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인도네시아 반값 휘발유와 한국의 반값 전기

입력 2022-10-08 07:07  

[특파원 시선] 인도네시아 반값 휘발유와 한국의 반값 전기


(자카르타=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인도네시아는 한국보다 휘발유 가격이 싸다. 인도네시아 국영 에너지 회사 페르타미나 주유소에서 파는 옥탄가 90의 저품질 휘발유 페르타라이트 가격은 1L(리터)에 1만 루피아다. 한국 돈으로 930원 정도다.
한국의 일반 휘발유와 비슷한 옥탄가 92 이상의 페르타맥스는 L당 1만4천500루피아, 약 1천350원이다. 한국 휘발유와 비교해 20% 정도 싸다. 그나마 지난달 인도네시아 정부가 휘발유 가격을 30% 이상 올려서 그런 가격이다. 그전에는 그야말로 '반값 휘발유'였다.
휘발유 가격이 싼 것은 정부 보조금 덕분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고유가에도 막대한 보조금으로 휘발유 가격을 싸게 유지했다. 하지만 정부 수입의 25%를 보조금 예산으로 써야 할 만큼 부담이 커지자 결국 휘발유 가격을 대폭 올렸다. 그러자 노동자와 대학생을 중심으로 보조금 인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이런 소식을 기사로 한국에 전하면 꼭 달리는 댓글들이 있다. '후진국의 포퓰리즘 정부', '재정이 어렵다는데 시위나 하는 후진국 국민'과 같은 조롱의 글이다.
그런데 한국에도 인도네시아 휘발유와 비슷한 '반값 에너지'가 있다. 바로 전기다.

인도네시아 휘발유나 한국의 전기 모두 국제 원자재 가격이 치솟고 있음에도 정부가 가격을 통제해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같다.
2020년 기준 한국의 가정용 전기 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가의 61% 수준이다. 그야말로 반값 전기다. 가장 비싼 독일과 비교하면 30% 수준이다.
인도네시아가 막대한 정부 재정으로 반값 휘발유를 유지했다면 한국은 한국전력공사의 막대한 부채로 반값 전기를 유지하고 있다.
한전은 비싸게 전기를 사다 소비자에게 싸게 판다. 부족한 돈은 매월 2조원이 넘는 채권을 발행해 메운다. 이 때문에 올해 한전은 30조원 적자를 기록하고 회사채 발행 잔액은 7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한전의 빚은 정부 빚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전이 발행하는 공사채는 정부가 지급을 보증한다. 한전이 갚지 못하면 정부가 갚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국민연금은 한전 지분 약 6%를 갖고 있다. 한전이 대규모 적자로 주가가 떨어지면 우리의 노후 자산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다 보니 이를 올리는 것이 정권에 부담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70%가 넘던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지지율은 휘발유 가격 인상 후 약 10%포인트나 떨어졌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인도네시아는 정권에 부담이 되더라도 재정 부담을 생각해 휘발유 가격을 30% 넘게 올렸다. 지금은 전 세계 휘발유 평균 가격의 80% 수준까지 올라갔다. 반면 한국 정부는 지지율이 떨어질까 걱정되어서인지 전기요금을 찔끔 올리는 데 그쳤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여전히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재정으로 투명하게 보조금 부담을 떠안는다면, 한국 정부는 한전에 대규모 부채를 안겨주는 방식으로 우회한다. 결국은 정부의 부담이지만 당장은 정부 부채에 잡히지 않으니 재정 건전성이 뛰어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어디가 더 후진적 포퓰리즘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laecor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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