서 누군가가 정당방위에 의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한 순간 이를 반증(反證)할 책임이 검찰 쪽에 주어진다고 지적했다.
자신이 죽거나 심각한 신체적 손상을 입을 위험에 놓였다고 생각한 사람이 치명적인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폭력이 벌어진 상황만을 고려할 뿐 그 사람이 혼란을 유발했는지, 폭력 상황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었는지는 참작하지 않는다.



세실리아 클링글 위스콘신대학 법학 교수는 "(검찰이) 정당방위 (주장)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기기 힘든) 오르막 전투였다"고 말했다.
리튼하우스는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미국에서 이념 논쟁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와 백인 우월주의자, 총기 옹호론자 등 우파 진영에서 이미 그가 광분하는 폭도에 맞서 일어선, 정의를 위한 자경대원이자 '대중의 영웅'이 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인종차별 반대 활동가나 총기 규제 찬성론자 등 좌파 쪽에선 무모하게 불법 총기를 소지하고 주 경계를 넘어와 이미 혼란스러운 상황을 인명 살상의 폭력 상황으로 고조시킨 총 쏘기 좋아하는 젊은이로 보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극단적으로 판이한 이 상반된 평판의 어느 지점에 리튼하우스가 실제로 서 있든, 그는 계속해서 이념에 의해 영웅 아니면 악당으로 그려지고 소비되며 이미 깊게 팬 미국 사회 이념의 골을 더 깊게 할 것이다.
이미 무죄 평결이 내려진 지 수 초 만에 극우 포럼은 축하 메시지와 리튼하우스를 영웅으로 묘사한 밈(meme·인터넷에서 패러디·재창작의 소재로 유행하는 이미지나 영상)으로 도배가 됐고, 팔로워들에게 리튼하우스의 법률 비용을 기부하라고 촉구했던 극우 성향의 공화당 의원 마조리 테일러 그린은 "카일(리튼하우스)과 그의 가족이 이제 평화롭게 살기를"이란 글을 올렸다.
반면 무죄 평결이 나온 19일 밤 뉴욕 브루클린, 일리노이 시카고, 오하이오 콜럽머스 등 주요 도시에선 수백명이 거리로 나와 평결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리튼하우스의 총격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본 기자에게는, 그와 그가 대치했던 시위대의 손에 총기가 들려 있지 않았더라면 사태가 지금처럼 심각한 비극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sisyph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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