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공습 80년…'일본계 강제수용·차별' 주목한 일본

입력 2021-12-08 15:00  

진주만 공습 80년…'일본계 강제수용·차별' 주목한 일본
미일 우호 강조…침략·식민지 지배 등 일본 책임 문제는 소홀
일본 정치권 우경화…A급 전범 합사 야스쿠니신사 집단참배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태평양 전쟁의 시발점인 진주만 공습이 8일(하와이 현지시간 7일) 80주년을 맞은 가운데 일본은 일본계 미국인이 당시 겪은 차별이나 강제 수용 등을 조명하고 있다.
일본은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로 아시아 민중에게 고통을 준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가운데 역사적 사실에 선택적으로 주목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일본 주요 일간지는 진주만 공습 후 일본계 미국인이 겪은 수용소 생활이나 차별 등에 관해 이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진주만 공습 후 미국 전역에서 약 12만 명의 일본계 주민이 강제 수용됐다면서 12살에 수용소에 들어간 로버트 후치가미(91) 씨의 경험담을 지면에 실었다.
3년 동안 철조망과 감시탑에 둘러싸인 생활을 했다는 후치가미는 "자유를 뺏기고 2급 시민 취급받는 것은 고통이었다"고 회고했다.

아사히는 "가장 괴로웠던 것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고, 우리들이 왜 수용소에 있는지 물음에 답을 알지 못했던 것"이라는 그의 발언을 함께 소개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진주만 공습 후 미국의 일본계 주민이 "적성 외국인"으로 간주됐으며 "이유 없는 중상이나 차별을 받게 됐다"면서 미국 국적을 취득한 일본계 2세들이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차례로 미군에 입대했다"고 전쟁 중 상황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은 일본계 3세인 로렌스 에노모토(87)의 부친이 태평양 전쟁 중이던 37세에 미국 육군 정보부대에 들어갔다고 예를 들었으며 "아버지는 다섯 살 아이를 놓아두고서까지 (입대를) 지원했다. 자신이 미국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는 에노모토의 발언을 소개했다.
일본 언론들은 무고한 개인들의 인생이 출신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농락당하고 이들이 차별로 고통받았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도쿄신문은 전투기를 타고 진주만 공습에 참가했던 요시오카 마사미쓰(吉岡政光·103)의 전쟁에 대한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요시오카는 "조금 더 빨리 그만뒀더라면 많은 사람이 전사하지 않고 끝났을 것이다. 늦어도 1944년 초쯤에 강화(講和·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회복하는 것)를 신청해 전쟁을 멈췄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 않고 끝났을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사회가 이처럼 전쟁을 체험한 개인의 경험에 주목하는 것은 전쟁의 참혹함과 비인도성을 확인하고 전쟁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에는 원폭이나 일본계 주민 강제 수용 등 일본인, 혹은 일본 출신자가 주로 겪은 괴로움에 집중하고 타국을 침략하거나 식민지 지배한 일본의 책임 문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는 경향도 있다.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당시 일본 총리 이후 역대 총리는 패전일(8월 15일) 계기 메시지에서 타국에 대한 일본의 가해 행위를 거론하고 피해자를 애도했다. 이후 반성, 사죄, 부전(不戰)의 맹세 등이 추가됐다.
하지만 2012년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재집권한 후 이런 메시지가 사라졌다.
아베는 심지어 전후 70년인 2015년 패전일 직전에 내놓은 이른바 '아베 담화'에서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며 사죄하는 관행과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아베를 계승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 역시 일본의 가해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다.

아베는 재임 중인 2016년 12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함께 진주만을 방문해 "전쟁의 참화는 두 번 다시 되풀이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격렬한 전쟁을 하던 미일은 깊고 강하게 맺어진 동맹국이 됐다", "우리를 결합한 것은 관용의 마음이 가져온 '화해의 힘'"이라고 언급하는 등 미국과의 우호를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일제 강점기 징용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동원 등 한국이 제기해 온 일본의 가해 행위에 관해서는 자국에 유리한 정황만을 부각하며 제대로 책임을 이행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제2차 아베 정권 이후 일본 정치권의 우경화 경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은 진주만 공습 80주년을 하루 앞둔 7일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를 2년 2개월여 만에 집단 참배했다.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8일 정례기자회견에서 "진주만 공격으로부터 80년인 올해는 일미 관계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일미 강화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새롭게 하는 중요한 기회"라고 언급했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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