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100년만에 극우 총리 탄생…'여자 무솔리니' 멜로니 누구

입력 2022-09-26 06:20   수정 2022-09-26 15:38

伊, 100년만에 극우 총리 탄생…'여자 무솔리니' 멜로니 누구
싱글맘에서 우파진영 선두주자로…이탈리아 첫 여성총리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친러 인사 주축 극우정부 출범에 우려 시선
"파시즘은 지나간 역사·EU 탈퇴 안해" 해명에도 의심의 눈길 여전
'강한 이탈리아'·친러 인사 주축인 극우정부 출범에 우려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이탈리아가 사상 첫 여성이자 파시즘 창시자 베니토 무솔리니(1922∼1943년 집권) 이후 79년 만에 첫 극우 성향의 지도자를 맞이하게 됐다. 무솔리니가 집권한 첫해를 기준으로는 100년만이다 .
25일(현지시간) 치러진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 우파 연합이 승리했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극우 여성 정치인 조르자 멜로니(45) 이탈리아형제들(Fdl) 대표의 총리 등극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2018년 총선에서 득표율 4%에 그친 군소정당의 대표였던 그가 불과 4년 만에 최대 정치 세력의 대표로 부상한 데 이어 유로존 3위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의 차기 총리에까지 다가선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멜로니가 2019년 10월 동성 육아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한 연설이 리믹스 버전으로 편집돼 유튜브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은 것이다.
멜로니는 당시 연설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저는 여자이고, 엄마이고, 이탈리아인이고, 크리스천입니다"라고 외쳤다.
귀에 쏙쏙 박히는 대사와 중독적인 비트가 더해지면서 '조르자 멜로니 리믹스'는 유튜브 조회 수가 1천200만 회 넘게 찍혔다.
애초 이 리믹스는 성 소수자에게 적대적인 멜로니를 조롱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지만 오히려 그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멜로니는 지난해 2월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거국 내각을 구성할 당시, 유일한 야당으로 남았다. 당시에는 돈키호테 같은 선택으로 여겨졌지만 결과적으로 이 덕분에 그의 정치적 무게감은 퀀텀 점프하게 된다.
드라기 총리가 실각하고 조기 총선이 결정되면서 지난 정권에 불만인 유권자들은 멜로니를 마지막 남은 대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볼로냐대 정치학 교수인 피에로 이그나치는 "멜로니는 인플레이션, 에너지 비용 등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다"며 "전 정권에 불만인 사람들에겐 선택지가 딱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멜로니는 1977년 로마 노동자계급 지역인 가르바텔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가르바텔라는 전통적으로 좌파들의 보루로 여겨지는 곳이다. 멜로니는 좌파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극우 정치인으로 성장한 셈이다.
가정을 버린 아버지 때문에 홀어머니 아래서 자란 멜로니는 본인도 워킹맘이자 미혼모다.
그는 15살 때 네오파시스트 성향의 정치단체 이탈리아사회운동(MSI)의 청년 조직에 가입하면서 정치에 뛰어들었다.
MSI는 1946년 베니토 무솔리니 지지자들이 창설한 단체로, 1995년 해체됐지만 멜로니가 2012년 MSI를 이어받은 Fdl을 창당하고 2014년부터 대표직을 맡았다.
멜로니에게 '여자 무솔리니'의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이유다.
멜로니는 최근 "파시즘은 지나간 역사"라고 단언했지만, MSI가 사용한 삼색 불꽃 로고를 Fdl 로고에서도 계속 사용하는 등 파시즘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는 2006년 29세에 하원 의원이 됐고, 2008년에는 당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내각의 청년부 장관이 되며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31세) 장관 기록을 세웠다.
멜로니는 '강한 이탈리아'를 표방하는 극우 정치인으로, 반이민·반유럽통합 등을 내세워 정치적 입지를 다져온 인물이다.
그가 집권할 경우 이탈리아가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고, 대러시아 제재를 반대하며, 동성애자의 권리를 후퇴시키고, 유럽연합(EU)의 분열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며 국제 사회는 긴장하고 있다.
멜로니는 아프리카 이주민이 백인 여성을 성폭행하는 영상을 피해자의 동의 없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릴 정도로 반이민·동성애 등의 의제에선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멜로니는 다른 극우 정치인들과는 달리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등 총선을 앞두고는 친유럽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EU를 탈퇴하는 미친 짓을 하지 않겠다. 이탈리아는 유로존에 남을 것"이라고 거듭 약속했고,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러시아 제재를 유지하겠다고 여러 차례 천명했다.

하지만 의심의 눈길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친유럽적인 양의 탈을 쓴 멜로니가 일단 집권하면 민족주의의 송곳니를 드러낼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유럽이 멜로니의 집권에 긴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와 함께 우파 연합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대표적인 친푸틴, 친러시아 인사이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지 '슈테른'에선 멜로니를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이라고 명명하며 "멜로니 집권으로 러시아에 우호적인 인사들이 권력을 잡을 경우 푸틴이 이들을 통해 서유럽에서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chang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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